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모두 순수하고 겸손한 분들이다. 그런데 노조가 개입하면서 일이 엉뚱하게 흘러가고 있다.”
서울대학교 기숙사 휴게실에서 청소노동자 이모씨(58)가 숨진 사건과 관련해 구민교 전 서울대 학생처장이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말이다. 구 전 처장은 ‘노동환경을 둘러싼 뿌리 깊은 학내 갈등’이 “외부 정치세력이 학내 문제에 간섭할 수 있는 빌미를 주었다”고 했다. ‘순수한’ 집단에서 생긴 일에 민주노총이 개입해 사건을 키우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구 전 처장 발언의 기저에는 한국사회 저변에 흐르는 반노조 정서와 저임금·중년·비정규직·여성 노동자에 대한 ‘낡은 고정관념’과 편견이 깔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조를 ‘불순한 집단’으로, 불안정한 노동조건에 처한 중년의 여성 노동자를 세상 물정 모르고 노조에 휘둘리는 존재로 본다는 것이다.
지난해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해고철회 투쟁 때도 여론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의 파업 소식을 다룬 기사에는 ‘처음부터 민노총이 지휘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모든 걸 지휘하며 노조 가입 안한 분들 협박하고 욕하며 못살게 한다’는 댓글이 달렸다. 당시 투쟁에 참여했던 김모씨(65)는 15일 “우리가 갑질을 당하고 또 당해서 직접 노조를 만든 것”이라며 “우리 뜻대로 한 행동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 반노동 정서 심해졌나...LG트윈타워 청소 노동자에게 쏟아진 혐오
대량 해고에 맞서 투쟁한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지 않았다. 목소리를 낸 톨게이트 노동자에게 돌아온 것은 ‘표 끊는 아줌마’와 같은 여성 혐오와 직업에 대한 멸시였다. 당시 투쟁에 참여한 박현숙씨(51)는 “밟으면 밟는대로 있다가 내 권리를 찾고 싶어 내 의지로 싸운 것”이라며 “아줌마라고 부당한 것을 모르는 게 아니다. 아줌마라서 참고 살았던 것 뿐”이라고 말했다.
남성 노동자의 투쟁은 과욕에서 비롯된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여성 노동자의 투쟁은 ‘의지 없이 조종 당하는 수동적인 행위’로 폄하된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비정규직 중년 여성 노동자는 ‘여성·고연령·저임금’과 같은 중첩된 소수자 지위를 가진 계층”이라 “이 분들의 투쟁에 대한 여론을 보면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여성 차별이 고착화됐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산업재해 예방 태스크포스(TF) 소속 의원들은 이날 서울대를 방문해 숨진 청소노동자 이모씨의 유족,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노조)와 간담회를 했다.
이 자리에서 이모씨의 유가족과 노조는 서울대 인권센터의 진상조사를 신뢰하지 못하겠다며 노조와 국회가 참여하는 공동조사단을 꾸릴 것을 요구했다. 숨진 이씨의 남편은 “학교 당국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싶어하는 것 같다”며 “학생처장 등 서울대 안에 계신 분들이 이미 글로 입장을 표명하셨다. 학교 측의 조사에 오늘부로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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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웅 기자 ban@khan.kr
사장이 밥값도 떼고, 연차휴가도 없애는 내용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하는 동의서를 받으려 직원들을 윽박질러 서명을 받는 동안, 단 한 사람이 끝까지 서명을 않고 버텼다. 그것을 지켜보며 마음 졸이던 동료들이 노조를 하기로 마음먹은 순간이 바로 그 ‘담대해지는 순간’이다.https://t.co/GkrIpr4prW
— 플랫 (@flatflat38) March 3,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