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권고에 ‘귀막은’ 정부부처들…영 안 서는 인권위

문광호·이홍근 기자
11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혐오, 차별 대응 주한 대사 간담회’에서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혐오, 차별 대응 주한 대사 간담회’에서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정부부처의 ‘불복’이라는 벽에 부닥쳤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르면 인권위는 관계기관에 인권 관련 정책과 관행의 개선을 권고할 수 있고 해당 기관은 권고를 이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최근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에 이어 산업통상자원부까지 인권위 권고의 수용을 공식 거부했다.

인권위는 15일 보도자료를 통해 산업부와 한국남동발전 등 5개 발전회사가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의 직접 고용과 관련된 권고를 ‘불수용’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인권위는 발전회사들이 석탄화력발전소의 필수유지업무에 종사하는 하청노동자를 직접 고용할 수 있도록 조직, 인력, 예산 등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라고 산업부에 권고했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산업부 등이 실질적으로 외주화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회신을 인권위에 보낸 것이다.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기재부와 노동부도 인권위가 권고한 무기계약직 처우 개선 요구를 수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인권위는 중앙행정기관 무기계약직 근로자의 임금 격차가 해소될 수 있도록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맞는 임금 기준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기재부와 노동부는 ‘관련 의제를 논의 중에 있어 개선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전해왔다고 전날 인권위가 밝혔다. 인권위는 지난 5월 성전환 수술 후 강제전역 처분을 받은 고 변희수 전 하사 사건 때도 국방부에 제도개선을 권고한 적이 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부부처의 불수용이 잇따르자 문재인 정부 임기말로 가면서 인권위의 입지가 좁아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2017년 12월 당시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의 특별보고를 받고 인권위 권고 이행 여부를 기관 평가에 반영할 것을 주문하는 등 인권위에 힘을 실어줬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는 “문재인 정권 말기로 가면서 인권위 권고 불수용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며 “부처 이기주의나 기업 권력 눈치 보기가 심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또 “인권위가 권력의 눈치를 안 봐야 신뢰가 생기는데, 지금은 인권위가 정부와 관련한 비판을 안하고 있다”면서 “그러다보니 인권위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정부부처도 인권위 눈치를 안 본다”고 했다. 인권위 스스로 위상 약화를 자초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부처의 수용률을 높이려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철순 단국대 법과대학 교수는 “인권위의 권고를 얼머나 따르느냐에 따라 부처를 평가하는 시스템이 보다 활성화돼야 한다”며 “인권위 권고의 이행률로 부처를 평가하는 시스템이 확립되면 좀 개선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노동계는 정부부처의 인권위 권고 불수용이 노동인권 문제에 집중되는 점에 주목한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정부가 특히 노동인권 관련 권고를 불수용하는 것은 노동정책이 후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인권위 권고뿐 아니라 정부가 임기 초반 내놓은 노동과 행정 개혁 권고들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불수용한 것이 도드라지게 보일 수는 있지만 인권위 권고 수용률은 90%가 넘는다”며 “불수용한 것을 공표하는 이유는 (해당 기관의) 전향적인 자세가 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목소리를 얻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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