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난민위기 되풀이될라' 아프간 난민에 빗장 걸어잠그는 유럽

이윤정 기자
그리스-터키 국경 지대에 설치된 장벽.   AP연합뉴스

그리스-터키 국경 지대에 설치된 장벽. AP연합뉴스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면서 유럽 각국들이 ‘2015년 난민위기’가 재현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당시 시리아 내전 등으로 100만명이 넘는 난민이 유럽으로 유입되자 반난민 정서를 품은 극우 포퓰리즘이 유럽 정치를 흔들었기 때문이다. 6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난민정책에 합의하지 못한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아프간 난민 유입을 우려해 빗장을 걸어잠그고 있다.

시리아 내전 당시 난민을 대거 받아들였던 유럽 일부 국가들이 이번에는 재빠르게 철벽을 치고 있다. 그리스는 터키와의 국경에 길이 40㎞에 달하는 장벽을 설치했다. 탈레반을 피해 목숨을 걸고 도망친 아프간 난민들이 터키를 거쳐 그리스로 넘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23일(현지시간) “앞으로 아프간 난민이 더 이상 유럽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EU가 나서서 아프간 주변국들에게 지원을 해주야 한다”고 촉구했다. 2015년 유럽 난민위기 당시 전체 인구 1% 이상의 망명 신청자를 수용했던 오스트리아도 이번만큼은 절대 난민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민 정책에 강경한 정책을 공약한 세바스티안 쿠르츠 총리는 “아프간인들이 오스트리아에 올 이유가 없다”면서 “아프간 인근 지역에 난민센터를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국가들도 있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는 “자유, 시민권, 인권 등을 지키기 위해 싸운 아프간인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서방을 도왔거나 위험에 처한 아프간인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을 따라 아프간 침공에 함께 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이 도덕적 의무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EU에는 합의된 난민대응책이 없다. EU는 난민 위기 이후 망명 신청자들을 EU 회원국에 고루 수용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지난해 폴란드·체코 등이 거부하며 난민정책 협상에 진전이 없는 상태다. 결국 조셉 보렐 EU 안보외교정책 고위대표는 지난 19일 EU 의회에 27개 회원국의 만장일치 결정이 필요 없는 ‘임시보호’ 조치를 아프간 난민에 적용하자고 제안했다. EU는 10년 전 ‘아랍의 봄’ 당시 중동·아프리카를 떠난 사람들에게 임시보호 조치를 적용한 바 있다.

EU가 바라는 현실적인 대책은 최대한 아프간 난민들을 주변국에 정착시키는 것이지만 이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아프간 붕괴에 대한 영향을 유럽 혼자서 감당할 수는 없다”면서 터키, 중앙아시아, 파키스탄 등 인근 국가에 머물 수 있도록 협력과 지원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이미 시리아 난민 360만명을 수용 중인 터키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3일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유럽을 위해 아프간 난민을 떠맡을 수는 없다”고 밝혔다. 러시아 또한 아프간 난민을 러시아 인근인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수용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2일 “난민으로 위장한 무장세력이 발을 들이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며 “서방 국가들은 난민을 수용하지 않으면서 우리 이웃 국가에 보내는 저의가 무엇인가”라고 비판했다.

난민 수용으로 유럽에서 극우 포퓰리즘이 다시 활개치게 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벌써부터 독일 극우정당인 독일대안당(AfD)은 아프간 난민들이 독일에 입국하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반발하고 있다. 이탈리아 극우정당인 동맹(Lega)의 마테오 살비니 대표도 트위터에 “잠재적 테러범들을 포함해 수천명의 남성에게 문을 여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탈리아의 또 다른 극우 정당 이탈리아형제들(FdI), 프랑스의 국민연합(RN) 등도 난민 반대 여론에 동참하고 있다. EU 정치가 극우 포퓰리즘의 프레임에 갖춰 제대로된 난민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Today`s HOT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연기 내뿜는 우크라 아파트 인도 44일 총선 시작 주유엔 대사와 회담하는 기시다 총리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