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패럴림픽 출전 무산 아프간 여성 선수 “탈레반이 알아볼까 나가기 두렵다”

박하얀 기자

태권도 대표 자키아 쿠다다디

카불 공항 혼란에 발 묶여

스포츠도 여성도 전망 ‘암울’

2020 도쿄패럴림픽을 앞두고 훈련 중인 자키아 쿠다다디. 아프가니스탄 NPC

2020 도쿄패럴림픽을 앞두고 훈련 중인 자키아 쿠다다디. 아프가니스탄 NPC

“집 안에 갇혔습니다. 탈레반이 알아볼까봐 밖에 나가는 것이 매우 두렵습니다.”

오는 24일부터 열리는 도쿄 패럴림픽에 출전할 예정이었던 아프가니스탄 태권도 대표 선수 자키아 쿠다다디(23·사진)는 17일 영국 런던에 있는 아리안 사디치 아프간 패럴림픽위원회 팀 매니저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부푼 꿈을 안고 자신이 사는 헤라트 지역을 떠나 지난 주말 수도 카불에 도착해 공항을 찾았지만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하면서 공항은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항공편이 취소됐고 비행기 표값마저 천정부지로 치솟아 구할 수 없었다. 17일 도쿄에 도착할 계획이었던 그는 그렇게 카불에 발이 묶였다.

아프간에서는 이번 도쿄 패럴림픽에 쿠다다디와 육상 선수 호사인 라소울리(24) 등 2명이 참가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탈레반 재집권에 따른 혼란으로 이들의 도쿄행이 사실상 무산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이 18일 전했다.

쿠다다디는 자신의 올림픽 출전이 아프간 여성 인권의 상징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도쿄 패럴림픽에 참가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여기까지 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그 자체로 큰 성과이며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쿠다다디는 유엔 등에 장애인 올림픽 운동에서 아프간 여성의 권리가 박탈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아프간 장애인 선수의 패럴림픽 준비는 녹록지 않았다. 쿠다다디가 살던 지역에는 탈레반이 많아 여성의 지역 클럽 출입이 금지됐다. 그는 집 뒷마당 등에서 수년 동안 훈련했다. 2016년 이집트에서 열린 아프리카 국제 장애인 태권도 선수권대회에서는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다. 사디치는 “아프간 운동선수들은 한 달에 17달러(1만9800원) 미만을 받고 있다”며 “아프간과 같은 국가에서 장애인 스포츠는 여전히 무능력한 스포츠로 낙인찍혀 있다”고 ABC뉴스에 말했다.

탈레반의 재집권으로 아프간 스포츠도 위험에 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탈레반 집권기(1996~2001년)에 스포츠는 사실상 정체됐다. 탈레반은 스포츠에 별다른 지원을 하지 않았고 일부 스포츠 종목을 규제하기도 했다. 체스 종목은 “도박의 한 형태이자 신성한 삶을 방해하는 것”이란 이유로 규제받았다. 미군 철수 국면에서 치러진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도 아프간 대표단은 단 5명의 선수로 구성됐다. 앞서 태권도 선수 로훌라 니크파이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해 아프간의 첫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됐다.

특히 여성 운동선수들에게 암울한 미래가 예고돼 있다고 외신들은 지적했다. ABC뉴스는 “전통적으로 엄격한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 스포츠인들은 많은 이들의 비난에 노출돼 있다”며 “탈레반의 강경 노선이 여성 선수들을 몰아내고 처벌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디치는 “여성들이 껍데기를 벗고 힘을 얻어 학교, 직장에 가고 신체 활동·스포츠에 참여하는 데 20년이 걸렸기 때문에 (탈레반 재집권은) 좋은 소식이 아닐 것”이라며 “여성들의 세계가 다시 한번 산산조각이 났음을 상상할 수 있다. 희망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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