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 또는 희망 …두 얼굴의 도쿄 올림픽
악명 높은 더위, 선수들 악전고투
일본 국민도 반대한 무리한 대회
맥없고 메시지도 실종된 개회식
■ Tired schedule(피곤한 일정) = 취재활동계획서(액티비티 플랜)의 승인 여부에 대한 답을 개막 직전까지 받지 못한 기자들이 적잖았다. 코로나19 검사로 인해 30~40분이면 족히 될 입국심사가 몇 시간씩 이어지는 등 모든 절차에 평소 몇배의 에너지를 소모해야 했다. 현지 일본 사람들과의 접촉을 금하려는 동선 통제로, 도쿄에선 외국인이 아닌 이방인으로 지내야 했다.
■ Odious weather(끔찍한 날씨) = 일본의 더위는 악명 그대로였다. 사방이 바다인 섬나라 특성상 습도도 굉장히 높았다. 바깥 공간에 잠깐 있어도 땀은 주룩주룩 흘렀다. 육상 경기는 낮과 밤으로 나뉘어 열렸는데, 낮 경기에 나선 선수들이 완주 후 트랙에 쓰러진 후 헐떡이는 모습이 아주 잦았다.
■ Keep tight control?(철저한 통제?) =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철저한 통제를 두고는 대부분 공감했다. 문제는 원칙만 철저하고 실제 관리는 허술했다는 것이다. 환승센터(MTM)로 향하는 버스 안은 북적였고, 개회식 날 올림픽 스타디움 주변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심지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도 여럿 보였다.
■ Yawning opening(하품 나오는 개회식) = 올림픽 개회식은 많은 문화 공연이 동반되기 마련이다. 그 공연 속에 전하고자 하는 여러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번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무관중으로 열린 상황에서 개회식 자체도 너무 맥없이 진행됐다. 오죽했으면 국내에서는 개회식이 아니라 장례식 같다는 반응도 있었을까.
■ Opposition(반대 많은 올림픽) = 여러모로 반대가 참 많은 대회였다. 올림픽은 전 세계 최대 스포츠 축제인데, 개회식이 열리기 며칠 전까지도 올림픽 개최에 찬성보다 반대하는 일본 국민이 많았다.
오진혁·김정환, 감동 리더십·투혼
한국 육상에 이정표 남긴 우상혁
황선우 역영엔 세계가 놀람·찬사
■ Overcome age(나이 극복) = 한국 남자 양궁 단체전 금메달을 이끈 오진혁(40·현대제철)의 리더십은 눈부셨다. 개인전 동메달, 단체전 금메달을 이끈 남자 펜싱 사브르 김정환(38·국민체육진흥공단)의 투혼도 빛났다. 노메달에 그친 진종오(42·서울시청)는 은퇴는 아직 아니라며 나이에 지지 않겠다고 했다.
■ Last dance(라스트 댄스) = 김연경(33·중국 상하이)은 선수로서,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주장으로서 후회없는 마지막 올림픽을 치렀다. 박세리 이후 한국 여자골프를 선두에서 이끌어왔던 박인비(33)도 최후의 불꽃을 태웠다. 오랜 기간 한국 태권도의 간판으로 활약한 이대훈(29·대전시청)의 마지막 도전도 아름다웠다.
■ Young power(영 파워) = 양궁 대표팀의 막내이면서 2관왕에 오른 김제덕(17·경북일고)의 ‘빠이팅’은 도쿄 올림픽 기간 최고 유행어가 됐다. 여서정(19·수원시청)은 한국 여자 기계체조 사상 첫 메달로 마침내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황선우(18·서울체고)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역영을 펼쳤고 신유빈(17·대한항공)도 파리 올림픽을 기대케 했다.
■ Make a history(역사 창조) = 이진택의 남자 높이뛰기 기록을 24년 만에 경신한 우상혁(25·국군체육부대)의 도전은 한국 육상에 큰 희망을 안겼다. 근대5종 불모지와 다름없던 한국에 올림픽 사상 첫 메달을 안긴 전웅태(26·광주광역시청)는 한국 스포츠의 지평을 넓혔다.
■ Plunge of Combat sports(투기 종목의 쇠락) = 그동안 한국의 효자종목이었던 태권도, 유도, 레슬링 등 투기 종목에서는 단 한 개의 금메달도 나오지 않았다. 투기 종목에서의 고전은 한국이 45년 만에 가장 좋지 않은 올림픽 성적표를 받아든 이유 중 하나였다.
■ Impression(감동) = 김연경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의 4강 신화는 올림픽 기간 내내 국민에게 많은 감동을 선사했다. 한국 선수들끼리 붙은 배드민턴 여자 복식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경기 뒤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뭉클했다. 근대5종에서 4위에 그친 뒤 “동생(전웅태)의 등을 보고 뛰어 마음이 편했다”는 정진화(32·LH)의 말도 촉촉이 국민 가슴에 녹아내렸다.
■ Concentration(집중력) = 한국 하계올림픽 사상 첫 3관왕이 된 여자 양궁의 안산(20·광주여대). 그는 개인전 4강전과 결승전을 슛오프로 결정지었다. 단 한 발로 금메달을 가리는 가슴 떨리는 승부에서 두 차례 모두 10점에 명중시켰다. 여자배구 한·일전에서 연속 득점으로 승리를 이끈 박정아(28·한국도로공사), 1초를 남기고 극적인 머리 공격으로 짜릿한 역전승을 만든 여자 태권도 이다빈(25·서울시청)의 집중력 또한 최고였다.
■ Super weapon(초강력 무기) = 우리는 무기를 들면 강해진다. 은메달 1개를 따낸 사격에서는 미래를 기대케 하는 기대주들이 많이 나왔고, 펜싱은 종합성적 3위에 올랐다. 금메달 5개 중 4개를 가져온 양궁은 여전히 세계 최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