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는데 식당 주인이 대뜸 물었다. “그 깃발 동성애 그런 거예요?” 말이 좀 그렇거니와 말투도 서걱서걱했다. 살짝 긴장을 했다. “네. 저희는 차별금지법 제정하라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걷고 있어요.” 일부러 또박또박 대답했다. “저 예전에 호주에서 그 깃발 본 적 있어요.” 아… 긴장이 무색해졌다. 길 건너편에서 큰소리로 묻는 분도 있었다. “타이완? 타이완에서 왔어요?” 대만의 동성혼 합법화 뉴스를 기억했던 걸까. 무지개 깃발을 보며 먼 나라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 혐오의 가장 큰 효과는, 눈앞에 보이는 누군가를 반대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눈앞에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서로를 보기가 어렵다. 열댓 명 정도 행진을 하던 어느 날, 지역의 성소수자 활동가가 중간에 합류했다. “와, 이렇게 많은 사람이 걸을 줄 몰랐어요. 너무 좋네요.” 해맑게 웃는 그의 표정 앞에서 나는 무안했고 조금 슬펐다. 반가움의 크기에 비례할 외로움의 시간은 차마 다 짐작할 수 없었다. 또 다른 이는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찾아왔다. “이런 데 처음이에요.” 30일 도보행진은 나도 처음이라고, 힘들다고 투덜대며 웃었다. “차별금지법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반대하는 집단이 우악스러울 뿐 많은 건 아니라고,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설명을 들으면 꼭 필요한 법이라며 모두 응원을 한다고. “정말요?” 반신반의하는 그를 위해서였을까, 지나가던 트럭 한 대가 우리 곁에 서더니 음료수 한 상자가 쑥 나왔다. 그의 눈이 동그래지며 번지는 미소를 보았다.
도보행진을 한다니 몇몇 지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고생스러울 텐데, 좀 뻔하다는 생각도 들더라.”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나선 길이니 그 말이 틀리지도 않다. 그래도,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말보다 뻔하기야 할까. 뻔하지 않은 것은 따로 있다. 차별금지법도 만들지 않는 정치인들이 개혁이나 진보를 자처한다는 사실이다. 뻔하지 않고, 뻔뻔하다. ‘논란이 많다’ ‘토론이 필요하다’면서 이리저리 피하기만 한다. 바로 말하자. 14년째 법안 토론 한 번 하지 않은 국회가, 차별금지법 아닌 성소수자를 논란거리로 만들며 혐오의 한가운데로 몰아넣었다. 신앙이든, 신념이든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면 사회가 그걸 따라가야 하나? 대형 교회와의 합의를 ‘사회적 합의’로 바꿔 부르는 일을 멈춰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걷던 날이었다. 똑같은 남색 조끼에 앙증맞은 무지개 깃발을 손에 든 모습이 어색하면서도 고왔다. “그런데 이 깃발은 뜻이 뭐예요?”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어떤 정체성에 자긍심을 갖게 되기까지의 용기와 도전을 뜻한다는 점에서 당신의 깃발이기도 하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었다. 모두에게 그런 시간들이 있다. “내가 공부 못해서 이렇게 산다”고 푸념하던 이가, “내가 여자라서 그러냐” 되묻다 지친 이가, 세상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긴 시간. 그리고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어떤 순간. 누구든 그런 순간에 축하받을 수 있어야 한다. ‘네가 잘못’이라고 말하는 세상에 누구도 혼자 남겨두지 않겠다는 약속, 차별금지법 제정이 다시 해를 넘겨야 할 이유가 없다.
엊그제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이 버스를 대절해 찾아왔다. 나눠줄 무지개 깃발이 부족할까 걱정했더니 같이 걷는 이종걸은 걱정 말라 했다. “그게 제일 소중한 사람들이니까.” 역시나 다들 들고 왔다. 모두에게 소중한 것을, 가장 소중하게 지키는 사람들. 우리는 오늘도 무지개 깃발 휘날리며 평등길을 걷는다. 당신도 함께 걷는다면,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너무 큰 용기를 요구하지 않는 세상이 조금 더 가까워질 것이다. 깃발처럼 오시라. 깃발처럼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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