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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위로가 필요하다

입력 2021.07.14 03:00

수정 2021.07.1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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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더 얘기하고 싶은 거 있으세요?”

그날의 불편한 증상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끝났는데, 아직 뭔가 할 말이 남은 표정으로 환자분이 앉아 계셨다. 나는 사실 저 질문을 하기 전에 살짝 망설였다.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를 묻는 것은 진료실에서 꼭 필요한 질문이라고 배우기는 했지만, 대기 중인 다른 환자분들의 명단이 눈앞에 떠 있는 상황에서 이 질문을 매번 모든 환자분들에게 건네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오묘한 표정으로 앉아 계시는 분들께는 이 질문이 필요하다.

환자분은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사실 석 달 전에 갑상선암을 진단받았어요. 그런데 수술은 아직 안 했어요. 아직은 암이 작으니 좀 더 기다려서 수술 날짜를 잡아도 된다고 해서, 석 달 후에 다시 초음파 검사를 받아보고 결정하기로 했어요.”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시선을 살짝 내리면서 담담한 듯 말씀하셨다. 그랬구나. 이미 진단받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가 다 결정되어 있는 상황이라 딱히 나와 의논할 건 없다. 추가로 나에게 알아봐야 할 정보 같은 것도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얘기를 할까 말까 주저하던 모습으로 앉아 계셨던 것이겠지. 나는 그 모습이 안쓰러웠다.

“아무리 갑상선암이 순한 암이라고 해도, 그래도 암이라고 들으니, 마음이 아주 편하지는 않으셨겠어요. 크기가 자라는지 아닌지 보려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조금 초조하실 수 있고요.”

순간 그녀가 시선을 들어서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갑자기 두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다들 갑상선암인데 뭐가 걱정이냐고, 남편도 그건 암도 아니라고 그러고 …. 그러니까 나도 덩달아서 그렇게 생각을 해야 하더라고요. 힘든 암환자도 많은데 나는 암 같지도 않은 암이니까 힘들다고 말하지 말아야지. 어디 큰 병도 아닌데 힘들다 얘기해요. 그런데 어떨 때는 혼란스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어쩌나 싶어요. 이런 걸로 뭔 걱정이냐고 할까봐 속시원히 말도 못하고 지내고 있네요.”

그녀는 어깨를 들썩이며 한참을 진료실에서 울었다.

“저, 아유 죄송해요. 안 울고 싶은데, 아유 막 울음이 나오네요. 아유, 시간 많이 빼앗아서 죄송해요. 다른 환자들도 많이 기다리실 텐데. 암 진단받고 나서 힘들겠다고 위로해주는 얘기 처음 들어봤어요.”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짧디짧은 나의 위로에 그렇게 큰 눈물이 쏟아질지는 정말 몰랐다. 갑상선암을 진단받고 3개월 동안, 순한 암인데 뭘 그러냐는 얘기 들을까봐 참고 참고 참아왔던 눈물이 그날 진료실에서 모두 빠져나오는 것 같았다. 위로받지 못했던 이들의 눈물은, 마치 막혔던 둑이 터지는 것처럼 쏟아진다.

우는 와중에도 다른 환자들 사정까지 걱정하던 그녀는 한참을 울고 나서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진료실을 나갔다. 그날 그렇게 속시원히 울었다고 해서 앞으로의 진료 내용이나 방향, 예후가 달라질 것은 전혀 없다. 갑상선암. 아직 1㎝가 안 되는 작은 크기이고 전이도 없으니 좀 더 기다려 볼 것이다. 오히려 당장 수술하자고 채근하며 불안하게 만들지 않고 좀 더 기다렸다가 크기가 자라면 수술하자고 한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그녀는 다행이었다. 3개월 후엔 다시 6개월을, 또 1년을 더 기다리게 될 수도 있다. 운이 좋다면 수술을 아예 받지 않을 수도 있겠지. 그 시간 동안 암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지만, 적어도 그녀의 불안이나 서러움은 줄어들 수 있어야 한다.

딱히 의논하고 싶은 게 없어도, 질문하고 싶은 게 없어도, 진료실에서 꺼내지 못할 이야기란 건 없다. 잘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싶을 때도, 남들이 몰라주는 힘든 마음을 위로받고 싶을 때도 우리는 진료실을 찾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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