정권 교체냐 정치 교체냐. 정치권 진입이 임박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61)이 두 갈래 길에 서 있다. 그간 윤 전 총장 행로는 크게 두 경우로 예상됐다. 국민의힘 입당, 독자 신당 창당이다. 차기 대선을 기준으로 하면 국민의힘 입당은 당내 경선 참여, 제3지대 신당 창당은 독자 출마와 향후 국민의힘 후보와의 단일화로 세분화된다. 등판 형식을 정치적 의미로 구분하면 국민의힘 입당은 정권 교체에, 신당 창당은 정치 교체에 무게를 둔 것으로 해석됐다.
당초 윤 전 총장은 기득권 정치에 맞서는 대안 정당 창당을 모색하겠다는 뜻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최근 국민의힘 입당으로 무게 추가 옮아가고 있다. ‘이준석 돌풍’이 입당 명분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는 대선 주자로서 국민의힘 경선에 참여해 기호 2번으로 나서겠다는 의지이자, 정권 교체를 정치 활동 목표로 삼겠다는 시그널이다. 다만 오는 11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돌풍’이 미풍에 그칠 경우 독자 정치세력화 가능성도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
어떤 길을 택하든 ‘윤석열의 길’은 험로가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지만 문재인 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전 대통령 이명박·박근혜씨 구속 수사와 탄핵 논란은 보수 야권 주자의 딜레마다. 정치 출발과 동시에 여야 양 측으로부터 정체성 공세를 감당해야 한다. 살아 있는 권력, 부패한 과거 권력에 대한 단호한 태도로 공정과 정의라는 자산을 얻었고, 이는 중도·무당파의 전폭적 지지로 이어졌다. 하지만 특정 진영을 선택하는 순간, 공정과 정의라는 무기는 휘어진 칼날이 될 수 있다. 윤 전 총장이 얽히고 설킨 내적 괴리를 풀지 못하면 반사체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은 그래서 나온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가운데)이 지난 달 29일 강원 강릉시의 한 식당에서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오른쪽)을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입당설은 당 관계자들과의 잦은 회동 이후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이는 윤 전 총장의 정치 참여 목표가 정권 교체임을 시사한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2일 윤 전 총장과 회동한 사실을 전하며 “윤 전 총장이 ‘몸과 마음을 바쳐 정권 교체에 충실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야권 인사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윤 전 총장이 입당을 결심한 배경은 ‘이준석 돌풍’이 결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윤 전 총장과 국민의힘 양측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국민의힘이 이념적으로 수구 보수에서 탈피하고, 꼰대 정당으로 불렸던 기득권을 내려놓는 징후를 보인 것에 윤 전 총장 마음이 움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준석 미래통합당(옛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이 대표가 될 경우 입당 명분이 된다는 뜻이다. 나아가 ‘이준석 돌풍’이 대선 승리를 위한 보수 지지층의 전략적 선택이라고 보면, 야권 1위 주자인 윤 전 총장 본인에게 그 선택이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읽힌다.
대선이 임박할수록 거대 여야 중심의 정치 양극화 현상이 강해지는 기류도 입당 결심을 부추긴 요인일 수 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4·7 재·보궐 선거 이후 보수 동조 현상이 강했던 중도·무당파들이 보수층으로 회귀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제1 야당 입당은 문재인 정권과의 갈등으로 형성된 인지도 효과를 최대한 살리는 방법이기도 하다. ‘정시출발론’을 주장해 온 이 전 최고위원도 이날 “윤 전 총장이 입당하면 잘 모시겠다”고 했다.
그러나 윤 전 총장이 입당 후 탄탄대로를 걷게 될지는 불투명하다.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한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다. 사면론까지 덧붙여진 전직 대통령 박씨 탄핵 문제는 국민의힘의 최대 난제다. 야권 내부의 혹독한 검증 공세를 피할 수 없다. 현재 지지율이 유지되지 않는 한 ‘n분의 1’ 주자로 순식간에 수직 하강한다.
신당 창당설이 식지 않는 배경이다. 야권 관계자는 “윤 전 총장이 독자 세력화를 택해야 윤석열 현상의 본질을 잃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최대 지지 기반인 중도·무당층의 지지를 살리고, 기득권 정치에 맞서는 정치 교체를 이뤄야 한다는 뜻이다. 윤 전 총장은 ‘조국 사태’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대치전에서 공정 이미지를, 전직 대통령 이명박·박근혜씨 구속 수사에선 정의롭다는 평가를 얻었다. 공정과 정의는 사실상 ‘정치 신인 윤석열’의 유일한 브랜드다. 독자 세력화는 당파적 딱지가 붙는 국민의힘 입당에 견줘 브랜드 가치를 살리는 틀이 될 수 있다.
일각에선 2014년 신당 창당을 준비하던 안철수 당시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이 창당 준비 한달 만에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전격 합당을 선언한 사례를 거론한다. 여권 관계자는 “어렵고 힘들어도 안철수 신당이 만들어졌다면 ‘안철수 정치’가 신기루처럼 사라지진 않았을 것”이라며 윤 전 총장의 국민의힘 입당설에 부정적 의견을 냈다.
독자 세력화로 방향을 잡는다 해도 발걸음이 가볍진 않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를 향했던 칼날이 자신의 가족에겐 무뎌질 땐 불공정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국가 운영에 필요한 리더십이 부재한 점은 중대한 리스크다. 문재인 정부와의 대립으로만 성장했을 뿐 정치 진입 초읽기에 돌입한 지금까지도 ‘윤석열표’ 비전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윤 전 총장은 지인들에게 “진짜 정치는 질문을 받을 때부터”라고 말했다고 한다. ‘윤석열 정치’가 정권 교체와 정치 교체의 갈림길에서 아직 답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고백으로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