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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이 있는 패배를 보고 싶다

입력 2021.07.01 03:00

수정 2021.07.0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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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나의 어린 시절은 매우 계획적이었다. 물론 계획적이라는 것이 계획을 지켰다는 뜻은 아니고 계획을 세우는 것을 좋아했다는 뜻이다. 수능, 회계사 시험과 같이 D데이가 정해지면 거꾸로 역산을 해서 계획을 세우고 공부를 했다. 당연히 계획대로 되진 않았고, 실패에 대해서는 계획을 지키지 못한 노력 부족을 탓해왔다.

이총희 회계사

이총희 회계사

하지만 계획대로 사는 인생도 딱 거기까지였다. 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다음부터는 계획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고, 이제는 계획을 세우지도 않는다. 노력을 해도 넘을 수 없는 선들이 명확히 보이기 때문이다. 다니던 회사에서 높은 분들의 자제들이 인턴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회사의 영업에 도움이 되는 일에 불공정함을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공정함을 찾는다고 해도 그들의 좋은 스펙은 채용을 합리화했을 것이다. 사회는 공정한 곳이 아니라 이윤에 따라 냉혹하게 움직이는 곳이었고, 때로는 이윤도 무엇도 아닌 알 수 없는 기준이 적용되기도 하는 곳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번 정부도 불공정한 사회를 바꾸지는 못했다. 게다가 자신들의 불공정함은 인식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인해 젊은 세대들이 등을 돌리게 되었고, 다시금 공정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혹자는 시험만능주의로 흐르는 공정론을 비판하지만, 젊은 세대들도 그 문제를 모르는 게 아니다. 어차피 모든 게 불공정하기에 그나마 차악을 택한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의 공정은 여전히 갈팡질팡한다. 최근 법무부는 가석방의 기준을 완화하였다. 일각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을 염두에 둔 행보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사면은 없다고 강경하게 이야기했던 4월에 비해 최근의 입장은 상당히 모호하다.

수많은 수형자 중 사면대상을 정하거나 가석방할 이를 정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공정한 것일까? 모범적인 수형생활을 하는지 서로가 배틀을 통해 겨룰 수도 없고 시험을 보기도 어렵다. 분명한 건 특정인에 대한 여론에 휩쓸리는 일이 공정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2020년 범죄백서에 따르면 가석방자들의 형 집행률은 대부분 80% 이상이다. 따라서 완화된 기준을 충족했다고 바로 가석방을 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 가석방심사위원회의 심의서를 검토해보면 부처님오신날 기념 가석방은 수형자 817명이 상정되어 514명이 적격으로 결정됐고, 4월 정기 심의에서는 963명 중 570명이 적격이었다. 대상자의 60% 남짓만 가석방되는 상황에서 사회적 압력을 통해 특정인을 가석방하는 것도 공정하지는 않다.

냉혹한 사회이기에 경제적 이익을 이유로 원칙의 후퇴를 주장하는 이도 많다. 사적 관계에서는 이것이 가능할지 모르나 국가의 운영, 특히 형벌의 문제는 사적인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능력주의를 외치는 야당의 대표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가 젊은 나이에 당선된 것은 모두를 만족시키기보다는 원칙을 지켰기 때문일지 모른다. 정부도 원칙 있는 패배를 택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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