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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줄 서는 건 바보같은 일인 줄 알았는데

입력 2021.07.14 10:48

수정 2021.07.14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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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한끼’는 음식, 밥상, 먹는 일에 관해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코너입니다.

뭐지 이 맛은? 정신을 차린 건 ‘밥 먹을 때 누가 입 벌리고 있냐’ 지인이 핀잔을 준 뒤였다.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 어떤 식재료든 튀기기만 하면 일정 수준 이상의 맛을 보장한다며 한 유명 셰프가 이런 말을 했다. 동의한다. 배가 주릴 때 깨알 글씨 빽빽한 사전같은 ‘김밥○○’ 메뉴판을 보면 눈길은 어느새 튀김 요리를 향해 있다. 종종 실망하긴 하지만, 튀김은 어디서든 일정 수준의 맛을 보장하리라는 기대가 있다. 학교에서 ‘맥도날디제이션’말로 세계 획일화의 문제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배웠던 적이 있는데, 미지의 장소에 떨어진 인간이 익숙한 맛을 찾으려고 하는 건 본능에 가깝다고 믿는다.

‘돈가~스 좋아하세요?’ 어느 래퍼(앞에서 읽으나 뒤에서 읽으나 똑같이 읽히는 그 사람 맞다)가 맘에 드는 여성이 있을 때 이렇게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넘어온다며 음습하게 읊어댄 한 마디에는 대전제가 깔려 있다. ‘(육식을 피하지 않는다면)돈가스 싫어하는 사람 거의 없지 않겠냐’는 것. 그리고 돈가스도 대체로 ‘어디서 먹으나 크게 차이가 없다’는 것.

이렇게 놓고 보면 흔한 돈가스 같은데. 샛강육수장인

이렇게 놓고 보면 흔한 돈가스 같은데. 샛강육수장인

고기나 기름 등 재료의 질이 특별히 나쁘지만 않다면, 또 미각이 특별하게 발달한 미식가가 아니라면, 동네 작은 가게에서 먹으나 비싼 백화점의 매장에서 먹으나 돈가스가 주는 만족감엔 큰 차이가 없지 않을까. 또다른 고기튀김인 치킨을 사람들이 ‘치느님’으로 숭배하면서도 치킨을 시킬 때 특정 브랜드만 고집하지 않듯이 말이다. 어느 메뉴든지 맛집은 존재하고 돈가스도 마찬가지지만, ‘맛있게 잘 먹었다’는 생각을 주는 곳은 있어도 ‘이 집 정말 너무나도 맛있어서 또 먹고 싶다’고 할 만 한 곳은 절대 없으리라 여겼다. 그 돈까스를 알기 전까지는.

지인이 어느 날 소셜미디어에서 봤다며 동네에서 꽤 먼 돈가스집을 가자고 했다. 시큰둥하게 따라갔다. 어떤 골목에서 유명해져 제주도까지 내려간 그 식당은 아니었다. 한 끼 먹겠다고 밤 새워 고생하는 건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 못할 일이다. 번호표를 받아들고 한 시간쯤 서 있는 동안에도 기대감이 커지지는 않았다. 배가 고파올수록 ‘쉽게 극찬해주지 않겠어’라는 도전의식이 괜히 솟구쳤다.

기다리다 보니 벌써 오후 두 시. 점심 장사 끄트머리에 가게에 입장하다보니 메뉴의 선택권도 제한됐다. 등심 2개를 주문하려는데 등심이 떨어졌으니 한명은 안심을 먹으란다. 안심으로 만든 돈까스는 좋게 말하면 담백하고 달리 표현하면 뻑뻑하다. 돈까스는 먹고 싶은데 죄책감이 들 때, 그걸 조금 덜어내보고자 ‘눈가리고 아웅’하며 고르던 게 안심이었다.

등심을 눈 앞에 두고, 일행의 안심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안에 가져갔다. 놀라웠다. 씹고, 목구멍으로 넘기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신을 차린건 같이 간 지인이 ‘밥 먹을 때 누가 입 벌리고 있냐’고 핀잔을 준 뒤였다. 뻑뻑한 안심을 씹자마자 촉촉함을 느꼈을 때, 예상치 못한 행복감에 휩싸였다. 누군가는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 생긴 허기가 맛에 대한 변별력을 앗아간 게 아니냐고 묻겠지만, 돌이켜봐도 그 때 느낀 이질감은 ‘시장이 반찬’이라는 옛말과는 차원이 달랐다.

첫 한 조각을 씹어 삼키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샛강육수장인

첫 한 조각을 씹어 삼키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샛강육수장인

정신이 돌아오자 이 맛을 이끌어 냈을 주방의 기술자에게 절로 경외감이 들었다. 쑥스러워 찬사는 바치지 못했지만, 허공을 바라보며 멍하게 입을 벌린 나를 보고 그분도 만족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가게를 나오면서 지인에게 말했다. ‘이 집이 나중에 돈가스 값을 오늘보다 올려도 흔쾌히 다시 먹겠노라’고.

코로나19가 앗아간 여행의 즐거움을 그 집에서 느꼈다고 감히 얘기해본다. 여행의 묘미란 유명 관광지에 갔을 때 느끼는 만족감 보다도, 나만 유독 큰 행복과 안정감을 느꼈던 골목들, 먹거리들, 그것들을 만난 당시의 풍경과 감촉, 장인의 솜씨를 바라보며 느낀 감동을 간직하는 데 있으니까.

기대 없이 방문한 음식점에서 놀랍도록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왔을 때 느끼는 기쁨도 이에 못지 않았다. 그 기쁨이 정말로 크면 몸이 기억해 때때로 그 때의 감동을 소환해내곤 한다. 팍팍한 일상에서 느끼는 예상 밖의 기쁨. 여행 전문가나 미식가가 아닌 우리 모두에게 허락된 것 아닐까.

추신1. 이 글은 내 돈으로 돈가스 사 먹고 쓴 것이다. 지인 것도 내가 샀다.

추신2. 이 글을 쓰기 위해 그 가게를 재방문해 ‘크로스체크’ 해 볼까 싶기도 했지만, 굳이 하지 않았다. 그날 느낀 감흥을 되도록 오래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샛강육수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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