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치의 600배가 넘는 환경호르몬 검출로 정부가 리콜 명령을 내린 아기욕조 사건에 대한 집단분쟁조정 절차가 개시된다.
20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위원회)는 지난 19일 오후 회의를 열고 소비자들이 손해배상 등을 요구한 사건에 대해 집단분쟁조정 절차를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이날까지 집단분쟁조정을 신청한 소비자는 4000여명이다. 피신청인은 제조사인 대현화학공업과 중간 유통사인 기현산업, 최종 판매사인 다이소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경향신문 기자와 통화에서 “이번주 내 소비자원 홈페이지 등을 통해 집단분쟁조정 개시를 공고하고 소비자기본법에 따라 개시공고가 종료된 날의 다음날부터 30일 이내에 신속하게 조정결정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해당 기간 내 분쟁조정을 마칠 수 없을 시 2회에 한해 각각 30일의 범위에서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향후 위원회는 이해 당사자 등의 의견을 듣고 사실조사 등을 거쳐 손배에 따른 위자료를 결정한다. 소비자원은 사업자가 조정결정 내용을 수락할 경우 보상 계획서를 제출토록 권고해 ‘집단분쟁조정 신청자가 아니어도 다이소에서 아기욕조를 구입해 쓰고 있는 소비자에게 차별 없이 조정결정의 효과가 적용되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추가적인 소비자 참가신청은 받지 않기로 했다.
사업자가 조정결정을 수락하면 조정 내용은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수락하지 않으면 소비자들은 민사소송을 별도로 제기해야 한다. 분쟁조정을 신청한 이승익 변호사(법무법인 대륙아주)는 “위원회에서 합리적인 조정결정이 도출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며 “향후 수사과정 등에서도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해당 상품은 다이소에서 ‘물빠짐 아기욕조’라는 이름으로 5000원에 팔렸다. 가격이 저렴할 뿐만 아니라 신생아를 씻기기에 편리해 ‘국민 아기욕조’로 불렸다. 지금까지 9만개 이상이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제품의 문제는 지난해 11월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국표원)이 실시한 무작위 안전성 검사에서 발견됐다. 욕조 배수구를 막는 플라스틱 마개에서 환경호르몬인 프탈레이트계 가소제가 기준치의 612.5배 검출됐고 산업부는 리콜 명령을 내렸다. 프탈레이트계 가소제는 플라스틱을 부드럽게 만들때 쓰는 화학물질로 장시간 노출 시 간 손상과 생식 기능 저하를 유발한다.
그럼에도 제품에는 안전기준에 적합한 것처럼 KC(Korea Certification·국가통합인증)인증이 표시돼 팔렸다. 제조사인 대현화학공업과 중간 유통사인 기현산업은 ‘KC인증 통과 후 제조과정에서 제품 원료가 바뀐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판매사인 다이소는 안전관리를 철저하게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문을 내고 리콜에 나섰다.
신생아와 보호자의 피부에서 이상 증상이 잇따르자 피해자들은 제조사 등을 지난 2월 서울동작경찰서에 고소했다. 사건은 서울경찰청으로 이첩돼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가 수사를 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형사고소와 별개로 다이소도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에 대해 조사해 달라고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공정위는 지난 3월 서울 강남구의 다이소 본사를 찾아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다이소 관계자들을 소환해 조사에 들어갔다. 다이소가 중간에 원료변경 등을 알고도 팔았는지, 몰랐다면 관리 책임을 어디까지 물어야 하는지 등에 따라 제재 수위가 결정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