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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부끄러움은 있는가

입력 2021.07.17 03:00

수정 2021.07.1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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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
인간답다는 것은 부끄러움 아는 것
정치가, 기업가, 종교인은 마땅히
자신의 이름 값하는 역할을 해야

내가 좋아하는 작가 최인호가 ‘샘터’(1990년 1월호)에서 “집의 딸아이가 부끄러워할 때 간혹 낯을 붉히는 모습을 볼 때가 있는데 그러한 것을 볼 때마다 나는 낯을 붉히지 못하는 내 자신의 쇠가죽만큼 두터워진 낯가죽이 부끄럽다”라고 한다. 나는 고백한다. 광주의 망월동 5·18국립민주묘지나 세월호의 팽목항을 한 번도 가본 일이 없다. 너무나 부끄러워서다. 또한 그곳에 가면 가슴이 미어터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변명이지만 새벽 좌선 후에 올리는 나의 기도 속에서 그들 희생당한 영혼들을 만난다.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맹자가 성선설의 싹에 해당하는 4단(端) 중에 수오지심(羞惡之心)을 밝힌 것은 동물인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자신이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이 옳지 못함을 싫어하는 마음이다. 그가 스승 삼은 공자가 <논어>에서 “선비가 도에 뜻을 두고서 나쁜 옷과 나쁜 음식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더불어 도를 논의할 수 없다”는 가르침을 계승했다. 공자가 이름을 바로잡겠다는 정명(正名)의 정치철학을 표방한 것은 이를 사회화한 것이다. 케케묵은 봉건 질서를 재건하자는 것이지만, 현대에도 배울 점은 있다. 넓게는 정의나 대의, 좁게는 정치나 경제 등이 지시하는 진실한 뜻에 부합하도록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뜻이다.

사태가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정견(正見)으로써 자신의 직분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 공자가 말한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자식은 자식답게”라는 것은 오늘날 정치인은 정치인의 역할에 맞게, 기업가는 기업가의 역할에 맞게, 종교인은 종교인의 역할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번역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맹자는 주관적 감정인 이 부끄러움을 보편적인 도덕철학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누구나 갖고 있는 도덕적 본성을 돌아보도록 했다. 그는 공자가 “스스로 반성해서 의롭지 못하면 보잘것없는 천한 사람이라도 나는 두렵게 여기지 않을 수 없거니와 만약 스스로 반성해서 의로우면 천만인이라도 나는 가서 대적할 것이다”라고 대용(大勇)을 설했다고 한다. 맹자는 “염치를 모르면 인간이 아니다”라고까지 말한다.

이러한 가르침은 불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석존 최후의 말씀인 <유교경(遺敎經)>에서는 “만약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모든 공덕을 잃게 될 것이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은 선법(善法)을 지니거니와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금수와 다를 바가 없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공정한 관람자에 의해 인도되는 사회는 개인의 효용 극대화에 의해서만 인도되는 사회보다 더 행복할 것이다”라고 한다. 공정한 관람자는 양심, 신성, 불성으로 해석될 수 있다. 욕망의 근저에 있는 착한 본성에 신뢰를 보낸 것이다. 그러나 그 신뢰는 배반당하고 있다. 지구는 인간 욕망에 의해 곧 거덜날 것이기 때문이다.

최인호가 쓴 경허 스님에 관한 소설 <길 없는 길>에서 스님이 어머니 생일날 좋은 선물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발가벗은 몸을 보여드리니 어머니가 혼비백산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기였던 자신을 키운 어머니에게 온몸을 통째로 보여드리면 좋아할 것이라는 순수함이 앞섰기 때문이다. 이러한 순수성을 자신의 보배로 삼아야 하는 종교도 한물가고 있다. 세상을 향도해야 할 종교는 세속권력처럼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지도부로 갈수록 부끄러운 줄 모르고 진리적 신성성을 자기화하여 이기심의 노예가 되고 있다. 정치는 어떤가. 자신의 치부는 놓고 남이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힐난한다. 사회발전과 국민의 열망을 반영한 여성가족부와 통일부를 야당대표는 폐지하자고 주장한다. 정명을 들이댄다면 그나마 이해가 되겠지만, 오직 권력을 위한 “썰”이라면 부끄러움이 단단히 마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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