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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애하는 망한 요리들

입력 2021.06.09 14:58

수정 2021.07.01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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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한끼’는 음식, 밥상, 먹는 일에 관해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코너입니다.

“너는 평소에 맛있는 것 많이 먹어서 좋겠다. 사먹는 것보다 맛있어!” 집에 누군가를 초대해서 한상 차려내면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평소에 내가 그 레시피를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맛없는 시작품들을 먹어치워냈는지 말이다.

요리를 많이 한다는 것은 망한 요리를 많이 먹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빈곤한 자취러로서 최대한 재료의 낭비를 막고, 공리주의 차원에서 나의 최소 절망 최대 행복을 위해 바람직한 결과물을 추구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일이 많다. 행복은 하나지만, 수천가지 불행엔 수천가지 이유가 있다는 말처럼 나의 실패작들은 하나하나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마음을 상하게 했다.

예를 들어 처음 딸기크럼블을 만들었을 때 충격적으로 엉망인 ‘곤죽딸기’에 마음에 상처를 입어서 하루 종일 기분이 깜깜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버터가 부족해서 원래 레시피의 절반 크기로밖에 만들지 못했던 것이다. ‘튀기면 신발도 맛있다’를 포함해 내 요리인생 두가지 지론 중 하나였던 ‘딸기는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를 버리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두번째로 시도했을 때는 그나마 딸기를 덜 태우긴 했지만 여전히 곤죽모양이라 하나는 구워낸 김에 먹었고, 나머지 한조각은 냉장고에서 곰팡이 색깔을 보고서야 내 배 대신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생을 마감했다.

식사용 깜빠뉴를 만들었을 때 건포도와 건크랜베리를 넣었는데 이미 발효될만큼 발효된 탱탱한 반죽 안으로 견과가 하나도 못 스며들어간 바람에 놀부심술점처럼 동그랗게 탄 채로 외측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것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그래도 아까운 마음에 점 하나를 떼어 먹어봤는데 맛이 마치 수만년 전 화석을 떼어먹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반죽을 하는 과정에서 중간 발효 때 접어 넣어야 안에 폭 들어간다. 나는 마지막에 반죽 위로 솔솔 뿌려놓으면 건포도가 굉장히 신묘한 자연의 섭리에 의해 저절로 파고 들어가는 줄 알았다.)

외식으로 먹었던 훠궈 소스가 왠지 두반장과 땅콩버터, 마요네즈를 섞은 것 같아서 나름대로 집에서 비율을 고심해서 ‘특제 소스’를 만들었다. 두반장이 그렇게 짠 소스인 줄 모르고 거의 작은 한통 절반을 쏟아부었는데, 결국 그 소스는 하나뿐인 실험 대상에게 며칠간 막대한 탈수증상(설사)을 일으켰다.

일본식 감자고기조림을 하고 어설픈 양으로 남은 감자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어느 블로그에서 본 레시피대로 ‘전자렌지감자’를 만들었을 때의 일이다. 치즈와 우유, 마요네즈 등을 적당히 넣어 도저히 맛없을 수가 없는 레시피라고 생각했는데 맛보니 치즈와 우유와 마요네즈의 나쁜 맛들만 모아놓은 맛이었다. 눈을 감고 미간을 슬쩍 가운데로 모은채 멸균우유의 비릿한 맛과 싸구려 체다치즈의 누리끼리한 맛, 미지근하게 데워진 마요네즈의 시큼한 맛이 가엾은 감자를 둘러싸고 몰매를 때리고 있는 걸 망연히 감상했다. 누군가가 보면 지고의 미미(美味)를 전심을 다해 먹고 있는 까다로운 미식가같아 보였을 수도 있겠다.

아, 최근엔 인스타그램에서 일본 호텔 조식 오믈렛 장인의 ‘완벽한 오믈렛’ 만들기 영상을 보고선 쓸데없는 도전 정신에 불타올라 오믈렛 대신 ‘수상한 스크램블드에그’를 3일 내내 먹게 된 적도 있다. (스크램블드에그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망한 오믈렛’에 붙일 수 있는 이름이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진다.)

호텔 조식 오믈렛의 이상(왼쪽)과 실제(오른쪽). 일부러 이렇게 만든 게 아니다. 아마도.

호텔 조식 오믈렛의 이상(왼쪽)과 실제(오른쪽). 일부러 이렇게 만든 게 아니다. 아마도.

이런 실패들을 최대한 막기 위해 누군가의 이름 석자만 대면 철썩같이 믿을만한 레시피를 찾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의 입맛은 저마다 다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각박한 현대 사회에선 레시피도 믿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세상엔 주말마다 헌신적으로 봉사를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망한 레시피를 블로그에 올려두고 누군가의 저녁 식사를 망치는 것이 즐거움인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물론 통계적으로 레시피 문제가 아니라 내 손이 문제인 경우가 더 많긴 하다.

자취 요리사는 실패작을 끊임없이 먹어치워야하는 시지프스같은 운명을 지닌다.

누군가는 차라리 그 노력과 재료값이면 배민 앱을 켜는 것이 나았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나의 망한 요리 사전’에 다채로움을 더해줄 한 사례를 추가한다. 이런 갈팡질팡이 도움이 되는 부분은 있다. 일단 한번 망할 때마다 그런 짓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교훈을 (굳이) 몸으로 직접 익힌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아주 가끔 만들어지는 ‘어라 이번 것은 먹을만 한데?’가 주는 뿌듯함은 맛없는 시작품을 오백번 먹어본 초보 요리사들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불광동솜주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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