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국가들도 대사 추방 명령
레바논 대통령 직접 진화 나서
레바논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예멘 내전 개입을 비판한 한 장관의 발언을 계기로 사우디로부터 혹독한 보복 조치를 겪게 됐다.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 아랍국가들은 레바논과 교역을 단절하거나, 자국 주재 레바논 대사를 추방하는 초강수를 예고했다.
사우디 정부는 29일(현지시간) 자국 주재 레바논 대사에게 48시간 이내에 떠나라고 통보하고 레바논산 물품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고 국영 SPA통신이 보도했다.
사우디에 이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쿠웨이트, 바레인 등 걸프 아랍국가들도 이튿날 자국 주재 레바논 대사 추방을 명령하거나 레바논에 있는 자국 외교단을 소환했다. 일부는 레바논 여행 금지를 권고했다.
이번 갈등은 레바논 장관이 사우디의 예멘 내전 개입을 비판하면서 촉발했다. 조지 코르다히 레바논 정보장관은 지난 25일자 한 방송 인터뷰에서 “예멘의 후티 반군은 외부 침략에 맞서 싸우고 있다”면서 “사우디 연합군으로 인해 예멘 사람들의 터전과 마을이 파괴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라비아반도 남서부의 예멘에서는 각각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의 맹주인 사우디와 이란이 대리전을 펴고 있다. 수니파 맹주 사우디는 이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을 거쳐 자국과 국경을 맞댄 예멘에까지 ‘시아파 벨트’의 영향력이 확장할 것을 경계해 2015년 예멘 공습을 단행했다.
이에 이란이 후티 반군을 지원하면서 내전은 6년 넘게 이어져 400만명 넘는 예멘인들이 집을 잃고 뿔뿔이 흩어졌다.
이번에 ‘문제의 발언’을 한 코르다히 장관은 레바논의 시아파 정당인 헤즈볼라의 지원을 받아 입각한 기독교계 인사다.
논란이 커지자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은 30일 “사우디를 비롯한 이웃 국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서 진화에 나섰다. 코르다히 장관은 “이번 TV 인터뷰는 내가 장관직에 임명되기 한 달 전에 녹음됐다”고 해명했으나 사퇴는 거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가 레바논 내각 인사와 갈등을 빚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5월에는 샤르벨 와흐비 레바논 외무장관이 TV 토론에서 이슬람국가(IS)가 국제적 테러단체로 부상한 배경에는 걸프국가들의 테러단체 지원이 있었다고 암시하는 발언을 한 뒤 사임했다.
사우디가 교역을 단절하면 레바논의 경제위기가 가중될 수 있다. 레바논은 농산물 수출의 55.4%를 사우디와 걸프 아랍국가들에 의존하고 있다. 사우디 매체 아랍뉴스는 이번 제재로 레바논은 하루에 25만달러(약 2억9000만원)씩 손실을 보게 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