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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을 어찌할 것인가

지난 4월, 교육자를 양성하는 국립대학인 진주교대가 2018년도 입시에서 장애학생의 성적을 조작해 불합격시킨 일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를 주도한 입학관리팀장은 “장애인은 날려야 한다” “장애인이 네 아이 선생이라고 생각해 봐라” 등의 노골적인 혐오 발언까지 했지만, 진주교대는 오히려 내부 고발을 한 입학사정관의 징계를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소식을 전해들은 나와 동료들은 분노했고, 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으리라 생각했다. 최근 한국 사회의 공정성 담론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던 문제가 다름 아닌 입시였으므로.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두 달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음이 확인되었다. 이 사건을 처음 보도한 경향신문 외에는 중앙 일간지에서 다뤄지지 않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도 별 반응이 없었다. 여론이 잠잠하니 진주교대도 방관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이달 8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총장실까지 점거하며 만들어낸 면담 자리에서 떠밀리듯 공식 사과를 약속했을 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 사회 구성원들의 공정성 감각이 이 문제에서는 왜 작동하지 않았을까? 만일 성적 조작의 피해자가 비장애인이었다면 어땠을까? 맥락을 짚어나가다 보니, 존 롤스라는 이름과 에이블리즘(ableism)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자유주의적 정의론의 대가인 롤스는 1985년 발표한 ‘공정으로서의 정의’라는 논문에서 “시민으로서의 인격체들은 정상적이고 충분히 협력적인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지닌다고 상정”해야 하기에 “심각하고 영구적인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지닌 이들은 제쳐둔다”고 썼다. 중증장애인들은 ‘공정’으로서의 정의가 적용될 수 있는 시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에이블리즘’은 비장애중심주의를 뜻하는 단어지만, 철자에서 드러나듯 그 핵심에는 능력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즉 자유주의와 능력주의에 기반한 현재의 공정성 감각이 장애인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게 순전히 일탈적이거나 우연적인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공정이라는 가치의 한계를 직시하고 그것을 포기해야 할까?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역사적으로 공정성은 소수자에 대한 ‘적극적 차별시정 조치’를 추동해낸 힘이기도 했다. 15년 전 시각장애인 안마사 제도에 위헌 판결이 내려졌을 때, 나는 이를 비판하는 글에서 “평등은 ‘같음’이 아니라 ‘공정함’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썼다. 특별히 고민해서 쓴 문구가 아니라, 인권활동가들과의 대화에서 흔히 오가던 말이었다. 당시만 해도 공정성 담론장에서 인권의 헤게모니가 유지되고 있었다는 얘기다. 공정(公正)은 ‘공평하고 올바름’이라는 의미를 갖기에 대중적 감각 속에서 평등 및 정의와 긴밀히 연동될 수밖에 없다. 즉 공정성이라는 영역을 능력주의에 완전히 내어주면 평등과 정의라는 영역에서의 싸움 또한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는 경쟁에서의 공정성이 아니라 무한 경쟁 시스템이 불공정한 삶을 어떻게 정당화해왔는지 얘기해야 하며, 관계와 조건에서의 공정성, 반차별주의에 기반한 공정성을 다시 중심에 세우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제대로 된 차별금지법 제정은 이런 맥락에서도 반드시 완수해야 할 시대적 과제일 것이다.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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