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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네가 아는 그 맛’의 무서움

입력 2021.11.03 18:18

수정 2021.11.03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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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한끼’는 음식, 밥상, 먹는 일에 관해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코너입니다.

‘아는 맛’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관점이 존재한다. “어차피 아는 맛, 뭐하러 더 먹냐” 대 “아는 맛이 더 무섭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앞의 말은 2000년대 ‘다이어트의 화신’으로 불리는 연예인들이, 뒷 말은 2010년대 중후반 ‘먹방’ 바람과 함께 인기를 얻은, 덩치 큰 연예인들이 주로 하던 말이었다.

아는 맛에 대한 두 관점 중 후자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할 듯싶다. “이게 맛있는 걸 아는데 어떻게 참을 수가 있느냐”는 자기변호의 논거가 될 수도 있지만, “음식의 배경을 알고 먹을 때 느끼는 즐거움이 더 크다”로도 쓰일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요일에 여는 미식회나, 나이 지긋한 연예인이 한국인의 밥상을 찾아다니거나, 걸어서 세계속으로 가서 음식 먹는 TV프로그램 같은 걸 찾는 게 아닐까. ‘맛있는 녀석들’로 불린 개그맨들은 어쩌면 중의적인 ‘아는 맛’의 묘미를 잘 살린 덕분에 인기를 얻었다. 아는 맛은 맛에 대한 경험으로도, 맛에 대한 지식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오향장육, 픽사베이 이미지

오향장육, 픽사베이 이미지

식탐이 강해서 남이 먹는 걸 보면서 만족감을 느낀다는 사람들을 이해 못 했다. 요요로 끝나버린 생애 가장 혹독했던 다이어트 때도 먹방을 보면 대리만족을 못 느끼고 ‘먹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을 정도니까. 대신 쿡방을 틈틈이 보면서 음식이나 요리에 대한 잡다한 지식을 얻는게 좋았다. 음식점에 가서 직원의 설명을 듣거나, 눈 앞에 어디선가 배경설명을 들었던 음식이 나타난다면 식사의 즐거움은 배가 되곤 했다.

어느 날 점심을 먹으러 간 주소지를 찾아보니 주상복합건물 지하에 있는 중식당이었다. 모임의 ‘호스트’와는 그날 처음 보는 것이었으므로 식당에 얽힌 이야기는 사전에 알 턱이 없었다. 직장인들이 바글바글했지만, 그냥 직장인들 많은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 같았지 내가 ‘맛집에 왔겠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마침 전날 저녁에 ‘과음’을 한 상태라 메뉴가 뭐든 해장이나 좀 했으면 하는 마음이 너무 컸다. 짬뽕 국물이 간절했다.

짬뽕은 먹지 못했다. 요리 후 나온 식사도 일괄적으로 ‘볶음밥’이었다. 게다가 맥주까지 두어잔 들이켰다. 그런데도 숙취가 확 깼다. 정말로 오랜만에 번뜩이는 맛을 느낀 덕이었다. “이 곳은 화상(華商)이 하던 가게로, 자장면을 팔지 않는다. 원래 장사하던 곳이 개발하면서 여기로 자리를 옮겼다.” 호스트의 설명은 ‘주상복합 식당가 지하’라는 위치에서 생기는 의구심을 한 꺼풀 벗겨줬다. 그러나 ‘백문이 불여일미’. 결국 음식의 맛이 별로였다면 이렇게 호들갑 떨면서 글을 쓸 이유가 없다.

‘오향장육’이 등장했다. 간장 베이스의 양념에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장시간 졸여서 만든 음식이란 건 알았는데, 홍고추와 풋고추, 마늘, 오향장육을 졸인 국물을 식혀 낸 ‘짠슬’(졸인 국물에 돼지껍데기나 젤라틴을 넣고 식혀 굳힌 것이다.) 그리고 ‘고수’를 넣어서 먹는다는 건 그날 처음 알았다. 호스트는 한마디 거들었다. “다섯가지 재료에서 향을 즐기라고 ‘오향장육’이라는군요.”

사실 이 설명은 정확한 정보는 아닌 것으로 안다. 오향장육의 양념에는 ‘팔각, 정향, 계피, 회향, 초피’ 같은, 쌀국수나 마라탕에 들어가는 다섯 가지 향신료, 즉 오향(五香)이 들어간다고 한다. 이런 것들을 갈아서 ‘오향분’이라는 형태로 판매하는 제품도 있다. 하지만 호스트의 설명을 듣고 나니 눈앞의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설명대로 한 입 먹어보는 건 ‘인지상정’. 그리고 눈이, ‘탁’ 뜨였다.

고수, 언스플래시 이미지

고수, 언스플래시 이미지

맛의 ‘키’는 한국인 다수가 좋아하는 고추와 마늘이 한국인 다수가 싫어하는 고수와 어울리면서 부리는 오묘한 조화였다. 사실 몇 달 전에 ‘고수에 눈을 떴노라’고 글을 쓰긴 했는데, 후에도 ‘내가 정말 고수에 눈을 뜬 게 맞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고수의 강렬한 향이 입안에 톡 터지다가 조용히 사라지면서 입안에 산뜻함만 남겼을 때 ‘비로소 고수에 적응했구나’라는 안도감과 ‘좋은 설명은 맛의 새로운 경지를 열기도 하는구나’하는 기쁨이 동시에 들었다. ‘오향’에 고수가 포함됐다는 설명이 부정확하다고 하더라도, 그 설명 덕에 거리낌없이 고수를 고기에 얹어 맛볼 수 있었을테니.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고수 이파리 여럿을 한젓가락 집어 앞접시에 가져다 놓고 있었다.

그리고 느꼈다. 아는 맛은, 그게 경험이든 지식이든, 무섭구나. 그래서 언제든 기꺼이 아는 맛을 받아들일 생각이다. 다이어트할 때만 빼고.

샛강육수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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