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지난 9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퇴장하고 있다. 도쿄|AP연합뉴스
다음달 4일 취임 약 1년 만에 퇴임하는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비난 여론에 속에 총리직을 떠나게 됐다. 아베 신조 전 총리에 이어 지난해 9월16일 취임한 스가 총리는 임기 초반 60%대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코로나19 부실 대응, 장남의 총무성 간부 접대 의혹, 시민들과의 소통 부족 문제 등으로 최근에는 지지율이 20%대까지 추락했다.
스가 총리는 자민당 총재 선거 전날인 지난 28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마지막 기자회견을 열고 재임 1년간의 소회를 밝혔다. 그는 미·일·호주 정상회담 성사 등에 대해 “일본이 걸어야 할 침로를 제시했다”고 자화자찬했다. 일본이 미국의 백신접종률을 제친 사실을 언급하고, 30일부로 일본 전역에서 코로나19 긴급사태와 중점조치를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시민들과 언론의 평가는 차갑다. 나카키타 코지 히토쓰바시대 정치학 교수는 “스가 총리는 관방장관 시절부터 공을 들인 고투 트래블 사업(국내여행 장려 정책)을 지속하고 싶었을 것이다”며 “경제 정책에 중점을 두면서 코로나19 상황을 만만하게 보고 있던 것 같다”고 NHK에 말했다. 스가 총리는 고투 트래블 사업을 아베 내각에 이어 지속했으며, 지난해 10월 적용 대상에 도쿄를 추가했다. 하지만 11월부터 일일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1000명대로 급증하며 역풍을 맞았다.
코로나19 확산 속에서도 스가 총리는 지지율 상승을 노리며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개최도 강행했다. 연기·취소 여론을 무시하고 지난 7월 개막한 올림픽과 다음달 열린 패럴림픽은 무관중 경기로 진행됐다. 일본 선수단이 도쿄 올림픽에서 역대 최다 금메달을 획득하고, 올림픽이 비교적 안전하게 마무리되는 등 일부 성과를 거뒀음에도 스가 총리의 지난 8월 지지율은 20%대로 이전보다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스가 총리가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미리 세워놓은 목표를 달성해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해 민심에서 멀어졌다고 분석했다. 마이니치신문은 29일 “스가 총리는 구체적 목표를 설정하고 성과에 집착하는 ‘각론의 정치’와 ‘흔들림 없는 정치’를 추구했다”고 전했다. 나카키타 교수도 스가 총리가 코로나19 관련 기자회견에서 백신 접종률 등 수치와 관련된 목표 달성률만 언급했을 뿐 ‘위기를 함께 넘기자’는 연대감을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스가 총리의 외교 실적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아사히신문은 사설에서 스가 총리가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해 중국을 한층 더 견제하는 모양새를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스가 총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지난 4월 제일 먼저 백악관을 찾은 정상이었으며, 퇴임 직전인 지난 24일에도 워싱터에서 열린 쿼드 정상회의에 참석해 미·일동맹을 과시했다. 다만 나카키타 교수는 스가 총리가 미국과 동맹을 강화에서 뚜렷한 진전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한국과의 냉랭한 관계는 스가 내각 내내 계속됐다. 스가 총리는 임기 동안 문재인 대통령과 한번도 정상회담을 열지 않았다. 스가 내각은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서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모두 해결됐다’는 기존 일본 입장을 유지했다. A급 전범이 봉안된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바치기도 했다. 다만 아베 정권과는 달리 무역 보복 조치 등으로 한국을 도발하지는 않았다.
관방장관 시절부터 이어온 ‘불통’ 특성도 계속됐다. 스가 총리는 관방장관이던 2019년 기자가 아베 내각의 ‘가케학원 스캔들’에 대해 질문하자 “당신에게 답할 필요는 없다”며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그는 총리 재임 기간에도 자신을 향한 문제 제기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를 두고 ‘염소의 편지’(흰 염소가 검은 염소로부터 받은 편지를 읽지 않고 먹어 치워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일본 시), ‘원숭이 조각’(눈, 입, 귀를 손으로 가린 원숭이 조각)등의 비유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 28일 마지막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야당의 임시 국회 소집 요구를 거부한 이유나 총리직 퇴임 배경 등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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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시스템 디지털화를 추진하고 지난 1일 디지털청을 출범시킨 점은 그의 성과로 꼽힌다. 휴대전화 이동통신 요금 인하,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내용의 에너지 중·장기 계획 마련 등도 스가 내각의 업적이다.
스가 총리는 기자회견 당시 해외에서 ‘1년 만에 총리가 또 바뀌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데 대한 견해를 묻자 “외교적으로 신뢰성, 계속성, 일관성이 중요한데 1년 만에 총리가 바뀌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퇴임 후 계획으로는 중의원 선거 때 자신의 지역구인 가나가와 2구에서 입후보하겠다며 한 명의 국회의원으로서 정치 활동을 계속하겠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