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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아는 문제

입력 2021.10.16 03:00

수정 2021.10.1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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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탐구활동 주제에는 기후변화가 빠지지 않았다. 제목을 적절히 잡아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과제였는데, 교훈적인 내용을 모범답안처럼 써내는 것 이상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과제를 하는 동안 쓰레기로 뒤덮인 푸른 바다, 플라스틱을 먹은 생선, 그것이 밥상에 올라오는 장면들을 목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이미 우리는 기후변화의 무서움을 알았다. 덜 쓰고 아껴 쓰고 버리지 않는 것이 지구를 보호하는 행동이라는 걸 배웠다. 그러니 우리에게 환경이란 얼마나 진부한 주제인지.

최정애 전남대 교수·소설가

최정애 전남대 교수·소설가

그 시절 우리가 우려했던 것처럼 요즘 날씨는 계절을 잊은 지 오래다. 어제는 에어컨을 틀었고 오늘은 히터를 튼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코로나19 확산 이후에 상황이 부쩍 심각해지고 있다는 걸 알지만, 눈앞에 놓인 문제가 시급하니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 싶다. 혹시라도 감염의 위험에 노출될까 일회용 마스크를 수시로 바꾸면서, 배달 주문한 음식 포장용기가 쌓여가는 것을 보면서 죄책감이 이는 건 물론이다. 거리 두기를 위해 자동차로 이동하며 주변에 얼마나 차가 많아졌는지 깨달으면 새삼 놀라고, 환기가 중요하다는 말에 냉방 중인 버스 유리창을 열어젖히며 환경에 해가 되는 것 아닌가 걱정한다. 개인 컵을 권장하던 카페에서는 감염 위험성을 이유로 머그컵을 받지 않기 시작한 지 오래다.

우리는 시국을 핑계로 양심을 보류하는 중인 걸까. 사실 우리에게 그런 종류의 양심은 차고 넘친다.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상승하는 해수면, 불을 뿜어내는 숲과 산, 폭우나 홍수에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을 수시로 목격하며 우리의 공포는 연일 되풀이되고 있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마다 이 상황이 얼마나 끔찍한지 이야기되곤 한다. 다시 말해 이 문제가 엄중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것, 그것이 진짜 문제다.

9월 말 독일에서는 총선이 열렸다. 앙겔라 메르켈이 16년 만에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는 선거였으므로 누가 다음 총리가 될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막상 출구 조사에서 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다음 총리를 배출할 정당이 아니라 3위 정당이었다. 상반기에 그야말로 돌풍을 일으키며 정당 지지율 1위 자리까지 올랐던 녹색당이 주인공이다. 1980년 창당 이래 70석 이상 얻은 적이 없었던 녹색당은 이번 선거에서 118석을 얻고 원내 3당 자리에 올랐다. 녹색당 지지율 상승만큼 주목할 만한 것은 기존 정당의 지지율 하락이었다. 기민·기사연합과 사민당은 거대정당으로서 명목을 겨우 유지할 정도의 성적표를 받았고, 독일에서는 역사상 최초로 3당 연립 정부가 탄생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녹색당 지지의 선두에는 메르켈의 임기 동안 성장해 이제 막 유권자가 된 세대가 포진되어 있다. 이번 선거에서만 두드러진 점이 아니다. 이미 201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30대 이하 유권자들에게는 녹색당 지지율이 30%로 가장 높았다. 돌아보면 거대 정당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기후변화 문제를 짚었다. 다만 눈앞에 산적한 다른 문제들이 더 급하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코로나19, 치솟는 주택 가격, 불평등, 연금, 그 밖에도 사회 안정을 위협하는 수많은 변수들이 실재하고 있기도 했다. 그러니 젊은 유권자들의 녹색당 지지율은 기후변화가 이 시대 최우선 과제라는 것을 알리는 신호이자 경고다.

이것이 4년 전 총선에서 ‘독일을 위한 대안’이 3위에 올랐을 때와 다른 점이다. 당시에는 불법 난민 이슈가 독일 사회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무분별한 난민 유입을 강력히 반대하던 포퓰리즘 정당 대안당은 12.6%의 지지율을 얻으며 연방의회 입성에 성공했다. 지역에 따라서는 30%에 가까운 지지율을 보인 곳도 있었다. 많은 이들이 독일마저 극우화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그래서 이번 총선 결과가 주는 충격은 신선하다. 전 세계의 어른들이 이념의 논리에 빠져 허둥대는 동안, 메르켈 세대는 당신들이 걱정하는 문제는 진짜 문제가 아니라고 꾸짖는 중이다. 피부로 느끼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 그것은 선거의 순기능이다. 흐름에 쓸려가지 않고 문제의 경중을 따져 묻는 능동적인 정치 참여자가 되는 방법이다.

우리도 한발 물러나 우선순위로 삼아야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해보자. 결국 이것은 생존의 문제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한 번 더 생각해야 하고, 조금 더 귀찮을 뿐이다. 우리는 이미 수차례 경고를 받았다. 이 문제들이 진부하다고 느낄 시간조차 사치인 순간이 찾아오기 전에, 우리가 직접 나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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