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노예 사건’ 수사...누구에게 맡겨야 할까

반기웅 기자
2014년 외딴섬에서 구출된 염전 노동자/ 연합뉴스

2014년 외딴섬에서 구출된 염전 노동자/ 연합뉴스

이른바 ‘제2의 염전노예’ 의혹이 제기된 사건 수사의 관할을 두고 인권단체와 경찰 간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염전 사업장 소재지(전남 신안군)를 관할하는 전남지방경찰청은 ㄱ씨(53·경계선 지능) 등에게 업무를 지시한 염전의 사업주 ㄴ씨(48)를 사기 혐의 등으로 입건해 수사를 벌이고 있지만 인권단체는 경찰청이 직접 수사해야 한다며 맞서 있다. 전남지역 경찰의 수사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신안...“지역 경찰 못 믿는다”

인권단체는 2014년 신안염전노예 사건 당시 관할 경찰이 사건을 축소·은폐하는 데 급급했다고 주장한다. 당시 노동력 착취와 감금·폭행을 당한 피해자들은 관할 경찰이 피해를 방관했다며 전남경찰청 등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2019년 4월 승소했다. 이 과정에서 염전노예사건 발생 이후 경찰(신의파출소·목포경찰서)이 염전종사원 신상면담부 등 문서를 폐기한 사실이 확인됐다. 경찰청 내부망에 등록된 염전 종사원에 대한 신상 면담 기록도 삭제됐다. 당시 인권단체는 목포경찰서에서 1년에 2~3차례씩 염전 노동자의 피해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일제단속을 벌이고도 수십명의 인권침해사실을 발견하지 못한 이유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8일 장애우권인문제연구소, 공익법센터 어필 등 인권단체들이 염전노예 인신매매 사건에 대한 경찰청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반기웅 기자

28일 장애우권인문제연구소, 공익법센터 어필 등 인권단체들이 염전노예 인신매매 사건에 대한 경찰청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반기웅 기자

당시 경찰은 염전 사업장 등에 대해 합동·수시점검을 통해 인권침해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후속 조치를 취했다고 했지만 염전노예 의혹 사건이 7년 뒤 같은 지역에서 재발했다. 인권단체는 이 사건을 대하는 지역 당국과 경찰의 태도가 이번에도 비상식적이라고 주장한다. ㄱ씨는 지난 6월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했는데 진정을 접수한 광주지방고용노동청 목포지청은 피해자도 조사하지 않고 합의를 유도했고, 합의금 400만원에 사건을 종결했다. 추가 피해가 의심되는 상황임에도 경찰 수사와 연계하는 조치도 없었다.

■ “지자체·노동청·경찰 유착” VS “지역 잘 아는 경찰이 수사해야”

신안군의 대응도 석연치 않았다. 지난 7월 군은 염전 노동자 등을 상대로 장애인인권침해 전수조사를 벌였다. 1차 조사결과 조사대상 415명 중 7명이 인권침해 의심 사례로 조사됐는데, 군은 2차 조사 이후 ‘불법 고용·폭행 등 인권침해 미발견’으로 결론내렸다. 최갑인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변호사는 31일 “지역을 잘 아는 것이 사건 처리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공정한 수사에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며 “또 같은 지역에서 사건이 발생한만큼 더 이상 지역경찰을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인권단체 주장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정해진 사무분장 규칙에 따라 관할 경찰에 사건을 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범죄 발생 지역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관할을 정하는 방침에 따라 해당 지역 경찰이 맡는 게 순리라는 것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관할 시도청에 있는 수사관이 다 유착돼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라며 “지역 경찰이 사건을 맡더라도 중요 사건은 국가수사본부에서 모두 보고받고 지휘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우려할 만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 효율성 측면에서도 관할 경찰이 사건을 맡아야 한다는 게 경찰 입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본청 수사 요구는 수시로 들어오지만 수사는 사건과 지역에 전문화된 수사팀에서 맡는 것이 효율적”이라며 “지역 지리조차 모르는 본청 수사관들이 현지 정보도 없이 수사를 맡았다가는 동선 추적부터 막힐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수사를 망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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