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장들의 등판. 차기 대선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여당에선 이재명 경기지사가 오는 21일 출마를 선언하고, 양승조 충남·최문순 강원지사는 이미 출사표를 밝혔다. 이낙연 전 대표와 이광재 의원도 각각 전남지사와 강원지사를 거쳤다. 야당에선 원희룡 제주지사도 대선 출발선을 향하고 있다. 지자체장들이 대선 앞으로 바짝 다가선 것은 지난 대선부터다. 하지만 출마자 규모나 정치 환경을 보면 차기 대선은 명실상부한 지자체장들의 무대가 되고 있다. 자치와 분권이 국가운영 기조로 자리매김하면서 지자체장들에게 활로를 제공했다. 이들의 등판으로 안보 등 거대 담론이 아닌 불평등, 양극화 같은 생활정치 이슈가 대선 화두로 자리잡는 중이다. 정책 대선을 이끄는 촉매가 될 것이란 기대가 따라 붙는다. 지역과 중앙, 지역민과
국민 사이에서 ‘민주주의 정원사’ 역할을 자처해 온 이들의 꿈이 대선에서도 통할 수 있을까.
양승조 충남지사가 지난 3일 국회에서 대선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최문순 강원지사가 3일 국회에서 대선 출마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그간 ‘지역성’은 중요한 정치·사회적 가치로 존중받지 못했다. 국회에서도 지역 의제는 주변부 의제로 취급당하거나 지원만 해주면 그만인 시혜성 분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전대미문의 재난은 지자체장들을 주목하게 했다. 먼 미래 보다 지금 내 삶을 일으켜세워야 한다는 시민들의 고민은 지역 중심의 공존을 모색하게 했다. 코로나19로 도청 옆 단골 가게가 문을 닫고, 지역민들이 실직하는 아픔을 현장에서 목격한 지자체장들은 원칙과 관례를 강조하는 중앙정부의 방침을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 국회는 지원을 결정해도 행정부 견제, 즉 행정부를 통해 예산을 집행하는 기관이라 더딜 수밖에 없다. 서울시를 비롯해 경기, 경남 등에서 재난지원금 지급을 선제적으로 제안했다. 또, 정책을 제안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곧바로 집행했다. 보편과 선별로 갈린 지급 방식 문제도 사실상 지방정부가 주도했다. 시민들은 코로나19에 무너진 삶을 일으켜 준 지역 리더들의 모습을 지근거리에서 보며 지역 공동체와 지역 정치의 중요성을 체감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컬리지 교수는 8일 “사회가 발전할수록 제도적 해결책을 요구하는 흐름이 강화된다. 특히 위기일수록 정치 리더들의 신속한 대응력,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정책 집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라는 펜데믹이 지자체 리더들의 무게를 키웠고, 시민들은 이들로부터 정치 효능을 실감하게 됐다는 뜻이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서울 성북구의 생활임금제를 언급했다. ‘지역주도형’ 정치라는 말도 등장했다.
지방자치 30년의 결실도 간과할 수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자체장들은 지역구 의원, 특히 다선·중진 의원들일수록 눈치를 살펴야 했다. 하향식 공천의 폐해였지만 국회가 정치 권력을 독점한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지역 내 신망을 받는 정치인들이 단체장으로 선출되는 추세다. 미진한 수준이긴 해도 지역구 예산 배정 등 지자체의 권한이 늘어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지역균형발전론, 문재인 정부의 연방제 수준 자치분권이라는 국가 운영기조가 지자체장들이 한발 더 나아가는 토대가 됐다. 지방자치 20년 만인 2015년엔 전국자치분권민주지도자회의가 출범했다. 광주 광산구청장을 지낸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지역 정치세력이 자치 분권이라는 깃발 아래 모여 공개적으로 정파를 결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판 DLC’(미국민주지도자회의)였다. DLC는 도널드 레이건 대통령 재선 직후인 1985년 창설돼 미국 민주당의 노선을 경제·실용이라는 제3의 길로 이끈 풀뿌리 정치인들의 조직이다. 1990년 DLC 의장이었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미국 내 32번째 작은 주 아칸소의 주지사였다.
그러나 이들의 대선 가도가 장밋빛만은 아니다. 국회로 대표되는 중앙정치가 정치를 틀어쥐고 있을 뿐 아니라 지방정치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한계도 여전하다. 서울 은평구청장을 지낸 김우영 청와대 전 자치발전비서관은 “입법, 재정, 행정 등 각 분야에서 실질적인 분권은 이뤄지지 못했다. 헌법에도 지방자치 기구를 ‘정부’ 개념이 아닌 ‘단체’로 규정하는 등 지방자치 개념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 초반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개헌을 시도했지만 결국 국회의 벽에 막혔다. 제도적 한계는 지자체장 출신 대선 주자들을 움츠러들게 한다. 지역 의제를 정치의 주류 담론으로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측면이지만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지자체장 출신 인사는 지도부 입성에 실패했다.
지자체 대선이라 해도 수도권 쏠림 현상이 나타난다. 수도권 출신 후보들이 인지도 등에서 유리한 고지에 올라 있다. 능력주의, 시장 중심의 경쟁을 예고한다. 지역 리더를 양성하고 지역의 완결성과 공동체성을 갖추려면 분권 가치를 강화하는 것이 숙제다.
대선을 정치 생명 연장을 위한 경유지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대선 후광효과’에 집중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