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반도체·배터리(이차전지)·백신 3개 분야를 ‘국가전략기술’로 특정하고 연구개발(R&D) 투자 기업에게 전폭적인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전 세계적으로 기술패권과 공급망 경쟁이 심해지는 3개 분야 지원에 나선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기업에 세액공제 혜택이 쏠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획재정부가 26일 발표한 ‘2021년 세법개정안’을 보면, 일반 및 신성장 원천기술로 이뤄진 기존의 2단계 R&D 및 시설투자 세액공제는 앞으로 ‘국가전략기술’이 추가된 3단계 구조로 바뀐다. 국가전략기술은 반도체·배터리·백신 3대 분야에서 총 65개 항목이다. 국가전략기술 R&D에 투자하는 대·중견기업은 30~40%, 중소기업은 40~50% 세액공제를 받고 시설투자는 대기업 6%, 중견기업 8%, 중소기업 16%로 각각 공제율이 적용된다. 예년 대비 늘어난 투자액에 대해 4%를 추가 공제하는 것까지 합치면 10~20%를 공제해준다.
이러한 공제율은 기존의 신성장·원천기술 지원보다 R&D는 10%포인트, 시설투자는 3∼4%포인트 높게 책정된 것이다. 이는 3개 분야가 매출에서 연구개발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기술 집약’ 성격이 크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연구개발활동조사 결과, 2016~2019년 매출액 대비 개발 비중을 보면 백신(9.9%), 반도체(8.5%), 배터리(6.2%) 분야가 모두 제조업(4.3%)에 비해 높았다.
반도체는 15㎜ 이하급 D램 및 170단 이상 낸드플래시 메모리, 차량용 반도체, 파운드리 분야 7㎚ 이하급 제조공정 관련 기술 등을 포함한 R&D 20개, 시설투자 19개 항목이 국가전략기술로 뽑혔다. 배터리는 리튬이온 이차전지의 안전성과 생산성 향상 기술과 리튬금속 등 차세대 이차전지 상용화 기술을 선점하는 데 초점을 맞춘 R&D 9개, 시설투자 9개 항목이 선정됐다. 백신은 ‘백신 자주권’ 확보를 목표로 R&D 4개, 시설투자 3개 항목을 정했다. 이번 세제 지원은 이달 1일부터 3년간 한시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세제지원 규모는 총 1조1600억원으로 추정되는데 이중 대기업이 8830억원, 중소기업이 2770억원대 혜택을 볼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조세혜택 규모나 효과를 놓고 다양한 해석을 내놨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미국의 바이든 정부가 세계 질서를 재편하면서 반도체 전쟁이 벌어지는 등 국제적인 큰 틀의 변화가 이번 개정안에 반영됐다”면서 “중소기업 공제율이 높지만 반도체·배터리·백신 연구 개발을 직접 맡는 곳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실제 혜택은 대기업에 집중된 것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구재이 세무사는 “국가전략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투자에 결정적인 수도권 정비 계획법 등 관련 법령과 규제를 손보는 것과 충분한 자금지원 등이 핵심”이라며 “조세지원 사례 및 규모, 효과 등과의 비교분석이 필요하지만 기재부는 이러한 자료 없이 대기업 등 특정 계층에 과도한 조세지원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는 “정부는 일본과 무역 마찰 이후 소재·부품·장비 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R&D 예산을 2020년 24조2000억원에서 2021년 27조4000억원으로 늘렸고 지난해는 세액공제도 강화했다”며 “여기에 추가적 세액공제는 중복 지원인데다 공제율이 높아서 과도하다”고 말했다.
관련업계는 이번 개정을 일제히 반겼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반도체 산업에 있어 이 정도의 세제 혜택은 유례가 없다”며 “전세계적으로 투자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연구개발과 시설확충을 위한 투자 여력 확보에 굉장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도 “세제 지원은 업계에서 오랜 기간 바라왔던 만큼 환영한다”며 “산업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다른 관계자는 “추상적이라 구체적 정책이 나와야 알 수 있을 듯하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