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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감정

입력 2021.11.06 03:00

수정 2021.11.0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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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차장, 편의점, 미용실. 우리 주위 많은 곳에 일하는 청소년이 있다. 우리들은 택배 배달 알림음을 깜박 놓치고 1초 만에 배달 완료 문자를 삭제하듯이 일하는 청소년들의 존재를 잊는다. 그들은 급여를 착취당하기도 하고 가족 내의 환자를 돌보면서 급여와 무관한 곳에서 일하기도 한다. 저숙련 노동자로서 재해의 위험에 방치되지만 실습이 끝나면 위험은 없는 일처럼 지워진다. 보호자와 고리가 끊어졌다는 것을 간파한 이들에게 폭력이나 성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 한 청소년이 또 노동 중에 목숨을 잃었다. 지난 10월 전교조 광주지부는 요트관광 업체에서 잠수 작업 도중 숨진 고교생 홍정운군을 추모하며 특성화고 현장실습 폐지를 촉구했다.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아동문학평론가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아동문학평론가

청소년은 돌봄을 받는 존재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건 누군가에게는 환상이다. 어떤 청소년은 다른 사람을 돌보는 중이다. 그가 받은 임금이 정당한지, 부당노동행위는 없는지 살피는 일은 뒷전으로 밀린다. 정당한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일하는 청소년들은 대부분 같은 처지다. 그들의 노동을 더해야만 운영되는 사회는 그들의 고통을 빼기로 바꾸고 모른 척한다. 억울한 죽음마저도 기억에서 쉽게 빼내어 지워버린다.

김해원의 청소년소설 <나는 무늬>의 첫 장면은 18세 여성 청소년 문희가 피의자 신문을 받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고소인은 족발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 김수성이다. 문희는 그 식당에서 오토바이 배달을 하다가 사고로 숨을 거둔 또래 청소년 이진형의 죽음을 파헤치고 있었다. 피해자를 애도하는 사진을 게시판에 올려 김수성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고소당했다. 문희는 사망한 청소년 노동자 이진형과 아는 사이냐고 묻는 경찰의 질문에 “몇 번 본 적은 있지만 아는 사이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진형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경찰은 “당신이 식당의 영업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것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집중한다. 문희가 이진형의 죽음을 알게 된 것은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였다. 이진형의 빈소가 옆방이었기 때문이다. 문희는 11년 동안 할머니와 단둘이 산 청소년으로 앞으로는 혼자 일하며 살아가야 한다.

지난 10월1일부터 나흘간 개최된 ‘2021 부산청년주간’의 슬로건은 ‘지금부터 더하기’였다. 이 행사는 청소년과 청년이 자립 과정에서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사회가 의견을 모으는 자리다. 이날의 발표자 조기현씨는 <아빠의 아빠가 됐다>라는 책의 저자다. 그는 스무 살에, 알코올성 치매에 진입하며 쓰러진 아버지의 돌봄을 책임지게 됐으며 공공기관에는 부양의무자, 병원에는 보호자로 등록됐다. 조기현씨는 “갑자기 부모님이 아프기 시작하면 교육받거나 정보를 습득할 창구가 없다. 갑자기 돌봄이 시작되고, 병원에서부터 보호자 역할을 시작해야 했다”고 말한다. 가족 모델이 다양해지고 조손가정을 포함해 2인 가정이 늘어나는 추세에 고령화까지 진행되면서 조기현씨보다 더 어린 연령의 청소년들이 이른바 ‘영 케어러(young carer)’가 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에서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부양노동 청소년 문제를 가시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나는 무늬>의 주인공 문희는 “족발 가게 밖에 있는 솥에서 족발을 꺼내던 아이, 티셔츠 소매를 팔뚝까지 걷어 올린 손목에 채워져 있던 노란 실팔찌”로 이진형을 기억한다. 만약 쓰러진 문희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라 병상에서 긴 투병을 시작하게 되었다면, 도와주는 이모마저도 없었다면 간병을 시작했을 문희는 어떤 벽에 부딪히게 되었을까. 여기서부터는 문학의 일이 아니다. 청소년 노동자와 그들의 노동에 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감정’을 되새기는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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