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창작을 내려놓고 부려놓은 고백들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닫기

보기 설정

닫기

글자 크기

컬러 모드

컬러 모드

닫기

본문 요약

닫기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닫기

창작을 내려놓고 부려놓은 고백들

[책과 삶]창작을 내려놓고 부려놓은 고백들

일기
황정은 지음
창비 | 204쪽 | 1만4000원

호수공원이 내려다보이는 파주 어딘가에서 동거인과 기거하며 4월엔 토요일마다 목포행 열차에 몸을 싣는 여자 사람. ‘일기’는 소설가이기 이전에 그냥 시민1, 행인1, 독자1로 살며, 살아가며 써 내려간 황정은의 첫 산문집이다.

코로나는 누구에게나 그렇듯 그에게도 비자발적 은둔을 선물했다. 선이 아닌 점이 돼버린 일상. 다행히 새로 얻은 집 주변에 공원이 있었고, 디스크 환자이기도 한 그는 일부러 먼 길을 택해 걷고 또 걸었다. 원고료와 인세 수입보다 중한 건 ‘정좌를 유지할 수 있는 근력’이라 말하는 그는 운동을 이렇게 권한다. “운동을 하고 아픈 것이 운동하지 않고 아픈 것보다는 개운하게 아프거든요.”

창작의 무게를 내려놓고 편하게 썼다지만 글 곳곳에선 고백의 무게도 만만치 않았음이 읽힌다. 자신들의 불행을 주입했던 부모, 성적 호기심을 채우려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준 사촌오빠. 피붙이라는 이유로 감내해야 했던 고통들에게 그는 안녕을 고한다. “ ‘내 잘못이 아니란 걸 알았다면.’ 어떤 사람들에겐 결코 심상할 수 없고 평범할 수 없으며 지나가는 말이 될 수 없는 말. 그 말을 읽은 덕분에 나는 이 글을 썼다. 그리고 굳이 이 말을 하고 싶어서. 그 수치심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아니라고.”

목포행은 세월호 참사 이후 생긴 습관이다. 그곳에서 먹고 자는 것으로 ‘기억’하고 또 기억한다.

한낮의 햇빛을 피해 창 안쪽에 앉아 그는 생각한다. ‘30년 전의 나는 이날 오후를 몰랐고, 이런 마음을 몰랐고, 이들이 내 삶에 도래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여기서 이들은 그의 조카를 비롯한 소중한 사람들이다. 구름 뒤엔 햇살이 있다. 그래서 미래가 궁금하지 않아도 내일이 살고 싶어지는 게 아닐까.

  • AD
  • AD
  • AD
닫기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