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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입증책임

입력 2021.09.23 03:00

수정 2021.09.2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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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9세가 되는 남성은 병역판정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 병역판정검사가 이루어지는 방식이 참 이상하다.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에 따르면 신장, 체중과 같은 기본검사는 전원에게 이루어지지만, 정밀검사는 ‘질환을 호소하는’ 사람에게만 이루어진다. 질환을 호소하기 위해서는 적절히 진단서류를 첨부해야 한다. 내가 신체검사를 받을 때도 나처럼 빈손으로 온 사람은 대체로 현역 판정을 받았고, 자신의 질환을 주장하기 위해 서류를 한 뭉치 들고 오는 사람들은 대체로 그렇지 않았다. 사회 지도층의 병역 면제율이 더 높은 것은 질환을 스스로 입증하도록 설계된 제도 때문일 것이다.

이총희 회계사

이총희 회계사

사회란 원래 불공정한 곳이니 이것까지는 이해할 수도 있다. 이러한 기준이 일관되게 적용된다면 말이다. 질환을 호소하지 않은 이들은 대체로 ‘질병 또는 심신장애가 없는’ 이로 판정된다. 따라서 군대에 가는 이들은 질병 또는 심신장애가 없는 이들이고, 이들이 질병 또는 심신장애가 생겨서 군대를 나왔다면 그 책임은 모두 국가의 책임이어야 한다. 하지만 군 내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쉽게 인정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기고를 하기 위해 통계를 찾아보니 ‘E-나라지표’에는 군 사망통계 아래에 20대 남성의 자살률을 비교해 놓고 있다.

평균적인 자살률보다 군대에서 자살한 사람이 적으니 그냥 그건 당신의 문제라고 말하고 싶은 게다. 하지만 문제가 없다며 군대를 가라고 한 것은 국가다. 이런 사회에서 누가 국가를 신뢰할 수 있을까?

잊고 있던 이런 의문이 다시 떠오른 것은 백신접종 때문이다. 접종을 앞두고 군대에 가기 전 마냥, 막연히 불안하다. 별일 없이 넘어가는 사람이 훨씬 많지만 분명 심각한 부작용을 겪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정부를 믿으라는 말과 달리 보상에 대해서 정부는 지나치게 신중하다. 이 때문에 접종을 하려는 사람들도 불안하고, 피해를 본 이들은 화가 나고, 한쪽에서는 이것을 음모론의 소재로 삼기도 한다.

만약 국가가 백신과 부작용의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못하는 이상,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보상해주고 있다면 사람들이 백신에 대해 이토록 불안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사회의 책임을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국가의 방침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사람들에겐 희생을 강요하고, 협력하지 않는 이들은 이익을 보는 사회구조에서 사람들은 공동체를 점점 신뢰하지 못할 것이다.

질병은 공동체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선진국이 되었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희생에만 기대고 있고, 그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하는 것은 인색하다. 말로만 사람에 대한 존중을 외칠 뿐, 사람을 ‘갈아 넣는’ 사회에서 인간에 대한 존중을 찾아보기 어렵다. 사람의 가치가 낮은 사회,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낮은 사회에서 출생률이 올라가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기대가 아닐까.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일에 대해서는 국가가 확실히 책임져야 할 것이다. 다른 인센티브보다도 훨씬 더 시급한 일이다. 세금은 이런 데 쓰라고 낸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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