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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평화를 위해 잘 먹자

입력 2021.07.15 03:00

수정 2021.07.1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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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으로 ‘치킨 한 마리’ 정도는 부담없이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노동운동계의 구호가 무슨 뜻인 줄 안다. 시간을 조각내 값싸게 팔며 아르바이트 끝나고 치킨 사주는 회식 자리가 설레도록 좋았다. 하지만 이젠 치킨 말고 다른 얘기도 하고 싶다.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일하다 너무 배가 고파서 자투리 식빵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다 혼났던 건 내 인생의 강렬한 기억 중 하나다. 그게 남은 재료로 만든 거란 걸 알고 사장님이 금방 사과했는데, 그래도 계속 눈물이 났다. 돌이켜보면 기숙사에는 식당도 주방도 없고, 음식을 가져올 집도 없고, 파는 건 시급에 비해 너무 비싼 그 모든 여건이 갑자기 나를 떠미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매일 컵라면을 먹어도 몸무게가 50㎏을 넘지 않던 시절을 그런 대로 지나갈 수 있던 건, 시간이 해결책이라 생각해서였다. 신혼 하면 떠오르는 것은 앞치마를 입은 여자였다. 그때쯤 4인용 식탁과 냉장고가 생기겠지.

시급이 좀 더 높은 일을 해 시간이 좀 생기고, 임대주택에 당첨돼 주방을 갖고, 집 근처에 비싸지만 마트가 있어 들떠서 한 달에 50만원도 넘게 장도 봐보고, 매일 친구들을 불러다가 잔뜩 먹이는 경험을 통해 이런 걸 알게 됐다. 잘 먹는 건 몸과 마음의 건강에 너무나 중요해서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텃밭에서 채소를 기르고 식구들과 돌아가며 식사 당번을 하는 요즘은 이런 것까지 알게 됐다. ‘잘 먹기’는 식사공동체의 원활한 협업을 포함한다는 것. 좋은 식생활엔 적절한 시간, 재료, 장소와 사람이 필요하다. 이는 노동권, 건강권, 주거권, 가족구성권과 연결돼 있다.

식생활이 나아질 즈음 식당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거기서 점심밥을 주면서 집에선 뭘 먹냐고 물었다. 그 무렵엔 멍게를 손질할 줄 알게 되어서 그걸로 비빔밥을 해 먹었다고 말했더니, 이상한 표정으로 배달 음식 먹을 줄 알았는데,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표정과 태도를 사회 도처에서 본다.

기혼 여성이 밥을 안 하는 건 세상이 뒤집어질 일이지만, 비혼이 집에서 밥을 해 먹는다고 해도 아무도 그 영역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비혼의 요리는 생활이 아니라 취미인 것이다. 하지만 “잘 먹지 않으면 생각도, 사랑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다”(버지니아 울프). 이 진리를 경험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사회는 끔찍하다.

전 직장에서 기혼 유자녀 여성과 팀으로 일할 때는 꼬박꼬박 시장에 들러 제철 재료로 맛있는 밥을 하던 식구는 젊은 1인 가구가 잔뜩 있는 회사로 이직하고 식탁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다. 취직하자마자 밥을 사먹을 회사 카드가 주어졌고, 살이 찌고 있다. 주1회쯤 일찍 퇴근해 당번을 하려 하지만, 그것은 비혼 20대 남성에게 일탈적인 행동이라 의지를 발휘한 개인의 노력일 뿐이다.

잘 먹고 살고 싶다. 그러려고 너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는 건 부당하다. 이건 지구 정복, 인류 평화 같은 데 비하면 별로 큰 꿈도 아니지 않나. 물론 잘 먹는 사람들로 세상이 채워지면 인류 평화가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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