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이 다시 ‘탈레반의 나라’가 됐다. 이슬람 무장 정치조직인 탈레반이 20년 만에 수도 카불 등 주요 도시를 다시 장악하고, 과거 집권기(1996~2001년)의 국호인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에미리트’ 명의로 성명을 발표하는 등 재집권을 천명했다. 탈레반의 권력 재장악은 대테러 전쟁을 명분으로 아프간을 점령하고 이후 서구식 민주주의 체제를 이식하려던 미국의 실패를 뜻한다. 그 실패는 이제 아프간 시민의 미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탈레반의 재집권을 보며 우려가 앞서는 게 사실이다. 과거 탈레반이 보여준 반문명적 통치 행태가 생생하기 때문이다. 당초 학생들의 운동단체로 출범한 탈레반(‘학생들’이란 뜻의 파슈토어)은 긴 내전 속에 세력을 확장하다 1996년 권력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평화와 관용을 강조하는 이슬람 율법을 자신들 입맛대로 해석하며 극단적 원리주의 집단의 특성을 드러냈다. 여성과 어린이들에 대한 반인권적 강압통치가 대표적이다. 여성들의 교육과 사회활동을 금지하고 전신을 덮는 부르카 착용을 강제했다. 고대 문화유산인 바미안 유적의 불상들을 폭파해 세계를 경악에 빠뜨리기도 했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자 아프간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초기엔 알카에다 색출과 탈레반 정권 붕괴를 목표로 했지만, 이후 민주주의 수출을 명분으로 ‘정상 국가’를 건설하는 방향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정교한 전략 없는 무모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는 국민의 삶을 낫게 만들지 못했다. 정부가 불신받는 사이 탈레반은 세력을 다시 확장했다. 결국 미국은 지난 4월 완전 철군을 선언했다.
다시 정권을 장악한 탈레반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 개방적인 정부 구성, 평화로운 국제관계 등의 의지를 밝히며 유화적인 모습을 강조하고 나섰다. 탈레반이 과거보다 개방된 정치체로 변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아직 그들의 공언을 그대로 믿기는 힘들다. 국경으로 몰려드는 피란민들의 공포가 이를 잘 말해준다. 탈레반 정권은 과거와 같은 통치 행태를 되풀이했다가는 내부 반발은 물론 국제사회의 비판과 고립을 자초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과거에 대한 반성 속에 인류 보편적 가치인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기를 기대한다.
당장 탈레반은 ‘공포에 질린 시민들의 출국을 보장하라’는 세계 65개국의 공동성명을 수용해야 옳다. 한국 정부도 아프간에 남아 있는 공관원과 국민의 안전 확보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가장 절실한 것은 국제사회의 관심이다. 아프간 시민들, 특히 여성과 어린이의 인권이 20년 전으로 후퇴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한 관심을 갖고 주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