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9월 시민사회에 사실상 전쟁을 선포했다. 3일 간격을 두고 두 차례 기자회견을 열어 원색적 표현을 동원해 시민사회를 비난했다.
서울시 일부 사업을 협동조합·비영리단체 등 민간에 맡기고, 서울시와 이들 사이에서 관리 역할을 하는 ‘중간지원조직’이 있는 구조를 두고 오 시장은 “시민단체의 피라미드, 시민단체형 다단계”라고 말했다. 또 “서울시의 곳간은 시민단체 전용 ATM기로 전락해갔다”라고 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 8월26일 유튜브 계정 ‘서울시장 오세훈TV(현재 오세훈TV로 개명)’에 게시한 사회주택 비판 영상의 제목은 ‘나랏돈으로 분탕질 쳐놓고 스~을쩍 넘어가시려고?’였다. 서울시는 현재 사회주택·마을공동체 등 여러 사업을 두고 대대적 감사를 벌이고 있다.
시민사회 역시 그들이 ‘민관협치 10년’이라고 부르는 시간에 일부 폐단이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 협치의 시든 잎을 골라내야지, 아예 뿌리를 뽑아서는 안된다고 경고하며 오 시장에게 토론을 요구한다. 1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희망제작소’에서 열린 ‘서울시 민관협치 이대로 좋은가’ 긴급좌담회는 그 논쟁의 시작을 알리는 자리였다.
■‘작은 정부+큰 공동체’를 지향한 민관협치
좌담회 참석자들은 우선 이 협치 체제에 대한 오 시장의 시각을 비판했다.
송창석 희망제작소 이사는 “2000년대 들어 유럽·북미 등 세계적으로 행정의 여러 한계와 모순을 어떤 방식으로 개선할지 논의하는 ‘소셜 이노베이션’ 흐름이 나타났다”라며 “영국 보수당 출신 수상 데이비드 캐머런이 2010년 주창한 ‘빅 소사이어티(Big Society)’ 정책의 취지는 정부 실패, 시장 실패의 대안으로서 사회를 부각시킨다는 것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문제를 공동체 스스로 해결한다는 취지 아래 국가 영역을 사회로 이양해 ‘작은 정부’와 ‘큰 공동체’를 기대했다”라고 했다.
송 이사는 “그 틀에서 벌어진 마을공동체·사회적경제·공유경제·도시재생 등 다양한 정책을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도입해 10년 정도를 지내온 것”이라며 “서울시가 선도적으로 해왔던 정책들이 일부는 중앙정부의 정책으로 제도화되기도 했고, 국민의힘의 대표적인 지역 기반인 대구광역시 같은 곳에서도 이런 협치 정책, 사회혁신 정책과 다를 바 없는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정책은 당초 기획하고 추진하면서 문제가 늘 나타나기 마련인데, (현재 오 시장은) 이를 진단하고 평가해서 수정·보완하는 차원이 아니라 기반까지 허물어버리려는 상황”이라고 했다.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장은 “보수·진보를 떠나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사회적 전진과 관련된 기조가 있고, 선출직 대표가 누구냐에 따라 정치적 성향이 달라 그것이 구현되는 방법에 다른 점이 있다는 건 모두가 인정할 것”이라며 “하지만 오 시장은 이 두 가지 문제를 좀 혼동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또 “오 시장은 마을공동체 사업에서 인건비 비중이 절반이 넘는다고 했는데, 저는 ‘절반밖에 안된다’라고 비판하겠다”라며 “사람 간의 관계를 엮는데 인건비가 투입되지 않고 어떻게 할 수 있느냐. 공동체를 만들고 사회적 자본을 확대하는 일에 대한 개념이 헷갈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민이 시장이다’ 내세워 주민자치회 시대로
참석자들은 오 시장이 지난 시정 체제에 대해 간과한 것을 ‘풀뿌리’, ‘참여’, ‘관계망’ 같은 열쇳말로 설명했다.
김 소장은 “한국사회엔 대단히 오랫동안 행정이 ‘탑다운(Top-Down)’으로 내려온 역사가 있었고, 누구나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야기했지만 지방자치가 구체화된 지 30년이 되도록 실제 구현했던 사례가 거의 없었다”라며 “지난 10년 서울시정은 마을공동체 같은 것을 말이 아니라 실행을 통해 검증하고, 그것이 만들어 낼 수 있는 효용성을 주민이 체감하도록 했다”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좌담회 발제문 ‘분기점에 선 협치와 혁신, 그리고 오세훈 시정’에서는 “주민생활의 인접공간에서는 마을공동체 운동, 청년운동, 사회적경제운동, 에너지자립마을, 도시재생 운동 등 공동체 기반 주민참여가 활성화됐다. 그 정점에 주민자치회 전환과 운영이 있다”라며 “주민자치회는 과거처럼 단순히 426개 동의 주민협의모임을 넘어 일정한 예산까지 지원하면서 주민총회를 통해 결정한 사안을 실행할 수 있게 도왔다”라고 했다.
유창복 전 서울시 협치자문관(현 로컬연구소 대표)은 “지난 10년의 핵심 고민은 시민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쉽게 (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라며 “결과적으로 보면 성과를 거뒀는데, 이웃들이 동네에서, 골목에서, 동에서, 구에서, 심지어 서울시의 문제까지 각 단위의 현장에서 이웃들이 만나고 토론하는 관계망이 형성됐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유 전 자문관은 “내 문제가 이웃의 문제가 되고, 이웃의 문제가 동네의 문제가 되면서 공동성에 대한 감각을 깊게 갖는 계기가 됐을 거라 생각한다”라며 “‘시민이 시장이다’란 슬로건으로 등장해서 집행한 지난 시정 10년 동안 공공성, 민주성, 자치성을 동네에서, 골목에서, 이웃과의 일상적 관계에서 싹틔운 게 협치 정책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라고 했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현직 행정가 입장에서 구체적 정책 사례를 열거했다. 문 구청장은 “이미 여야, 진보·보수를 떠나 지역주민들은 협치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라며 “저를 지지하지 않는 분들도 협치 분야에는 아주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자신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데 그것을 왜 마다하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표적 사례로 거주자우선주차구역을 활용한 주차공유서비스를 꼽았다. 협치 과정에서 공유경제 발상을 도입해 시도한 정책이란 것이다.
오 시장이 정면 비판한 사회주택도 혁신 사례로 들었다. 문 구청장은 “서대문구가 해온 것만 봐도 청년주택, 반려동물이 있는 공동체주택, 홀몸 어르신들을 위한 주택 등 성격이 다 다른데 (오 시장처럼) SH(서울주택도시공사)가 일괄적으로 다 할 수 있다고 하는 건 근본적인 성격을 모르는 것”이라며 “서대문구가 산 땅에 포스코가 지은 16가구 셰어하우스(공유주택) 관리를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에 위탁했는데, 그것은 이 청년단체가 청년의 수요를 훨씬 잘 알고 관리를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세훈이 아닌 주민들이 협치를 포기 못해”
서울시공무원노동조합은 지난달 16일 발표한 논평에서 “마땅히 공무원이 해야 할 일들을 협치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붙여 무분별하게 민간에 넘기는 것은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라며 오 시장을 옹호했다. 시민사회가 말하는 협치는 오 시장 개인이 아닌 공무원 조직의 전면적 반발에 부딪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날 참석자들은 전망을 어둡게 보지만은 않았다. 그들이 말하는 협치의 토대가 아직은 탄탄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 구청장은 “진영논리나 정치적 계산에 의해 협치를 부정하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것”이라며 “주민들이 이미 협치의 효능을 굉장히 잘 알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다만 “(시민사회가) 회계 투명성 장치를 제대로 해놓지 않으면 올가미에 걸려들 수 있다”라며 “(지자체가) 민간위탁 업체에 회계감사 비용을 주는 등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한 사회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보강이 좀 더 필요하다”라고 했다.
김 소장은 “‘시민이 시장이다’, ‘현장에 답이 있다’ 이런 것은 사실 정치적인 컬러(색채)에 따라서 바뀔 수 없는 문제”라며 “지난 10년 동안 기존 시장과 달리 뭔가 그랜드한 마크, 상징이 되는 업적이 딱히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어쨌든 3선을 한 것은 작은, 보이지 않는 다양한 시도들을 서울시민이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 전 자문관은 “우리가 10년 동안 했던 게 만만치 않다”라며 “수많은 시민들에게 참여의 경험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했던 혁신주체들이 동네마다 많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