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쉼’에 대해 정면으로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일하는 단체는 근속 3년을 채운 상근자에게 한 달의 안식월을 부여한다. 어느덧 나도 근속 3년을 넘겼고, 드디어 안식월을 쓸 수 있게 됐다. 그 덕분에 지난 7월 한 달을 꽉 채워 쉬었다. 휴가 내내 생각했다. 과연 좋은 쉼이란 무엇인가?
조희원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10년 전 유행했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처럼, 이제는 “쉬어야 보인다” “휴식도 자기계발의 한 방식”이라는 말이 번아웃 시대의 처방처럼 들려온다. 어떻게 해야 잘 쉬는 것일까. 제주도 한 달 살기? 속세를 떠나 자연에서 아무런 요구도 일정도 없이 지내다 보면 나와 일에 대해 뭔가 깨닫게 되려나. 그러기엔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다. 역시 ‘멋들어지는’ 휴식은 쉽지 않다. 한편 궁금하기도 했다. 쉬면 무엇을 알 수 있는지, 정말 진짜 ‘나’를 찾을 수 있는 건지. 이 답을 찾기 위해 쉼을 주제로 한 드라마도 봤다. 여자 주인공은 퇴사 후 주체적인 선택을 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공했지만, 나의 휴식은 그걸 보며 “와 재밌다”라는 감상을 남긴 시간일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달을 쉰다고 내 삶의 불안이 나아질 리 없다. 휴식이 끝나면 다시 일터로 돌아가 답 없는 질문의 답을 찾는 일을 해야 한다. 더 좋은 세상을 고민하는 일을 한다고 내 주머니 사정은 좋아지지 않는다. 내 방 하나 없는 이 땅에서, 이 귀여운 월급으로 앞으로 어떻게 70년이나 더 막막한 세상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내려야 한다. 나는 무엇을 느껴야 했던 것일까. 누군가는 쉬면서 제2의 인생을 찾았다고 하고, ‘나’를 ‘나’로 존재하게 하는 노동의 의미를 찾았다는데. 내 감수성은 겨우 여기까지인 걸까?
감수성을 탓하기에 앞서, 과연 노동을 벗어난 진짜 ‘나’에 대해 풍부한 감상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생각해본다. 내가 드라마를 보며 “재밌다” 느낄 수 있었던 건 그나마 유급으로 한 달을 쉬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은 아무런 안전망이 없이 쉰다. 본인의 의지로 퇴사한 사람에게는 실업급여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아파도 쉬기가 쉽지 않다. 유급 병가와 상병수당이 모두 없는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미국과 한국뿐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보장하는 주가 느는 추세다. 최소한의 안전망도 없는 자영업자나 프리랜서의 휴직은 더 큰 불안의 구덩이일 테다. 이쯤 되면 휴식은 사실 불안과 같은 말일지도 모른다.
쉬는 것 또한 이렇게 쉽지 않은데, “쉬어야 다음 삶을 살 수 있다”는 ‘힐링’의 언어는 얼마나 공허한가.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하면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겐 쉼조차도 버거울 뿐이다. 쉼 자체가 득이 되는 쉼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이 아니다. 보장 없는 쉼은 불안의 연속일 뿐이다.
10년 전만 해도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누군가에겐 힐링의 문장이었지만, 이제는 청년의 불평등한 현실에 순응하라는 ‘꼰대’의 언어가 됐다. 이제 휴식의 필요를 다시 쓰자. 번아웃에 지친 당신에게 필요한 건 휴식이 아니라 보장이다. 쉼 끝에 오는 개인적 성장도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을 때 가능하다. 불안정한 시대에 대한 처방은 휴식이 아니라, 보장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