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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군 훈련소에서 제일 먼저 듣는 말은 ‘너 여자 아냐. 군인이야’입니다. 하지만 막상 현장 실무에 가면 ‘네가 무슨 군인이냐’고 해요. 군대에서는 (여성을) 사람으로도, 군인으로도 보지 않아요. 여자로 봅니다.”

지난 7일, 성추행 피해 신고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공군 이모 중사의 빈소를 찾은 30대 여성 A씨의 말이다. 군 출신으로 20대 초반 해군 하사로 임관한 그는 두 차례 성추행을 당한 뒤 군대를 떠났다. A씨는 전역 이후 여러 해가 지났지만 여군을 ‘여자’로 보는 군 내 인식이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음을 이 중사 사건으로 깨달았다고 했다.

공군 부사관 성추행 사망 사건은 군대 내 여군의 열악한 지위를 보여준 사건이다. 1950년 여군 창설 이래로 군대 내부는 물론 한국 사회는 여군을 암묵적 또는 명시적으로 성적 대상화 해왔다. 여군의 역사는 곧 차별의 역사이기도 했다.

1971년 9월 제 21주년 ‘여군의 날’ 을 기념해 열린 ‘미스 여군 선발대회’의 모습. 참가자들은 군복에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무대에서 외모를 평가 받았다. 1972년 대회가 폐지되기 전까지 수영복 심사도 이뤄졌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71년 9월 제 21주년 ‘여군의 날’ 을 기념해 열린 ‘미스 여군 선발대회’의 모습. 참가자들은 군복에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무대에서 외모를 평가 받았다. 1972년 대회가 폐지되기 전까지 수영복 심사도 이뤄졌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국 첫 여성 국가보훈처장이었던 피우진 공군 예비역 중령은 여군 차별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대위 시절 그는 여군들을 술자리에 보내라는 남자 상관 지시에 시달렸다. 어느 날 여군들에게 사복을 입혀 술자리에 보내라는 지시를 받고 이들에게 전투복을 입히고 총기를 들려보냈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이 일로 그는 상관에게 미운털이 박혔고, 2006년 유방암 수술로 가슴 한 쪽을 절제했다는 이유로 2급 장애 판정을 받아 강제 전역을 해야 했다.

1970년대까지는 여군의 성적 대상화가 보다 노골적으로 이뤄졌다. 1972년까지 열린 ‘미스 여군 선발대회’와 ‘지·용·미 여군선발대회’가 그것이다. 이 대회에 참가한 여군들은 군복은 물론 수영복을 입은 모습을 무대 위에서 선보이고 심사를 받아야 했다. 군인으로서의 업무 능력과는 상관 없이 오로지 외적 매력만으로 평가된 것이다.

1972년 9월, 여군의날 22주년 기념 모범 여군선발대회를 준비하는 참가자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1972년 9월, 여군의날 22주년 기념 모범 여군선발대회를 준비하는 참가자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 대회 관련 사진 자료들은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에 전시돼있다가 2015년 “여군의 성을 상품화한다”는 언론이 비판을 받고나서 철거됐다. 사진 속 여군들은 미인대회의 상징과도 같은 ‘사자머리’에 짙은 화장을 하고,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는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최근에는 여군을 소재로 한 콘텐츠들이 차례로 논란을 빚었다. 2017년 웹툰 <뷰티풀 군바리>는 여군을 성적 대상화하고 조롱한다는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여성도 군대에 간다는 설정의 이 웹툰은 군대의 부조리를 고발한다는 취지로 시작됐으나 정작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장면으로 가득했다. 이에 연재 중단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2015년부터 여성 징병재를 소재로 연재되고 있는 네이버 웹툰 <뷰티풀 군바리>

2015년부터 여성 징병재를 소재로 연재되고 있는 네이버 웹툰 <뷰티풀 군바리>

남성 잡지 <맥심>은 최근 출간한 6월호에서 밀리터리 컨셉의 비키니 등을 입은 여성 모델들의 화보를 선보였다. 여성 모델의 신체가 노골적으로 강조된 화보 곳곳에는 ‘Thank you for your service(당신의 복무에 감사드립니다)’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등 문구가 적혔다. 맥심 측은 “국군 장병의 노고와 희생에 감사를 표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남성들의 군 복무를 치하하는 수단으로 여성의 신체가 활용된 것이다.

이 밖에도 여군을 상대로 한 각종 성범죄와 차별 행위는 계속되고 있다. 2013년 육군 장교 오모 대위는 상관의 성관계 요구를 거부한 뒤 이어진 괴롭힘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유서에 “제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저는 명예가 중요한 이 나라의 장교입니다”라고 남겼다. 지난해 5월에는 육군 장교가 가족을 동반한 회식에서 직속 부하인 여군을 성추행했다가 군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최민지 기자 ming@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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