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혈액암 투병 전두환, 5·18 참회·증언 기회 놓치지 말길

전두환 전 대통령이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을 진단받은 것으로 21일 전해졌다. 골수에서 항체를 생산하는 형질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해 뼈를 파고들고 면역장애 등을 일으키는 혈액질환이다. 전씨는 지난 9일 광주지법 법정에 부쩍 야위고 주름 깊은 얼굴로 출석해 24분 만에 호흡곤란으로 퇴정했다. 그 후 기력이 급속히 떨어져 병원을 찾았다가 뒤늦게 혈액암을 알았다고 한다. 올해 90세인 전씨의 암 투병 소식에 만감이 교차한다. 빠른 치유를 바라면서, 그가 국민 앞에 직접 고백하고 고개 숙일 5·18의 진실과 죄업도 많이 남아 있음을 직시하게 된다.

전씨는 회고록에서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봤다는 고 조비오 신부를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가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을 진행하고 있다. 치매를 이유로 재판에 불출석하면서 골프를 치고, 5·18 학살 책임과 발포 명령자를 묻는 추궁에 “모른다”고 대답했다. 12·12 쿠데타 장본인들과 기념 만찬을 하면서도 추징금을 내라는 말에는 “네가 좀 대신 내주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무릎 꿇고 사죄해도 모자란데 지금껏 시민들의 부아만 돋우어왔다.

광주 5·18의 진상 규명과 가해자들의 속죄가 이어지고 있다. 진압군으로 동원된 200여명이 ‘5·18 진상조사위’에 시민들을 향한 기관총 조준 사격과 민간인 공격을 증언하고, 유가족에게 사과할 뜻을 밝혔다. 당시 특전사령관으로 광주에 간 정호용 전 국방장관도 지난 2월 이 조사위에 낸 진정서에서 “도청 진압을 보안사가 주도했고 헬기 작전도 분명히 들었다”며 전씨가 끝까지 사과하지 않으면 직접 망월동 묘지를 찾아 사과하겠다고 적었다. 아흔 나이에 명예를 회복하고 생을 마감하고 싶고, 국민통합에 기여하고 싶은 게 진정서를 쓴 이유라고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는 “아버지의 말과 거동이 어렵다”며 3년째 5·18 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가해자의 사죄는 진실 규명 협조와 회고록 수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 속에서 유독 전씨만 침묵하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풀리지 않은 5·18의 진실과 해원(解寃)이 한 사람의 입 앞에서 멈춰 있다. 혈액암 투병에 들어간 전씨가 역사에 답할 시간과 기회는 마냥 남아 있지 않다. 41년 전 군홧발로 광주를 짓밟고 집권한 최고 책임 당사자의 참회와 증언을 대한민국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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