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기 좋은 공만 서서 기다리다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아웃’ 연발
선발로만 뛰다 불펜 맡은 투수들, 단기간 적응 못하고 부진 거듭
힘든 상황 응집력 부족 ‘결정적’…오늘 동메달전 ‘마지막 자존심’

한국 야구대표팀 선수들이 지난 5일 일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패자 준결승 미국과의 경기를 더그아웃에서 무기력하게 바라보고 있다. 요코하마 | 연합뉴스
국제대회가 열릴 때마다 공인구 적응은 화두가 된다. KBO리그 공인구에 비해 공이 크다, 물렁하다, 실밥이 두껍다 등 여러 느낌을 받은 선수들은 연습하고 적응한다. 또 다른 국제대회의 변수는 스트라이크존이다. 각국의 심판들이 고루 섞여 배정되는 데다 각국 리그의 스트라이크존 경향은 조금씩 다르다.
2020 도쿄 올림픽에 출전한 야구 대표팀 타자들은 심각한 타격 부진으로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5일 미국전까지 6경기 중 실질적으로 잘 쳐서 이긴 경기는 ‘야구 변방’이라 불리던 이스라엘에 11-1로 콜드게임 승리를 올린 녹아웃 스테이지 2차전뿐이다. 이번 대회에서 일부 심판들의 스트라이크존은 들쭉날쭉했다. 오심이라 생각되는 판정도 일부 있었다. 그래도 일본과 미국 타자들은 잘 쳤고 한국 타자들은 내내 고전했다.
타격 부진으로 결승행을 놓친 것이 더 아쉬운 이유는 딱히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물러났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치는 상대 타자들에 비해 한국 타자들은 너무 신중하게 공을 지켜봤다. 치기 좋은 공만 기다리다 타석을 낭비했다. 특히 결승행 티켓을 내준 5일 미국전에서 한국 타자들은 8개의 삼진을 당했다. 그중 절반인 4개가 루킹삼진이었다. 5일 미국전에서 박건우는 풀카운트에서 높은 볼에 스트라이크 삼진을 당하자 마치 KBO리그로 착각한 듯 스트라이크존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이번 대표팀은 전에 비해 전력이 약하다고 하지만 KBO리그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특급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집합해 있다. 좋은 대우와 팬들의 사랑 속에 매일 컨디션에 따라 관리받으며 야구하는 데 익숙해진 KBO리그 타자들이 ‘우물’ 밖으로 나가자 꼼짝 못하는 모습은 올림픽 결승 진출 실패의 출발점이 된 동시에 한국 야구의 위기감마저 키우고 있다.
리그 에이스들이 총출동했던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선발 투수지만 전천후 불펜으로 잘 던져준 윤석민 같은 투수의 등장을 기대했던 대표팀의 계산도 빗나갔다. 선발 투수들은 단기간의 변신에 적응하지 못했다.
이번 대회에서 선발로 나간 투수들은 모두 잘 던졌다. 그러나 불펜 역할을 맡은 투수들은 부진했다. 최원준과 원태인은 올 시즌 리그에서 가장 빼어난 국내 선발 투수들이다. 그러나 5일 미국전에서 6회말 불펜 붕괴의 중심에 섰다. 접전에서 깔끔하게 막아줄 줄 알았던 리그 최고 투수들이 무너지면서 경기가 넘어갔다. 최원준은 2일 이스라엘전에 이어 5일 미국전까지 2경기에서 아웃카운트는 1개밖에 잡지 못하고 사사구는 4개나 기록했다.
과거 한국이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어떤 거친 상황도 이겨내고 바로 적응하는 일종의 전투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힘든 상황에 똘똘 뭉치는 응집력도 결국은 싸우고 버텨낼 수 있는 힘에서 나온다. 대표팀은 아무리 약하다고 해도 현재 KBO리그 최고 선수들의 집합체다. 김경문 감독의 말대로, 금메달을 놓쳤다는 사실보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경기력으로 졌다는 것이 실망감의 근원이다. 7일 동메달 결정전은 한국 야구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KBO리그에서만 강한 ‘우물 안 야구’의 오명은 씻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