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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와 ‘한 걸음만 더’

입력 2021.10.23 03:00

점심 먹고 산책하던 중이었다. 옆에 있던 동료가 비명을 질렀다. 새 한 마리가 동료 머리에 똥을 싸고 날아간 것이다. 생애 첫 새똥을 맞아 넋이 나간 동료를 위로하며 편의점에서 급하게 산 물티슈로 맞은 부위를 닦아주었다. 이 사실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알리니 ‘복권을 사라’는 댓글들이 달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웃었지만 이미 1등 당첨되면 뭘 할 것인지 상상하며 복권을 사고 있었다. 새똥은 동료가 맞았지만 그걸 닦아주는 선행을 했으니 기대해볼 만하지 않은가!

오수경 자유기고가

오수경 자유기고가

복권을 산 다음날 누리호가 시험 발사됐다. 사무실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심드렁하게 누리호 발사 장면을 보다가 거대한 물체가 하늘로 발사되는 순간, 내 마음도 두둥실 솟아올랐다. 그게 어디로 향하는지 감히 가늠할 수 없지만, 누리호가 뻗어가는 만큼 지상에 단단히 묶였던 상상력이, 세상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 같아 가슴이 웅장해졌다. “우주에 가까이 다가간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누리호가 치솟던 그 순간만큼은 나도 우주에 다가간 것만 같았다.

결국 누리호는 성공 확률 30%를 뚫지 못한 채 본 궤도에는 진입하지 못했다. 드라마틱한 장면을 상상하며 완벽한 성공을 원했던 입장에서는 조금 아쉬웠지만, 과학의 성취가 성공과 실패로만 나뉠 수는 없는 일이기도 하고, 10년 넘게 국내 기술진의 노력이 투입되어 처음 시도한 결과로써는 성공적이다. “이제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된다”는 문 대통령의 말처럼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주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 불가능한 게 아님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도전이었다. 상상만 하던 일을 현실로 만든 이들에게 감사하다.

누리호가 발사되는 걸 중계하는 유튜브에는 소원을 비는 댓글들이 빛의 속도로 올라왔다. 언제부터인가 역사적 장면이 담긴 게시물에는 소원 댓글을 다는 풍습이 생겼다. 요즘 시대 인터넷 ‘놀이 문화(밈)’인 셈이다. 상상하던 우주의 실체에 조금 더 다가간 미래적 순간과 ‘소원 빌기’라는 전통적 풍습이 어우러진 풍경이라니. 한껏 들뜬 마음에 나도 소원을 빌어보았다.

“누리호가 솟아오른 걸 보니 ‘국뽕’이 차오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우주선도 만들어 발사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선진국에 모두에게 꼭 필요한 차별금지법이 없는 게 참 부끄럽습니다. ‘세상’이란 뜻을 가진 누리호가 우주라는 미래의 세상으로 뻗어나가듯, 우리 사회도 미래를 향해 길을 내고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누구든 공감할 것입니다. 그 첫걸음이 차별금지법 제정입니다. 누리호 1차 발사가 온전한 성공에 한 걸음 더 다가선 것처럼, 차별금지법도 ‘국민 청원’이라는 1차 발사 과정을 거쳐 ‘국회 발의’라는 미완의 성공을 거두고 이제는 ‘제정’이라는 온전한 성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누리호는 아직 우주에 갈 준비가 안 된 것 같고, 누리호 발사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도 않았지만,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와 사회적 공감대는 이미 우주에 닿을 정도로 차고 넘칩니다. 지금까지 ‘나중에’로 미뤄왔지만 이제는 ‘한 걸음만 더’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정부와 국회가 이 한 걸음을 내딛게 해 주세요. 제 복권은 당첨되지 않아도 좋으니 차별금지법은 꼭 제정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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