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아나, 콩, 이끼, 율마, 아카시아, 클로버…. 식물 이름을 나열해 놓은 것 같지만 사회적기업 브라더스키퍼 구성원의 또 다른 이름이다. 브라더스키퍼는 만18세가 돼서 보육원을 나오게 된 ‘보호종료청년’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2018년 5월 설립됐다. 건물 내외부의 수직 벽면을 식물로 채우는 벽면 녹화 사업을 비롯해 실내 공기질 컨설팅을 제공하는 기업이다. 기업체와 관공서 등이 주고객이다. 이곳 직원들은 각자 마음에 드는 꽃말을 가진 식물을 찾아 이름을 짓는다. 예를 들어 콩 꽃말은 ‘꼭 오고야 말 행복’이다. 내가 느끼는 이 소소한 행복을 동료·후배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난 6월 28일 경기도 안양시 브라더스키퍼 사무실에서 만난 김성민 대표(36)는 바비아나로 불린다. 바비아나의 꽃말은 ‘단란한 가정’이다. 세 살 무렵 보육원에 들어온 김 대표가 줄곧 가졌던 꿈이었다. 단란한 가정을 만들고, 보육원 후배들에게도 그런 가정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바람에서 택한 이름이다.
보호종료가 필요한 ‘아동’은 없다
김 대표 역시 고등학교를 마치자 등 떠밀려 보육원에서 퇴소했다. 보통 또래라면 아직 독립하기엔 이른 시기이다. 보육원에서의 삶도 고통스러웠지만 나가는 건 더 고통스러웠다. 먼저 나간 선배들에게선 좋은 소식보다 안타까운 소식이 더 많이 전해졌다. 먼저 상경했던 선배가 준 5만원을 쥐고 무작정 서울로 온 그 역시 반년을 노숙했다. 다행히 직장을 잡고 일하면서 조금씩 안정을 얻자 잊었던 꿈이 생각났다. “나와 같은 환경에 있는 친구에게 가족이 되겠다.” 그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지식을 쌓고자 대학에 진학했고, 비영리단체에서 보육원 퇴소 청년을 후원하는 일도 시작했다.
인생의 반을 보육원에서 보냈다면 나머지 반은 보호종료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살았다. 김 대표는 처음엔 후원만 하면 후배들이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은 자신과 다른 삶과 미래를 맞을 줄 알았다. 하지만 후원이 끝나면 자신이 보육원을 처음 나섰을 때와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를 가야 할지 몰랐다. 가르쳐주는 사람도, 물어볼 어른도 없는 상태로 ‘보호종료’란 딱지만 추가됐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육원 아이들, 퇴소한 청년을 인터뷰했다. 그리고 이들이 원하는 건 ‘자립’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처음엔 보호종료청년의 취업을 주선했다가 아예 창업을 했다.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을 돌보는 일은 일반적인 회사에서 기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일자리 연결로 문제가 해결되나 싶었는데,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100명 넘는 친구들이 일자리를 잡았지만 가장 오래 근무한 친구가 3개월이고, 보통 1~2주 만에 나왔습니다. 회사 대표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음의 회복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회사가 아이들의 상황을 알아서 정말 많은 걸 챙겨주고 배려해도 아이들은 ‘보육원 출신이라 날 불쌍하게 생각하나’라고 생각하고, 반대로 일을 하다 혼날 수도 있는데 그때는 ‘보육원 출신이라 막 대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내면의 상처가 커서 선한 의도도 좋지 않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거죠.”
공기질 문제 종합 ‘해결사’ 지향
김 대표가 택한 치유의 수단은 식물이다. 식물을 키우려면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마음에 상처가 가득하고 사회의 편견으로 움츠러든 친구들에게 ‘사랑을 주는’ 행위는 정서적으로 큰 안정감을 준다. “식물은 관심을 주지 않으면 자라지 않죠. 사랑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사람은 사랑받을 때보다 사랑을 줄 때 정서적으로 훨씬 더 많이 회복된다고 합니다. 가족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식물에 쏟아내면서, 마음의 빈 곳을 채우는 것이죠.” 그렇게 벽면 녹화 등 식물을 이용한 공기 컨설팅 브랜드 ‘브레스키퍼’ 사업을 시작했다.
아동복지법에 따라 만18세가 돼서 보육원에서 나온 아이들을 일컫는 행정용어는 ‘보호종료아동’이다. 만18세를 아동으로 보긴 어렵다. 이런 모순된 말을 수십년 넘게 쓰는 데서 보호종료청년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을 알 수 있다. 김 대표는 보호종료아동이 아닌 보호종료청년으로 써야 한다고 말했다. “아동이 보호종료될 수 있나요. 없잖아요. 보호종료와 아동이라는 말은 보호종료청년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퇴소하는 것처럼 너무 준비되지 않은 단어예요.”
지난해 1월부터 보호종료청년을 대상으로 한 자립수당과 주거지원 통합서비스가 확대됐다. 김 대표는 이 제도가 그간 미비했던 보호종료청년들의 실태 파악에 도움이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최근 한달 사이에도 보호종료청년 5명이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적지 않은 숫자이지만 사례 관리가 안 돼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몰라요. 보건복지부의 자립전담요원도 연락이 닿은 친구만 관리할 수 있는데 이 친구들은 그나마 잘 살고 있어 연락이 되는 것이죠. (당사자 신청에 기반을 둔) 지원제도가 낙인효과가 있다고 비판하지만 적어도 퇴소한 친구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정도는 조사가 되니까, 전 너무 좋다고 생각해요.”
김 대표는 특히 보호종료청년 고용할당제에 대한 바람이 크다. 실제 기업 인사공헌팀, 총무팀에서 왜 이런 제도는 없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정부 예산이 따로 필요한 것도 아니니 다른 취약계층을 역차별하지 않는 수준 안에서, 0.1% 혹은 0.3%라도 반영하도록 법이 개정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꼭 채용하진 않더라도 장애인의무고용제처럼 보호종료청년을 고용한 회사의 물건을 사용하면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인정하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여러 분야에서 고용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브라더스키퍼의 직원 11명 중 8명은 보육원 출신이다. 보육원 선배들이 식물 전문가로서 경력을 쌓고, 일하는 걸 보면서 보육원 아동들도 용기와 희망을 얻는다. “보호종료청년이 스스로 자신들을 향한 사회의 부정적 이미지가 잘못됐음을 삶으로 증명해”가는 중이다.
많이 오해하지만 ‘브라더스키퍼’라는 말은 형제·자매를 지킨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여성 고용을 더 염두에 뒀다. 보호종료된 남자보다 여자 친구들의 문제가 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일본 조경업의 40%는 여성으로 구성돼 있고 섬세함이 필요한 작업이니 충분히 여성 고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아직 조경업은 육체노동으로 인식돼 있다 보니 의도하지 않게 남성 위주로 채용을 하게 됐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지난해 여성 직원들에게 제품 디자인과 배송 업무를 맡겼고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지만, 지금은 ‘브레스키퍼’ 사업이 급성장하면서 일손이 부족해 잠시 중단했다.
벽면 녹화는 공기 정화뿐만 아니라 눈의 피로를 풀어주는 시각적 효과가 있고, 건물 외벽 온도를 낮춰 열섬현상을 줄일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최근 온실가스 감축과 친환경 도시 조성이 화두에 오르면서 벽면 녹화 사업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옥상 정원으로 대표됐던 ‘녹색 지붕’을 넘어 ‘벽면 녹화’가 새로운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 잡는 추세다.
브라더스키퍼의 수경재배 기술을 활용할 경우 용수 재활용이 가능해 따로 물을 공급하지 않아도 된다. 센서를 이용해 일조량과 습도를 조절해 관리도 간편하다. 이끼의 일종인 스칸디아모스를 염색해 그림처럼 만들 수도 있다. 물을 주지 않아도, 건조할 땐 이끼가 습기를 내뿜고, 습할 때 흡수해 자연스럽게 습도를 조절한다. 식물은 공기청정기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 공기청정기는 걸러내지 못하는 포름알데히드나 톨루엔과 같은 휘발성유기화합물(VOC)을 식물은 걸러낼 수 있다.
가족애로 어려움 극복하고 이겨내
사업이 잘 풀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벽면 녹화는 주로 기업과 하는 사업이다 보니 코로나19로 생사의 기로에 서기도 했다. 기업 미팅이 취소되고, 공사가 지연되면서 지난해 7~8월에는 문을 닫을 뻔한 상황까지 갔다. 하지만 동료들과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냈다. 상투적인 차원의 말이 아니다. 동료들은 늘 기대 이상의 몫을 해냈다. 회사 회의실에서 밤 11시가 넘도록 식물 관련 자격증을 따려고 공부를 하다 돌아가는 친구들도 있다. 김 대표가 “놀지 왜 공부하냐”고 묻자 “내가 열심히 해야 더 많은 동생을 고용할 수 있으니까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서로에게 가족이 됐고, 또 더 돌봐야 할 가족이 있다고 느끼는 건 이곳 사람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향후 사업전망은 밝다. 코로나19로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고, 실내 공기질 등 환경에 관심이 높아지면서다.
브라더스키퍼는 궁극적으로 식물 관리를 통해 “공기질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회사”가 되는 것이 목표다. 성장세를 이끌 다양한 사업 확장 계획도 있다. 실내 공간 안에서 사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맞춤 식물을 배송하는 식물 구독 서비스를 시작하는 것은 그중 하나다. 이럴 경우 전국 대리점을 통해 해당 지역 보육원 퇴소 청년들을 더 고용할 수 있다. 최근 새 제품의 예고편 격인 텀블벅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김 대표는 동료들이 이곳을 딛고 자신만의 길을 찾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아직은 없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준비하고, 성장하고 있어 5년 이내에 독립하는 친구들도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전까진 최대한 브라더스키퍼라는 ‘지붕’을 키워야 한다. 보호종료청년이 가장 먼저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일자리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한해 보호종료청년이 2000~3000명씩 쏟아집니다. 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받아들이려면 공기 컨설팅으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회사 규모가 커져도 우린 단체생활 경험이 있기 때문에 80~90명 수준까진 충분히 가족 같은 회사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그 범위를 넘어서면 100명씩 묶어 한 가족을 만들 수 있겠죠. 가족이 없다고 하지만 우린 누구보다 가족이 많은 친구들입니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