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터득한 기술도 가치·경쟁력 있어…도배 일은 노력한 만큼 실력이 늘어 만족”

문주영 기자

사회복지사에서 ‘도배사’로 변신

생생한 경험담 출간 청년 배윤슬

청년도배사 배윤슬씨가 지난 10일 경기 남양주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도배 작업을 하다가 잠시 일을 쉬고 있다. 배윤슬씨 제공

청년도배사 배윤슬씨가 지난 10일 경기 남양주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도배 작업을 하다가 잠시 일을 쉬고 있다. 배윤슬씨 제공

일 시작 2개월 만에 7㎏ 빠졌지만
내가 좋아하고 발전할 수 있는 일
과거와 현재의 나를 돌아보게 해

자그마한 체구의 한 여성이 있다. 그는 매일 오전 5시 집을 나서 경기도의 아파트 건설 현장으로 출근한다. 오늘도 새로운 벽 앞에 서서 벽지를 붙이는 그는 놀랍게도 20대 여성이다. 그것도 소위 ‘SKY’로 불리는 명문대 출신이다. 한때 사회복지사였던 그는 도대체 왜 도배사가 됐을까.

청년도배사의 삶을 2년째 살아가는 그는 올해 28세인 배윤슬씨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졸업 후 사회복지사로 일했지만 업무가 내 이상과 달랐고, 조직문화의 불합리성을 느껴 기술직을 찾아보게 됐다”며 “도배일은 몸은 힘들지만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말했다.

이화외고와 연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그가 일명 노가다로 불리는 도배사로 ‘전향’한 데는 불투명한 미래보다는 현재를 중시하는 MZ세대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배씨는 “솔직히 도전이라기보다 퇴사를 위한 도피처로 선택했던 일”이라며 “그런데 생각보다 일이 잘 맞았고 무엇보다 투자한 만큼 실력이 늘어 일터에서 내 가치를 인정받는 게 좋았다”고 밝혔다.

다행히도 부모는 딸의 선택을 지켜볼 뿐 큰 반대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당시 퇴사 이유와 향후 계획 등을 담은 퇴사계획서를 작성해 부모님께 드렸더니 제가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구나라고 느끼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도배 소장을 비롯해 총 5명으로 이뤄진 팀에서 일당을 받으며 일한다. 하루 종일 움직여야 하기에 일을 시작한 지 2개월 만에 7㎏이 빠졌고, 온몸은 성한 곳이 없다. 주 6일 근무라 친구들을 만날 시간도 없다. 그럼에도 그는 “도배 일은 노력한 만큼 성장하는 것이 보인다”며 “또 혼자 하는 작업이다 보니 남과 비교하지 않고 과거와 현재의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던 주위 사람들도 요즘엔 배씨의 변화를 적극 응원한다. 그는 “친구들이 기술직으로 전향한 나를 통해 자신들의 직장과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얼마전 새로 이사 간 집 도배를 직접 했더니 부모님들이 기뻐하시더라”면서 “지인들에게 입소문도 내주고, 밖에서 들은 도배 관련 이야기들을 전하며 조언해주신다”고 말했다.

배씨는 자신의 경험을 담아 <청년 도배사 이야기>(궁리출판)라는 책으로 최근 출간했다. “가끔 잘 모르는 사람들이 ‘젊고 똑똑한 아가씨가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말하는데 남들의 평가와 시선은 한순간이잖아요. 그러니 내가 좋아하고 발전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사회적 시선이 아직 좋지는 않지만 몸으로 터득한 기술도 가치있고, 어떤 부분에선 경쟁력이 있음을 다른 청년들도 생각해봤으면 해서 책을 내게 됐어요.”

향후 계획을 묻자 그는 “단기적으론 1~2년 내 소장님으로부터 독립해 아파트 한 동을 책임지고 맡고 싶다”며 “평소 여행과 집꾸미기에 관심이 많았는데 두 분야를 접목해 각 지역의 특색을 살린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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