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캔스피크

③닭 “평생을 갇혀 치킨과 달걀이 돼요”

김기범 기자 · 최유진 PD

📽 [스튜디오 그루] 애니캔스피크 ep.3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어두운 감옥, 그것도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 철창 안에서 알만 낳다가 사형 당하는 2년 동안의 삶. 풀밭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먹이를 먹을 수 있고, 피를 빨아먹는 해충을 떼어내기 위한 목욕도 즐길 수 있는 4년 동안의 삶.

전자는 한국의 대부분 산란계가 겪는 삶이고, 후자는 동물복지농장에서 사는 극히 적은 수의 닭들이 겪는 삶의 형태이다. 평생 알을 낳고, 누군가에게 뺏긴다는 것은, 그리고 언젠가 도축당할 운명이라는 점에선 차이가 없지만 두 삶의 방식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도록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전자를 택하는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두 삶은 수명에서뿐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느낄 고통과 행복의 차이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산란계 농장에 사는 닭들 역시 선택이 가능하다면 전자를 고를 것이다. 그나마 산란계들은 2~4년이라는 생존 기간을 보장받지만 고기를 얻기 위해 기르는 육계는 알에서 깨어난 지 불과 6주 만에 도축된다. 도축하지 않고 기르거나 야생에서 천수를 누릴 경우 닭의 수명은 20~25년에 달한다.

■닭뼈로 역사에 남게 될 ‘치킨 인류’

닭이 인류와 공생, 또는 인류에게 사육 당하기 시작한 것은 약 4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꿩과에 속하는 닭의 원종은 인도, 말레이시아, 미얀마 등에 살던 들꿩이다. 인류가 수많은 조류 가운데서도 닭을 가축으로 삼게된 것은 닭의 조상들이 지닌 특징들 때문으로 추정된다. 인류가 다루기 적당한 크기와 뛰어난 번식력, 다른 새들보다 알을 자주 낳고, 암컷만 있어도 알을 낳으며 멀리 도망칠 만큼의 비행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은 인류가 사육하는 데 있어 큰 장점들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장점들로 인해 닭은 돼지, 소, 말 등 포유류가 아닌 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인류에게 선택된 동물이 되었고, 인류에게 양질의 단백질을 제공하는 가축이 되었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닭의 수는 약 660억마리로 이는 인간과 다른 가축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은 수이다. ‘치킨인류’라는 책에는 지구상에 살고 있는 닭이 이처럼 많다는 점을 들어 “지구는 어찌 보면 닭의 행성인 셈”이라는 내용이 들어있기도 하다.

이처럼 닭의 수가 많다보니 과학자들 중 일부는 닭뼈를 지질시대가 바뀌었다는 징표 중 하나로 보기도 한다. 인류가 지배적인 종으로서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재는 지질시대 분류상 신생대 제4기 현세(現世), 또는 홀로세(Holocene)라고 부른다. 그런데 일부 과학자들은 인류가 만들어낸 산물들이 지구 전체 지질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지질시대가 인류세(Anthropocene)로 접어들었다고 주장한다. 플라스틱, 온실가스, 방사성물질 등과 함께 인류세의 징표로 꼽히는 것이 바로 닭뼈이다.

경기도 연천의 동물복지 산란계 농장에서 닭들이 계사 안에서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 최유진PD

경기도 연천의 동물복지 산란계 농장에서 닭들이 계사 안에서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 최유진PD

■ 인류는 닭과 ‘공생’하고 있는가

생물의 목적이 번식에 있으며 가축들이 인류에게 일방적으로 선택된 것이 아니라 인류를 이용해 개체 수를 늘리고, 멸종의 위기로부터 벗어나 안정적으로 종을 유지하고 있다고 여기는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닭은 인간을 이용하는 데 있어 가장 성공한 생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사육당하는 닭 개체의 고통이나 행복은 무시하고, 닭이라는 종 자체의 생육과 번식에만 초점을 둔 이야기이다. 현재 사육 상태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닭들에게 사육이라는 형태로 인간과 공생하면서, 먹이를 공급 받으며 짧은 삶을 살 것인지, 야생으로 나가 포식자에게 위협당하고, 먹이를 구하기 위해 애를 써야하는 삶을 살지를 고르라고 한다면 더 많은 수가 야생의 자유로운 삶을 고를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구상에서 사육되고 있는 닭들 대부분이 살고 있는 환경인 공장식 축산 방식의 농장은 닭들에게 있어 지나치게 가혹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A4 용지 한 장 정도 케이지에서 평생 갇혀지내면서 평생 알만 낳다가 태어난 지 2년여 만에 도축되는 산란계들의 삶은 지옥이나 다름없다. 평생 햇빛 한번 보지 못하고 사는 대부분의 산란계들은 좁은 공간에 갇혀 평생을 지나다보니 땅에 내려놓아도 걷지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경기도의 한 기업형 공장식 축산 방식 산란계 농장의 모습. 김기범 기자

경기도의 한 기업형 공장식 축산 방식 산란계 농장의 모습. 김기범 기자

게다가 인간들은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즉 알 낳는 기계로서의 산란계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고안했다. 바로 닭이 계속해서 알을 낳도록 하는 ‘강제 환우’와 스트레스로 인해 다른 닭들을 쪼지 못하도록, 또 사료를 골라먹지 못하도록 부리를 지지는 것을 말하는 ‘부리 다듬기’ 등이다. 인간 입장에서는 알을 더 많이, 빨리 생산하기 위한 조치이겠지만 고통을 겪어야 하는 닭 입장에서 강제 환우와 부리 지지기는 이유 없이 당하는 고문처럼 여겨질 것이다.

강제 환우는 닭이 알을 많이 생산하도록 계사 안의 불을 끄고, 물을 주지 않으면서 깃털갈이를 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닭은 알에서 깨어난 후 보통 130일 뒤면 산란이 가능해지는데 1년 정도가 지나면 산란률이 낮아진다. 산란률은 대체로 80%에서 50~60%까지 낮아지는데 강제환우를 하면 다시 산란률이 회복된다. 일반 농장에서는 약 2년 동안 최대 3번까지 강제환우를 하는 경우도 있다. 강제환우를 하는 동안 닭들은 극도의 목마름과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 닭들이 모인 지옥이 있다면 이곳

공장식 축산 농장의 닭들이 평생 겪어야 하는 고통 가운데는 밀집식 사육 방식으로 인한 해충 피해도 큰 몫을 차지한다. 바로 닭의 피를 빨아먹는 진드기와 이 등이 상시적으로 좁은 케이지 안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경향신문이 2019년 9월 방문했던 경기도의 한 공장식 축산 방식 산란계 농장에서도 케이지의 금속 부분에 숱한 진드기가 달라붙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야행성인 진드기들은 닭들이 휴식을 취하는 밤에 활동하면서 피를 빨아먹는다. 야생에서라면 모래목욕으로 진드기들을 떼어내겠지만 움직이기도 힘든 케이지 안에서 닭들은 이들 해충으로 인한 고통을 피할 길이 없다.

경기도의 한 기업형 공장식 축산 방식 산란계 농장의 모습. 김기범 기자

경기도의 한 기업형 공장식 축산 방식 산란계 농장의 모습. 김기범 기자

이처럼 좁은 케이지 안에 존재하는 진드기들은 2017년 논란이 됐던 살충제 '피프로닐'에 오염된 계란처럼 계란이나 닭고기 등을 오염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보통 진드기를 없애긴 위한 살충제 도포는 노후한 닭을 도축하면서 계사를 비울 때 이뤄진다. 이때 계사 안에 잔류해 있던 살충제에 닭들이 노출되면서 계란이나 고기에도 살충제 성분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살충제를 뿌려 진드기를 없애도 번식력이 워낙 강한 탓에 다른 계사에 남아있던 진드기가 번지는 것을 막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로 인해 축산업 관계자들 중에는 “공장식 축산으로 생산된 계란은 살충제 때문에 안 먹는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최근의 공장식 축산 방식의 기업형 농장들은 외부에서 보면 농장이 아닌 공장 단지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내부도 인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부분 자동화돼 있지만 닭 입장에서 보기에 내부 환경은 여전히 극히 열악하다. 좁은 공간에서 많은 닭을 기르면서 쌓인 배설물의 냄새와 닭들이 만들어내는 먼지로 인해 눈을 뜨고 있기조차 힘든 상태다. 닭들의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런 곳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좁고 더러운 환경에서 살다보니 닭이 병에 걸릴 위험도 높기 때문에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는 항생제를 다량으로 투여하는 경우도 많다. 일부에서는 아직 병이 돌고 있는 것도 아닌 데도 예방적 차원에서 항생제를 투여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짧아도 ‘본능대로’ 살 수 있는 생애가 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닭은 인간과 공생하면서 종으로서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각각 개체의 행복은 포기한 종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인류 중 일부가 동물의 복지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동물의 복지가 인간의 건강과 안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이런 상황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인간에게 사육당하는 닭들 중에서도 짧은 생애일망정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본성대로의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농장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경기 연천 왕징면의 동물복지농장인 서연농장에 자유롭게 노닐고 있는 닭들의 모습. 김기범 기자

경기 연천 왕징면의 동물복지농장인 서연농장에 자유롭게 노닐고 있는 닭들의 모습. 김기범 기자

지난 4일 경향신문 취재진이 방문한 경기 연천 왕징면의 동물복지농장인 서연농장에 사는 닭들은 일부 반려계들을 제외하면 한국에 살고 있는 닭들 가운데 가장 행복한, 즉 가장 야생에 가까운 사육환경을 누리면서, 본능대로의 행동을 보장받는 개체들일지도 모른다. 이날 오후 취재진이 서연농장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본 풍경은 넓은 사과나무 과수원에서 자유롭게 노닐고 있는 닭들의 모습이었다. 흰 수탉들과 갈색의 암탉들이 초록색의 작은 사과 열매가 달린 나무 그늘에서 풀을 뜯고, 모래 목욕을 하는 모습은 “여기가 닭들의 천국인가”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하는 풍경이었다.

서연농장에서 현재 사육 중인 닭의 수는 약 7500마리 정도다. 총 3개의 계사에서 2500여마리씩을 기르고 있는데 낮에는 사과나무 과수원에 방목했다가 밤에는 평사 형태의 계사로 들어가서 잠을 잔다. 닭들은 사료를 먹기도 하지만 사과나무 아래쪽에 열린 열매를 먹기도 하고, 자유롭게 풀을 뜯어먹거나 곤충, 개구리 등을 잡아먹기도 한다. 3단, 4단으로 케이지를 쌓은 것이 아니라 평평한 바닥 형태인 계사 안에는 횃대가 있어서 본능대로 횃대 위로 올라가 서있기도 하고, 잠을 잘 수도 있다. 서연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장용호 대표는 “일반 농장이 1㎡당 18마리를 기르는 데 비해 우리 농장은 1㎡당 사육 수가 6마리”라며 “면적도 차이가 크지만 무엇보다 큰 차이는 방사를 한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의 동물복지 인증제도는 2012년 시작됐으며 인증을 받은 농장의 축산물에는 표시를 부착해 다른 축산물들과 구분할 수 있다. 2020년 현재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산란계 농장은 모두 168곳이며 이 숫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는 전체 산란계 농장 936곳의 17.9%에 해당하는 수치다. 마릿수로는 전체 7270만마리 중 286만마리 정도가 동물복지 농장에서 사육되고 있다. 또 육계 농장 가운데 동물복지 농장은 전체 1597곳의 6.1%가량인 97곳이다. 마릿수로는 9483만마리 중 720만마리가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농장에서 사육되고 있다.

동물복지농장 인증을 받으려면 케이지 대신 평사나 방사 사육을 해야 하며 1마리당 15㎝의 횃대를 제공해야 한다. 사육밀도는 바닥면적 1㎡당 9마리 이하여야 하며 강제 환우를 실시해서는 안 된다. 다만 방목은 인증에 있어 필수 사항은 아니다.

경기도 연천의 동물복지 산란계 농장에서 닭들이 흙 목욕을 하고 있다. 최유진PD

경기도 연천의 동물복지 산란계 농장에서 닭들이 흙 목욕을 하고 있다. 최유진PD

■ 진열대에 전시된 계란 너머의 닭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닭들이 알을 낳는 기계, 고기가 될 재료 정도로 취급받는다면 동물복지농장의 닭들은 각각의 개체로서 인정을 받는다. 닭들도 자신들을 사육하는 사람들을 알아보고, 개체로서 인식한다. 장 대표의 부인인 서연농장 심인해 대표는 “닭들이 자신들에게 사료를 주는 사람을 알아보고, 사료를 자주 주는 이들이 계사에 들어가면 긴장하지도, 공격성을 보이지도 않는다”고 설명했다. 심 대표는 “닭대가리라는 말도 있지만 닭을 키워보니 닭들이 결코 어리석지 않다”며 “암탉의 병아리에 대한 보호본능도 매우 강하다. 모이를 줘도 새끼부터 먼저 먹도록 하는데 이런 부분은 공장식 축산을 했으면 몰랐을 것들”이라고 말했다. 장 대표는 “수탉이 개구리 같은 맛있는 먹이를 발견하면 자기가 먹지 않고, 암탉을 부른다”며 닭이 다른 개체들을 위할 줄 아는 동물이라고 말했다.

심 대표는 “아픈 개체는 따로 격리한 뒤 회복되도록 보살피는데 결국 회복되지 못하고 죽는 경우도 있다”며 “죽어가는 닭을 쓰다듬으면서 지켜봤는데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굉장히 슬펐다”고 말했다. 그는 “21년 동안 동물복지농장을 경영했는데 그때 닭도 죽는 고통을 아는 동물이라는 점을 처음 알았다”고 덧붙였다.

사람마다 농장동물에게 얼마큼의 복지가 필요한지에 대한 생각이 다른만큼 닭에게 어느 정도의 복지를 제공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은 각자 다를 수 있다. 어차피 도축당할 운명인 닭에 대해 복지가 왜 필요하냐고 묻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동물복지 방식으로 계란이나 닭고기를 생산하면 너무 비싸지지 않냐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닭에게 필요 이상의 고통을 주는 것은 반대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진열대에 전시된 계란을 넘어 그 알을 낳은 닭들에 대해 생각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계란을 사기 전 아직 국내의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사육 중인 1억5747만마리의 닭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면 어떨까.

‘스튜디오 그루’는 흔히 보고, 먹고,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물들의 삶을 ‘애니캔스피크’(Animal Can Speak)를 통해 그들의 언어로 소개한다.



계란에 적힌 앞자리의 숫자 네 개는 산란일자를 말한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1~4 중 하나의 숫자가 쓰여있는데 이 숫자가 바로 사육환경을 의미한다. 숫자 ‘1’은 방사 방식에서 생산된 계란이라는 의미다. 숫자 ‘2’는 평사. 숫자 ‘3’은 기존보다는 개선된 케이지, 숫자 ‘4’는 공장식 축산 방식의 좁은 케이지 환경에서 생산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기범 기자

계란에 적힌 앞자리의 숫자 네 개는 산란일자를 말한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1~4 중 하나의 숫자가 쓰여있는데 이 숫자가 바로 사육환경을 의미한다. 숫자 ‘1’은 방사 방식에서 생산된 계란이라는 의미다. 숫자 ‘2’는 평사. 숫자 ‘3’은 기존보다는 개선된 케이지, 숫자 ‘4’는 공장식 축산 방식의 좁은 케이지 환경에서 생산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기범 기자


■ 닭의 사육 복지는 결국 수요의 문제


대형 마트나 슈퍼마켓에서 파는 계란을 잘 살펴보면 여러 개의 숫자와 알파벳이 써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난각에 새겨져있는 숫자들을 잘 살펴보면 식탁에서 접하게될 계란이 어떤 농장에서 어떻게 사육된 닭에게서 나온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먼저 앞자리의 숫자 네 개는 산란일자를 말한다. 0611이면 6월 11일에 낳은 계란이라는 의미다. 날짜 뒤에 이어지는 알파벳은 각 농장의 생산자 고유번호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1~4 중 하나의 숫자가 쓰여있는데 이 숫자가 바로 사육환경을 의미한다. 숫자 ‘1’은 방사 방식에서 생산된 계란이라는 의미다. 경향신문 취재진이 방문한 경기 연천 서연농장 같은 동물복지농장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마트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숫자 ‘2’는 평사에서 길렀다는 의미로 방사를 하지는 않지만 비교적 닭의 복지를 존중한 환경에서 사육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숫자 ‘3’은 기존보다는 개선된 케이지, 즉 케이지 사육이긴 하지만 마리당 면적을 넓힌 환경임을 의미하고, 4는 기존 케이지를 의미한다. ‘3’이 새겨진 계란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며 마트에서 파는 계란의 대부분은 ‘4’ 즉 공장식 축산 방식의 좁은 케이지 환경에서 생산된 것이다.

동물복지를 표방한 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이들은 평생을 스트레스만 받으며 낳은 계란과 본성대로 살 수 있도록 존중받으며 낳은 계란은 영양적으로도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서연농장 장용호 대표는 “동물복지 계란은 포함된 콜레스테롤도 일반 계란과 수치 차이가 크고, 영양 성분도 다르다”고 설명했다.

장 대표와 부인인 심인해 대표는 21년째 이 농장을 경영하고 있는데 동물복지농장이라는 말이 생기기 전부터 닭들의 본성을 존중하는 환경을 꾸미고, 방사해서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하면서 농장을 경영해 왔다. 이들이 동물복지농장을 하게 된 것은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먹거리를 생산하겠다는 생각에서다. 서연농장이라는 이름도 부부의 딸인 장서연양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장 대표는 “2000년 처음 귀농을 해서 농장을 할 때부터 방사하면서 기르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며 “친환경 방식으로 바른 먹거리를 생산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경기도 연천의 동물복지 산란계 농장에서 암탉이 사과 나무 아래를 거닐고 있다. 최유진PD

경기도 연천의 동물복지 산란계 농장에서 암탉이 사과 나무 아래를 거닐고 있다. 최유진PD


그러다보니 ‘동물복지 무항생제 유정란’에 대한 수요가 높지 않았던, 아니 애초에 동물복지계란의 존재 자체를 많은 이들이 몰랐던 과거에는 적자 폭이 커지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동물복지인증제도가 없을 때는 가격을 더 받지도 못했던 탓이다. 하지만 부부는 딸의 이름을 딴 농장에서 제대로 된 먹거리를 생산하겠다는 일념으로 방사 방식의 사육을 계속했다. 현재는 동물의 복지를 고려한 계란, 질 좋은 계란을 찾는 소비자들이 많아진 덕분에 형편이 많이 좋아진 상태다. 무살충제, 무항생제에 사과 열매를 먹고 사는 서연농장 닭들이 생산한 유정란은 현재 생협에 독점 공급되고 있다.

일반 계란과 동물복지 계란은 먹는 사람의 기분도 달라지게 하는 측면도 있다. “나는 산란계의 고통을 최소화하면서 생산된 계란을 먹는다, 그리고 그런 계란을 먹음으로써 동물복지농장을 응원하고, 동물복지농장이 더 늘어나도록 지원한다”고 생각하는 이는 계란을 먹을 때의 행복감이 더 클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동물복지농장이 늘어나는 것은 결국 소비자 수요의 문제다. 동물복지 계란이 소량이긴 하지만 대형마트에 꾸준히 진열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동물복지 계란을 찾는 이들이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최근 계란 가격이 폭등한 것은 역설적으로 동물복지 계란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게 하면서 동물복지농장들에게 약간이나마 도움이 되고 있기도 하다. 공장식 축산 방식으로 생산된 일반 계란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동물복지 계란과의 가격 차이가 줄어들자 ‘이왕 비싸게 주고 먹는 거 동물복지 계란을 먹자’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장 대표는 “동물복지 계란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 그만큼 동물복지농장들에 도움이 되고, 동물복지 인증에 관심을 갖는 농장도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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