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 생산량 40%만 인간이 사용
40% 사료·20%는 바이오연료로
북, 1960년 이후 식량 증가 멈춰
철광석 등과 교환, 공존 방안도
“지금 필요한 건 더 많은 곡물이 아니라 공평한 분배다.”
2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후위기의 시대 - 생존 가능한 지구로 가는 길’을 주제로 열린 <2021 경향포럼>에서 연사로 나선 호프 자런 교수는 더 많은 곡물을 얻으려는 욕구가 지구에 위기를 초래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노르웨이 과학예술아카데미 회원이며 오슬로대에 재직 중인 자런 교수는 2016년 타임이 선정한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이름을 올린 과학자다. 베스트셀러인 <랩걸>의 저자로도 유명한 그는 지난해 낸 저서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에서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선 소비를 줄이라고 역설해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
자런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1970년과 비교해 현재의 곡물 생산량이 크게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 곡물 생산량이 3배 늘었다”며 “비료가 발달하고 관개시설이 확충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주목되는 점은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곡물의 비중이 상당히 적다는 점이다. 자런 교수는 “식량으로 쓰이는 곡물은 전체 생산량의 40%”라며 “나머지 40%는 육류 생산을 위한 가축 사료, 20%는 바이오연료로 활용된다”고 설명했다.
곡물 생산에는 기계화 등의 영향으로 필연적으로 에너지가 든다. 곡물을 더 많이 재배하면 탄소 배출도 증가한다는 뜻이다. 자런 교수는 “1970년 이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배 이상 늘었다”고 강조했다. 곡물의 엄청난 생산이 지구의 숨통을 조이는 것이다.
자런 교수는 앞으로 식량의 추가 생산이 아니라 공평한 분배를 고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자런 교수가 제시한 자료를 보면 미국과 한국 같은 선진국은 이미 1인당 하루 식량 공급량이 3000㎉를 한참 상회한다. 성인 남성이 하루에 필요한 열량은 2500㎉다. 누군가는 과체중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프라카 등에선 수억명이 식량 부족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자런 교수는 한국에 대한 세부적인 분석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1970년과 비교해 현재 전 세계 에너지 소비는 3배 늘었는데, 한국에선 35배 폭증했다. 같은 기간 전 세계 이산화탄소가 2배 늘어날 때 한국에선 무려 10배 증가했다.
자런 교수는 식량위기를 겪는 북한과의 공존을 위한 방안도 내놓았다. 자런 교수는 “(1960년 이후) 북한의 식량 공급 증가는 거의 멈춰 있다”고 말했다. 제시한 해법은 흥미롭다. 식량 생산이 충분한 한국이 북한의 식량 공급을 도울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은 금속과 광석, 연료가 수출 1위 품목이지만 한국은 이 품목들이 수입 1위”라고 말했다. 남북이 필요한 것들을 나눌 수 있다는 뜻이다. 자런 교수는 강연에서 시인 유치환의 작품 ‘향수’ 일부를 인용했다. ‘희망이 해진 주머니로 흘러간다’는 시구처럼 현실은 엄혹하지만 해결책도 그 안에 숨어 있을 거라고 그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