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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보다 거품

세상은 미쳐 있나? 2007년 가을 필자가 경제지에 쓴 칼럼의 제목이다. 세계 금융의 중심 미국에서 절대로 거품이 아니라던 주택 가격이 계속 추락하고, 저소득층의 내 집 마련 꿈을 실현시켜주는 환상의 발명품이라던 서브프라임모기지 채권이 곳곳에서 파열하고 있을 무렵이다. 그래도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던 세계 금융시장을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시장이 미쳤을 때 들어가서 깨어나기 전에 탈출하는 것이 벼락 갑부가 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투자 격언을 소개하는 글이었다. 필자의 제목이 부담스러웠는지 편집자가 엉뚱한 제목으로 바꿔버렸지만.

송의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송의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1년 뒤 대공황 이후 최대 금융위기가 세상을 강타했다. 학계에서는 원인을 두고 백일장이 벌어졌다. 금융 세계화, 신종 파생금융 상품, 펀드매니저 보상체계에서부터 중국의 과잉저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대상이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몇 년 뒤 인간의 비합리성을 강조하는 행태주의 금융경제학으로 유명한 하버드의 슐라이퍼 교수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이런 진단은 모두 표피적이라고 하면서 근본 원인은 인간의 탐욕과 인지 능력의 한계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빠른 신용 팽창을 강력 규제하는 것이 유일한 해독제인데 이게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니 앞으로도 대규모 금융위기는 반복해서 발생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세계 경제는 지금 어떤 상태에 있을까? 그때처럼 거품 붕괴의 가능성을 염려하는 사람은 소수인 듯하다. 더 뜨거운 논쟁은 물가상승률이 일시적인지 아닌지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자산시장에 거품이 끼여 있지 않다면 시장이 물가상승률 증가를 왜 그리도 걱정하는지 모르겠다. 세계 경제가 바이러스로 인한 비정상적 불황에서 탈출하면서 내려갔던 가격이 회복되고,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공급망 장애가 발생하면서 물가가 오르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리고 일시적 현상일 가능성이 높다. 설사 과도한 경기부양으로 높은 물가상승률이 자리 잡고 금리가 인상된다고 해도 투자자들이 크게 두려워할 일은 아니다. 기업의 이윤과 건물의 임대료는 물가와 연동성이 높은 자산이다. 금리가 물가상승률에 비해 너무 빠르게 오르지만 않으면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위험이 커진다고 할 수 없다.

문제는 자산 가격 거품 가능성이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초저금리에서 통화량이 생산액에 비해 폭증하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돈을 계속 찍어내도 인플레라는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으니 중앙은행은 환자가 반응할 때까지 계속 투약량을 늘렸고,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자 아예 병째로 부어버렸다. 하지만 물가는 안 올라도 자산 가격은 빠르게, 코로나19 이후 더 빠르게 상승했다. 물가에 연동된 기업 이윤과 주택 임대료는 천천히 증가하는데 주식과 주택의 가격이 급등하는 것은 거품의 전형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게 단정짓기 어렵다. 초저금리 때문이다. 제로에 가까운 금리가 장기간 계속된다면 먼 미래에 큰 이윤이 발생하는 기술 기업의 주식과 수명이 무한대인 땅의 가격이 현재의 이윤과 임대료에 비해 크게 높아지는 것은 이론적으로 얼마든지 정당화할 수 있다. 문제는 초저금리의 시간이 투자자들이 기대한 것보다 단축될 때 발생한다.

설사 금리가 오르더라도 선진국의 낮은 경제성장률 추세로 볼 때 1~2%밖에 안 오를 텐데 무슨 걱정이냐는 주장이 그럴듯하다. 그러나 문제는 초저금리와 자산 가격 상승의 달콤한 시간이 길어지면 사회 전체의 위험에 대한 감각이 변해버린다는 것이다. 늦겨울 용감한 아이가 호수 한가운데로 스케이트를 타고 들어가면 지켜보던 아이들도 하나둘 따라간다. 그리고 겁이 나서 호숫가를 맴돌던 아이들도 합류한다. 사람이 많아질수록 위험은 더해 가는데 많은 사람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면서. 그러다 봄이 오는 소리를 놓칠 때가 있다. 이때를 알려준다는 속설들이 있다. 동네 증권사 로비에서 이웃을 여럿 만날 때, 재무상태가 너무 다른 여러 기업의 주가가 동일 업종에 있다고 동반 상승할 때, 여러 종류의 자산시장에서 동시에 새로운 세상이 왔다는 소리가 들릴 때, 정치가들이 인플레나 거품 방지보다 일자리가 더 중요하다고 외칠 때 등. 요즘 풍경과 많이 겹친다.

슐라이퍼 교수는 역사적 패턴을 분석한 최근 연구에서 빠른 신용 팽창과 자산 가격 급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면 3년 안에 금융위기가 발생할 확률이 40%로 급증한다고 주장했다. 우리의 가계 부채와 집값을 보면 섬뜩해진다. 정부가 투기의 기회 균등을 위해 대출규제를 완화하고 중앙은행이 높은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될 때까지 금리 인상을 미루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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