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승범 금융위원장(왼쪽)이 7일 스타트업 지원센터인 서울 마포 프론트원에서 열린 벤처·창업 청년 간담회에서 참석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금융위원회 제공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말 가계부채 대책을 발표한 후 잇따라 금융산업과 경제활성화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코로나19와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확대된 가계부채는 조이고 혁신금융서비스 확대로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기존 금융사에게는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강조하는 것 모두 전임자와 ‘차별화’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고 위원장은 7일 스타트업 지원센터인 서울 마포 프론트원에서 벤처·창업 청년 간담회를 열고 크라우드펀딩 활성화, 코스닥 상장 지원 등 제도적 기반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산업은행·한국성장금융·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은 280억원을 출자해 내년 1분기 중 420억원 규모의 ‘프론트원 펀드’ 조성계획을 발표했다.
고 위원장은 지난달 은행업계와의 첫 간담회에서 “금융그룹이 하나의 슈퍼앱을 통해 은행, 보험, 증권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지털 유니버설 뱅크’가 가능하도록 제도적 여건을 조성하겠다”면서 투자 자문업 개방과 겸영 및 부수 업무 확대를 검토하고 금융권과 빅테크 간 규제 차익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3일에는 보험업계와 간담회를 열고 보험사에 오픈뱅킹을 허용하는 한편 ‘1사1면허제’를 완화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를 활용한 건강상태 분석, 질병 위험도 예측 서비스, 보험업계의 요양서비스 제공은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모두 보험사들이 그동안 요구해온 신사업 분야이다.
금융권에서는 고 위원장이 지난 8월 말 취임 후 금융사에 대한 ‘강·온 대응’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집값폭등에 올라탄 가계부채 폭증세를 막으려면 지난해 하반기쯤 선제대응이 필요했으나 코로나19 델타변이 확산 등으로 제동을 걸지 못한 탓에 지난 2~3개월 간 시중은행 등 금융사를 대상으로 본격적인 ‘대출 조이기’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특히 올해 마지막 대어로 꼽혔던 카카오페이 공모주 청약 일정도 당초 계획보다 앞선 10월25일부터 이틀 간 실시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모주 개인 청약금 대부분이 신용한도 대출(마이너스통장)로 이뤄지는 만큼 증거금 반환이 10월 안에 이뤄질 수 있도록 조절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가계부채 대책이 금융사에 대한 ‘압박’이었다면 규제 완화와 청년창업가 지원은 ‘금융산업 활성화와 경제생태계 조성’ 메시지로 볼 수 있다. 금융위는 2019년 4월부터 규제 적용을 최대 4년간 유예하는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운영해 지난 9월 말 기준 153건의 혁신금융서비스를 지정했고 이 중 94건이 출시됐다. 핀테크 기업을 육성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가 있지만 기존 금융사들로서는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불만이 많았다.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등 빅테크의 간편 송금·이체·결제 서비스 시장이 커지면서 ‘동일기능 동일규제’ 원칙을 적용해달라는 요구도 계속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한국 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는 가계부채 증가율을 낮추는 것, 금융 산업을 육성하고 소비자 편익을 확대하는 것 모두 금융위가 할 일”이라면서 “가계부채가 거시경제와 금융시장 안정을 훼손하지 않게 하면서 금융소비자와 투자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전제 하에 시장 자율성은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