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장은 기묘하게 같은 표정을 지으며 다시 등장하는 지박령 같다. 인터넷 포털 뉴스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 말이다. 이 주장은 20년 넘게 울리는 보수적인 주류 신문사의 외침이었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로서는 다만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해 전면적으로 감행하지 못했던 다짐이기도 했다. 이제 개혁적이라는 정당이 같은 지박령을 불러내 분칠하고 새 옷을 입혀 내세우고 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우리나라 공중이 주류 언론을 체계적으로 외면하기 시작한 지 벌써 오래다. 지난 세기 일간지의 발행부수와 저녁 종합뉴스 시청률은 이제 신화 속 인물들의 믿지 못할 나이처럼 인용된다. 우리 언론에 대한 인민의 불신이 세계 제일이라는 외신이 들렸을 때 실은 누구도 놀라지 않았는데, 이미 뉴스 댓글에서 그리고 인터넷 토론방에서 주류 언론의 내용과 서비스에 대해 불만이 만연한 사정을 서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언론이 이 지경이 된 까닭에 대해서라면 여러 진단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처방이라면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요점이 있다. 정파적으로 완고하고, 내용적으로 부실하며, 이용자 서비스에서 부실하기 짝이 없는 언론의 문제를 정치인들이 개입해서 직접 두들겨 펴는 방식으로 해결하겠다는 시도는 가망 없다.
개혁에 대해서라면 입법자들은 인민의 의지를 결집해서 새로운 법을 만들어 추진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아무리 다수파가 국회에서 힘을 모아도 침해할 수 없는 자유가 있다. 당장 위헌이 아니라서 입법하더라도 결국 자율적인 민주적 역량을 훼손해서 공화국의 앞날을 어둡게 만드는 일도 존재한다. 언론과 매체의 내용과 편집에 대한 정치권의 관여가 바로 그것이다.
국내 포털은 이미 시민의 정보환경과 여론의 장을 구성하는 수많은 경로 중 하나로 전락했다. 시민은 국내 포털의 알고리듬보다 더욱 교묘하고 철저한 기획을 따르는 해외 동영상 플랫폼에서 뉴스를 접하고 있다. 그렇다고 인터넷 동영상을 무작정 믿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시민은 또한 정치적 압박에 따라 축소된 국내 포털의 댓글 공간을 떠나 해외 교류매체 서비스에서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공론장을 왜곡할 우려가 있는 매체 사업자를 법으로 규제할 수 있다는 논리 자체는 그른 점이 없다. 알고리듬을 이용해서 불투명한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사업자에게 더 분명하게 설명책임과 피해구제를 실천하라고 요구하는 일도 정당하다. 그러나 옳은 논리라도 사업자의 자율적인 선택을 과도하게 제한하면 역효과를 낳는다. 정당한 요구를 실현하는 방식이 공론장 자체를 훼손한다면 반민주적이다.
세계의 언론 매체가 보이는 흐름은 완연하다. 이용자와 접점을 확대하며 기술적 서비스를 끊임없이 실험해서 혁신의 역량을 내재화한 매체 사업자들만이 성공하고 있다. 모험적인 투자를 노려서 운명을 시험하는 새로운 매체사들이 명멸하는 가운데 오래된 언론사들은 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합의적으로 제도개선을 추진해서, 다수파 정부가 정책적으로 개입해서 혁신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없다.
나는 오랫동안 언론 개혁을 외쳐왔다.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포털을 포함한 뉴스 플랫폼의 설명책임을 강화하고, 강자를 감시하고 약자를 배려하는 언론의 규범을 형성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그런데 요즘 나오는 언론 개혁론을 보면, 그게 과연 공론장 기능을 활성화하자는 것인지 아니면 그 토대를 아예 허물어 버리려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개혁을 이유로 내세우면서 오래된 퇴행적 규제 정책을 먼지만 털어 들고 나온다. 시민과 언론인의 자율적 역량을 옥죄는 방법으로 개혁을 이루겠다고 말한다. 그게 어째서 개혁이란 건지 난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