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훅의 정치, 잽의 정치

입력 2021.07.15 03:00

수정 2021.07.1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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잽보다 훅이다. 구석구석을 찌르는 유효타로 차곡차곡 점수를 쌓는 것보다 강력한 한방의 타격이 더 큰 법이다. 권투를 제외하고 정치만큼 이 말이 잘 맞아떨어지는 영역이 있을까. 불굴의 도전정신, 정치감각, 역경의 인생 스토리 등은 정치의 세계에서 강력한 훅이 된다. ‘훅의 정치’의 반대편에는 ‘잽의 정치’가 있다. 정책 내공, 일관된 삶의 궤적과 메시지 등을 통해 조용히 내공을 쌓아나가는 정치인들이 이 범주에 포함된다. ‘알고 보면 좋은데 안 뜬다’ ‘저평가 우량주’…. 애석하게도 대다수 잽의 정치인들은 우량주였음에도 저평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용욱 논설위원

이용욱 논설위원

실제 헌정사에 족적을 남긴 대다수는 훅의 정치인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구도·기득권 타파라는 강렬한 메시지와 이에 걸맞은 정치행보를 했고, 이것은 그의 한방이 됐다. 2000년 총선 때 당선이 유력한 서울을 포기하고 부산에 출마한 결기는 든든한 자산이 됐다. 여권 정치인들은 지금도 ‘노무현 정신’을 이야기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훅은 ‘감’이었다. 기회로 생각하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민주화운동을 한 그가 군사독재 세력의 후예인 민주정의당과 3당 합당을 강행한 것도 이런 기질에서 비롯됐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라.’ 지금도 회자되는 그의 말이다. 군사독재 정부의 오랜 정치적 박해를 견디며 국정운영 내공을 쌓아올린 김대중 전 대통령 정도가 잽의 정치인으로 분류될 수 있을까.

훅의 정치인들의 말로가 늘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수성가한 CEO 경력을 기반삼아 정치권에 진출하고 서울시장 때 청계천·버스전용차선제 등 가시적 결과물을 내놓아 대통령에 당선됐다. 2007년 대선 때 그를 찍은 사람들은 실용적 이미지와 추진력을 높이 샀다. 지금은 조롱 혹은 부정적 의미로 많이 쓰이지만, “내가 해봐서 아는데…”는 한때 이 전 대통령의 정치적 훅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적 훅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아버지의 강렬한 정치적 후광을 누렸을 뿐 스스로 빛을 내지 못했다.

일부는 훅의 위력을 잃고 평범한 정치인으로 전락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2011년 정치권 진입 때 ‘새정치’라는 훅을 앞세워 유력 대선 주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기성정치에 대한 반감만 내세웠을 뿐 그의 새정치에는 내용이 없었다. 게다가 합당과 창당 등을 반복하면서 중도진보쯤으로 매김했던 이념적 스탠스는 보수로 이동했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의 정치적 훅은 거침없는 화법이었다. 막말이 많았지만 때때로 정곡을 찔렀다. 그러나 대선 패배 등 정치권 중심에서 밀려난 이후 그가 던지는 감정 섞인 막말들을 사람들은 만담쯤으로 여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훅의 정치인들이 부각되고 있다. 여권 유력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대표적이다. 흙수저 출신의 인권변호사라는 배경, 성남시장·경기지사로서 보인 행정 추진력과 사이다 발언 등은 그의 정치적 훅이 됐다. 야권 유력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박근혜 정부 때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 문재인 정부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등 권력과 불화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훅의 정치인이 됐다. 지지자들은 윤 전 총장이 ‘공정과 정의’라는 한방을 지녔다고 본다. 사상 초유의 30대 보수정당 대표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보수혁신의 가늠자라는 정치적 훅을 품고 있다. 젊은 감각, 정치판에 10년 머물며 쌓은 나름의 내공 등이 그의 자산이 됐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꼼꼼하고 까다로운 존재여서 훅의 뒤를 이을 유효타가 없으면 등을 돌린다. 공교롭게도 훅의 정치인들은 거의 모두 난처한 지경에 몰렸다. 이 지사는 사생활 논란으로 야권은 물론 여권 내부 경쟁자들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다. “국민이 불러서 나왔다”는 윤 전 총장은 X파일 의혹, 국가비전 부재 비판 등으로 흔들리고 있다. 이 대표는 여성가족부와 통일부 폐지 등을 쟁점화하면서 가벼움을 드러냈다. 대선판이 가열될수록 이들에 대한 비판 강도는 높아지고, 검증 시도는 집요해질 것이다.

코너에 몰릴수록 훅의 정치인들은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 능력을 입증하고, 의혹에 대해서는 철저한 검증을 받아들이며, 과오는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게 훅의 정치인다운 처신이다. 만약 정당한 비판을 정치공세로 치부하고 잘못을 덮으려는 물타기 시도 등 헛방을 날리려 한다면 민심의 카운터펀치를 맞고 그대로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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