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오늘부터 무해하게' 구민정PD 인터뷰
KBS 신규 예능 ‘오늘부터 무해하게’의 스토리는 언뜻 보면 단순하다. 에너지 자립 섬 죽도에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캠핑하기. 그런데 흔적을 안 남기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흔적’이 그냥 쓰레기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배우 공효진과 이천희, 전혜진은 일주일 간 ‘탄소 제로’를 지향하는 캠핑을 한다. 미처 집에서 가져오지 못한 용품을 빌리거나 사려면 방송 내 화폐인 ‘그루’를 내야 하는데,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이 많은 물건일 수록 많은 그루를 지불해야 한다. 물 한 방울을 쓰는데도, 호미 한 자루를 빌리는데도 그루가 든다. 결국 ‘그루’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탄소가 일상에서 얼마나 많이 소비되는지를 보여주는 효과적인 장치인 셈이다. 그루를 많이 쓰면 캠핑 마지막에 심을 수 있는 나무의 수가 줄어든다. 출연진들은 고구마 하나를 구워 먹으려 하다가도 장작을 태우는게 탄소를 배출하는게 아닌지 고민하고, 방송에서 환경 이야기를 하는 자신의 모습이 대중들에게 자칫 위선적으로 비치지 않을까 걱정한다.
이 ‘예능’은 첫 회부터 최근 전세계가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기후로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그래서 도대체 탄소가 무엇인지를 애니메이션과 각종 그래픽을 동원해 차근차근 전달한다. 방송 내내 ‘탄소’ 이야기를 하는 이 ‘낯선 예능’은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을까. 프로그램을 기획·연출한 KBS 구민정 PD를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인터뷰했다. 다음은 구PD와의 일문일답.
-‘기후변화 예능’은 어떻게 기획되었나
“처음 환경과 관련된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던건 정말 공효진씨 덕이에요. 작년에 공효진씨한테 ‘캠핑 예능’을 먼저 제안을 했어요. 그때 캠핑도 좋지만, 환경과 관련한 내용이 들어가면 좋겠다고 하셨죠. 전 그땐 환경에 대해 잘 몰랐거든요. 조금 가볍게 녹이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불발이 됐죠. 그런데 ‘환경’이라는 키워드에 스위치가 한 번 켜지니까 계속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주식에서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대세이고, 뉴스에서도, 다큐멘터리에서도 계속 ‘지구가 망가지고 있다’고 하니까. 이걸 예능으로 좀 풀어봐도 좋겠다, 생각한거죠. 그래서 공효진씨한테 아예 환경, 탄소를 주제로 다시 제안을 했어요. 그렇게 시작이 됐죠.”
-‘재미’가 중요한 예능에서 어려운 선택이었을 것 같다
“맞아요. 사실 환경 운동이 금연 운동이랑 좀 비슷하잖아요. 해야 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만, 막상 누가 옆에서 ‘너, 이렇게 해야돼’ 라고 하면 사실 그렇게 유쾌하진 않아요. 그 고민이 제일 많이 됐어요. 계몽적이면 사람들이 불편해할 텐데, 어떻게 풀어야 할까. 조금 트랜디하게 만들어 사람들이 ‘따라하고 싶게끔’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그래서 ‘워너비 아이콘’이자 정말 환경에 관심이 많은 공효진씨를 섭외 1순위에 두고 계속 프로그램을 기획했어요.”
-프로그램 ‘기획자’에 공효진씨 이름이 올라가 있다
“그렇죠. 제가 일 한지 이제 10년 정도 됐는데, 기획 단계에서부터 출연자랑 이렇게 긴밀하게 이야기를 하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웃음) 공효진씨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3시간 동안 열변을 토했어요. 환경에 대해 저보다 잘 알고, 아이디어도 많아서 이런 부분은 이렇게 합치고, 나누자 같은 제안을 많이 주셨죠. 그래서 지금의 프로그램이 됐어요. ‘환경에 진심’인 이 분의 열정을 프로그램 안에서 잘 담아내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방송 제작 과정 자체가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활동인데
“방송 촬영 때 스태프만 수십명이거든요. 그들이 배출하는 생활 쓰레기에 대한 고민이 있었죠. 일단 스태프 수를 최대한 줄였어요. 보통 이 정도 촬영 규모면 촬영 스텝이 80~100명 정도는 되거든요. 저희는 일단 인원을 절반 정도로 줄였죠.”
-촬영장에선 어떤 쓰레기가 가장 많이 나오나
“플라스틱 생수병. 이번엔 안 쓰려고 정수기를 렌탈했어요. 모두 텀블러를 사용했죠. 문제는 당연히 가을일 거라고 생각하고 촬영 일정을 9월 둘째주로 잡았는데, 생각보다 너무나 더운거예요. 이게 다 기후변화 때문인데…(웃음). 여름 촬영장에선 아이스박스에 생수병 얼려놓고 일을 하는데, 이번에는 그걸 못 해서 다들 힘들었죠. 조명 감독님은 ‘전기 사용량’ 자체를 줄였어요. 태양열 위주로 쓰고, 고효율 제품을 사용해서 보통 방송에서 쓰는 전기의 절반 밖에 안 썼어요. 원래 같으면 ‘밥차’ 불러서 일회용 식기 쓰고 버렸을텐데, 이번엔 식당을 빌려서 다 식판쓰고 설거지했죠. 스태프들이 쓴 쓰레기도 당연히 그대로 다 들고 나왔고요.”
-그런 것들이 보통의 다른 현장에서도 가능할까
“하려고 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더 큰 규모의 촬영장은 상황이 다르니까 강요할 순 없어요. 그런데 촬영장 쓰레기는 정말 어마어마하거든요. 생수를 다 마시지 못하고 버리는 경우도 많아요. 빠르게 이동하면서 촬영해야 하는데 무겁고, 보관하기도 어려우니까.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소품도 많고요. 그걸 보면 제작진들도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루’ 라는 장치를 집어넣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일단 예능이니까 출연자들이 어떤 ‘목표’를 갖고 달려가야 할 장치가 하나 필요했어요. 쓴 만큼 줄여야 하는 플러스 마이너스의 개념에서, ‘만원의 행복’을 떠올렸어요. 정해진 총량 안에서 쓰는 것. 그 총량을 돈이 아닌 ‘나무’로 한 거죠.”
-‘그루 설명서’도 그냥 종이가 아닌 것 같더라. 소품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다
“설명서는 폐비닐을 재활용한 거예요. 방송에 나온 폐자재도 마을에서 주워 모으거나 방송국에서 실제 버리는 걸 썼죠. 프린트 하면 그것도 쓰레기니까, 물건 이름표도 마스킹 테이프 위에 직접 손글씨로 썼죠. 방송할 때 스케치북에 글씨를 써서 드는데, 그것도 재활용 스케치북을 썼죠. 방송에 다 잡히진 않지만, ‘그린워싱’(겉으로는 친환경을 표방하면서도 실상은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행위)처럼 되진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제로웨이스트 가게에 가서 참고도 많이 했죠.”
-‘탄소 배출량’을 자세하게 계산한 것이 눈에 띄었다
“정말 그것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어요. 일단 탄소 배출량을 나무로 환산해야겠다는 전제가 있었는데, 어떤 물건 생산이나 행동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 계산이 쉽지 않더라고요. 이를테면 ‘톱’은 쇠로만 구성된게 아니라 손잡이는 나무나 플라스틱으로 되어있죠. 그럼 물질별로 다 가중치를 뒀어요. 예컨대 쇠의 가중치가 60, 플라스틱은 40, 이런 식으로요.”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은 건가
“방송 나가기 전에 자문을 받아서 내고 있어요. 예컨대 육류의 탄소 배출량이 항공기나 선박보다 많다고 하지만, 육류는 전 생애를 주기로 계산하는거고, 항공같은 이동수단은 1년 단위로 계산되는 것처럼 기준이 달라서 단순 비교가 어려운 것도 있었어요.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끝이 없었어요.”
-다양한 분야에서 기후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게 왜 중요할까
“관심을 갖고 공부하다 보니, 이 모든게 사실 너무 심각한거예요. 지구가 망가져가는게 보이니까. 오히려 젊은 친구들이 더 환경에 관심도 많고, 제로웨이스트샵 같은데서 가치소비를 해요. 한 번은 다뤄야 하는 이슈이기도 하고, 이런 변화하는 상황을 방송으로 담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예능으로 한 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방송을 보고 한 번 따라해봤으면 좋겠다, 그런 영향을 끼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오늘 무해’를 본 분들이 어떤 생각을 했으면 하나
“‘나도 한 번 해볼까’. 텀블러랑 다회용기 쓰는게 어려운 건 아니지만, 잘 안 하게 되는거죠. 방송에서 그런 것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면서, 흔적 없이 머물다 가는 아웃도어 라이프를 보여주면 한 번쯤 따라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