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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서울대 청소노동자 필기시험, 직장 내 괴롭힘 맞다”

지난 7일 서울대 행정관에서 청소노동자의 죽음이 관리자의 갑질에 의한 것이라며 유족과 동료 노동자들이 서울대 총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우철훈 기자

지난 7일 서울대 행정관에서 청소노동자의 죽음이 관리자의 갑질에 의한 것이라며 유족과 동료 노동자들이 서울대 총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우철훈 기자

지난달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이모씨(59)가 휴게실에서 숨진 사건과 관련해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던 사실을 확인했다고 고용노동부가 30일 밝혔다.

노동부는 조사 결과 일부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이 있다고 판단해 서울대에 개선을 지도했다고 이날 밝혔다. 노동부는 유족과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된 A팀장, 일부 노동자에 대해서는 대면 조사를 했고 노동자 전원에 대해서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근로기준법은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노동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규정한다.

노동부는 업무상 지휘·명령권이 있는 A팀장이 청소노동자에게 업무와 관련 없는 필기시험을 실시하고, 시험성적을 근무평정 반영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이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봤다.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필기시험지.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 제공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필기시험지.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 제공

구체적으로는 필기시험에 청소 업무와 관계가 없는 문항이 상당수 포함되고, 근무평정제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시험성적을 근무평정에 반영한다는 내용의 프레젠테이션을 시험 중에 임의로 게시한 게 문제가 됐다.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이 공개한 필기시험지를 보면, ‘건물 명칭을 영어와 한자로 쓰라’, ‘현재 속해 있는 조직이 개관한 년도는 언제인가’ 등 문항이 있었다. 앞서 기자회견 등에서 노동자들은 업무와 관련 없는 시험을 보게 하고 점수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공개해 모욕감과 자괴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서울대 측은 시험을 본 것은 외국인과 학부모 응대에 필요한 소양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동부는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동부는 “사전 교육 없는 필기시험이 교육수단으로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필기시험에 대한 공지를 선행하지 않은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필기시험 실시와 근무평정 반영 의사표시는 직장 내 괴롭힘 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A팀장이 ‘드레스코드에 맞는 복장’을 입고 회의에 참석하라고 노동자들에게 요청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노동부 조사 결과 A팀장은 회의 중 일부 노동자들 복장에 대해 박수를 치는 등 품평도 했다. 노동부는 “복무규정 등의 근거 없이 회의 참석 복장에 간섭하고 품평을 한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 행위에 해당한다”고 했다.

서울대 관악학생생활관 관리자들이 청소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미화 업무 필기 고사’를 실시하면서 띄워놓은 프레젠테이션. 프레젠테이션에는 ‘점수는 근무성적평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계획’이라고 적혀있다.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 제공

서울대 관악학생생활관 관리자들이 청소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미화 업무 필기 고사’를 실시하면서 띄워놓은 프레젠테이션. 프레젠테이션에는 ‘점수는 근무성적평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계획’이라고 적혀있다.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 제공

노동부는 서울대에 조사 결과를 통보하고, 즉시 개선과 재발방지를 지도했다. 서울대는 개선방안과 재발방지 대책, 조직문화 진단계획을 수립해 모든 노동자에게 공개하고 관할 지방노동관서에 조치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 또 A팀장에 대해서는 징계 등 필요한 조치를 하고 서울대 전체 노동자에 대해 직장 내 괴롭힘 특별 예방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노동부는 “개선지도 사항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서울대를 근로감독 대상에 포함하는 등 엄중하게 대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씨 사망 직후 직장 내 괴롭힘 의혹을 부인하며 공식적인 유감 표명조차 하지 않았던 서울대는 노동부 조사로 직장 내 괴롭힘이 확인되면서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서울대는 특히 구민교 전 학생처장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한 분의 안타까운 죽음을 놓고 산 사람들이 너도나도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 게 역겹다”는 발언을 해 논란이 일었다.

구 전 처장은 SNS에 “언론에 마구잡이로 유통되고 소비되고 있는 ‘악독한 특정 관리자’ 얘기는 모두 사실과 다르다”며 “눈에 뭐가 씌면 세상이 다 자기가 바라보고 싶은 대로만 보인다지만, 일이 이렇게 흘러가는 걸 보면 자괴감이 든다”고 썼다. 논란이 커지자 이씨가 사망한 지 약 보름 뒤인 지난 13일에야 서울대는 오세정 총장 명의로 “노동환경과 인사관리방식을 다시 점검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노조는 오 총장이 이씨와 유족, 청소노동자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라고 촉구했다. 다만 노조는 예초작업 외주화, 청소검열 등 노조가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주장했던 일부 내용을 노동부가 배제했다며 유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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