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지금부터 이십년이나 삼십년쯤 후에 이 세상에 살아남아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작년 6월 작고한 김종철 선생이 1991년 11월, ‘녹색평론’ 창간 때 던진 질문이다. 창간사 제목도 “생명의 문화를 위하여”였다.
이미 저 제목이 암시하듯, 오늘날 우리는 ‘반생명’ 문화 속에 산다. 벌써 2년째인 코로나19 사태는 물론 (초)미세먼지나 기후위기, 부동산 가격 폭등과 각종 투기경제의 창궐, 빈부 격차와 일자리 양극화, 그 와중에 날로 퍼지는 좌절감과 우울감 등이 생명을 갉아먹는 ‘반생명’의 징후다. 깊이 보면 이 경험적 고통의 배후엔 대량생산-대량유통-대량소비-대량폐기 속에 작동하는 현 경제시스템이 있고, 또 그 배후 추동력은 자본과 권력이다.
근대 자본주의 산업화는 근본적으로 자연으로부터 인간의 분리, 공동체로부터 개인의 분리, 인격체로부터 노동력의 분리, 농촌으로부터 도시의 분리를 내포한다. 이 분리는 결코 자발적·평화적인 게 아니라 강제적·폭력적 과정이었다. 김종철 선생은 2019년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에서 “지난 수백년간 세계의 주인 노릇을 해온 서구문명은 하나의 전체로서 비서구세계에 대한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 지배와 정복을 통해서만 번영을 누리고, 확장되어올 수 있었다”고 했다. 이렇게 자본주의는 폭력의 역사다.
그런데 이 폭력은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집집마다 태어난 아기들을 보라. 얼마나 소중한가? 모든 아기는 하늘의 선물이요, 세상에 둘도 없는 보배다. 그러나 학교 가기 시작하고 시험 치기 시작하면 그 보물 같은 존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A급에서 E급까지 평가, 분류된다. A·B급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고급 노동력으로, C급 이하는 저급 노동력으로 취급될 예정이다. A급은 평생 우월감으로 살고, E급으로 갈수록 열등감으로 산다. 그러나 A급 역시 언제 탈락할지 모르는 치열한 경쟁 앞에 깊은 두려움을 느낀다. 근본적으로 보면, A·B급이건 C·D·E급이건 인간성을 상실하기는 마찬가지다. 노동시장의 필요, 즉 자본의 필요에 따른 인간성 파괴다. 바로 이것이 진행형 폭력이다.
이렇게 하나의 인격체가 노동력으로 정의되는 것 자체가 폭력이다. 자본주의 경제란 바로 이 인간의 폭력적 변환을 전제한다. 그 폭력 과정을 견딘 이들이 개별 자본 간 경쟁에도 적극 참여한다. 그리하여 대다수 회사인간의 구호는 ‘우리 기업이 살아야 내가 산다’이다. 나아가 ‘강한 나라가 살아남는다’고 믿는다. 모두 ‘강자 동일시’다.
그러나 상기해 보라. 30년 전까지만 해도 도시·공단 등에서 일하던 이들이 명절을 맞아 고향 어르신들을 찾았을 때는 ‘농촌 인심’이나 ‘이웃사촌’이 여전히 살아 있었다. 도시나 공단에서 노동력 취급 받던 이들이 고향 마을에 가서야 인격체가 됐다. 농어촌 공동체엔 여전히 우애와 환대, 공동체, 공생공락의 정신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오늘날은 도시나 시골이나 상품·화폐 가치가 압도적이다. 사람도 노동력의 가치로 평가되고, 논밭이나 산조차 평당 가격으로 취급된다. 선생도 1998년 ‘땅의 옹호’에서, “우리는 그동안 이러한 (삶의) 토대가 끊임없이 훼손되는 과정을 근대화, 개발, 경제발전, 세계화라고 불러왔고, 그것을 문명된 삶을 위한 역사적 진보로, 혹은 적어도 불가피한 시대적 추세로 받아들여왔다”고 비판했다.
더 불행한 것은, 이런 식의 태도를 이 땅에서 보수적인 이들만 지닌 게 아니란 점이다. 이른바 민주진보 인사들도 자본주의 경제발전이나 현대화를 그 근본적 폭력 과정을 도외시한 채 오로지 그 외형만 보고 칭찬해왔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이윤 증식 자체가 폭력 과정이기에, 단지 그 부작용만 개선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이런 면에서 나는 신영복 선생이 말했던,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愚直)함이 세상을 바꾼다”는 경구에 주목한다. 이 우직함은 전통적 농촌공동체 어른들이 터득한 지혜에도 있다. 일례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정직), ‘콩 한 알도 세 사람이 나눠 먹는다’(우애), ‘콩 세 알을 심어 한 알은 새가, 또 한 알은 벌레가, 나머지는 사람이 먹는다’(조화) 등이다.
이런 태도가 곧 김종철 선생이 강조한 ‘풀뿌리민주주의’의 근본 동력이다. 이제 우리는 선생이 고군분투하다 넘어진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손잡고 일어서야 한다. 마을마다 아직도 서 있는 고목을 볼 때마다 나는 ‘녹평’ 김종철 선생을 그리며 묻는다. “아직 희망이 있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