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에서 휴대폰 진동이 계속 울리는데 회의를 하느라 받지 못했다. 일정이 끝나고 휴대폰 화면을 확인해보니 부재중 전화 두 통이 찍혀있었다. 번호가 아닌 글자였다. ‘청각장애통역전화’. ‘청각장애’와 ‘통화’, 두 단어가 연결이 되지 않아 혼란에 빠졌다. 고민할 틈도 주지 않고 또다시 전화가 울렸다. 통화를 거부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빨리 전달하고 싶은 마음과 어떻게 대화해야 할지 상상이 되지 않아 긴장된 마음을 가지고 전화를 받았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여보세요?’ 기대하지 않았던 말, 아니 소리가 튀어나왔다.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소통을 도와주는 통역사의 목소리였다. 단단히 마음먹고 외국인과 대화하려고 말을 걸었는데, 외국인의 입에서 한국어가 튀어나온 느낌이었다. 나는 부재중 전화에 찍힌 ‘통역’이라는 단어를 빼먹었다. 청각장애인 통역사를 본 적도 상상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통역’이라는 단어를 보고도 읽지 못한 것이다.
청각장애통화 통역사는 청각장애인이 실시간으로 적은 문자를 나에게 음성으로 읽어주고, 내가 음성으로 말한 것을 텍스트로 적어서 청각장애인에게 전달한다고 설명해줬다. 통역사가 부탁한 것은 통역에 시간이 걸리니 기다려달라는 것뿐이었다. 청각장애인 통역 서비스는 손말이음센터라는 곳에서 제공하는데, 문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통역한다. 청각장애인이 영상으로 수어를 하면 중개사가 수어를 음성으로 옮겨주고, 상대방이 음성으로 말하면 중개사가 다시 수어로 청각장애인에게 전달한다. 비장애인이 청각장애인에게 전화를 걸고 싶을 때도 통역을 제공한다.
전화를 건 청각장애인이 나에게 전달하고 싶은 말을 텍스트로 적는 동안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청각장애인이 왜 배달 라이더의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에 전화를 했을까? 잘못 걸었다면 어떤 장애인단체를 소개시켜줄까?’를 고민했다. ‘서울에서 배민, 쿠팡 같은 플랫폼에서 일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준비되지 않은 질문이 머리를 쳤다.
배달하다 보면 전화를 해야 할 일이 많다. 손님 부재로 전화를 해야 할 수도 있고, 문제가 생겨 상점에서 라이더에게 전화를 걸 수도 있다. 심지어는 손님이 배달 요청 사항에 전화 달라고 적는 경우도 있는데, 플랫폼사가 이 문제를 해결해줄 리 없었다. 아직까지는 청각장애인이 배달할 수 있는 환경은 조성되어 있지 않다고 안내했는데, 나의 편견과 달리 그는 이미 지역 동네 배달대행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사장님이 다른 라이더들이 가기 싫어하는 소위 ‘똥콜’을 보내는 경우가 많고, 처우가 좋지 않아 서울의 대형 배달플랫폼에서는 좀 더 괜찮은 조건에서 일할 수 있을지 궁금해했다. 생각해보니 플랫폼에서 상점과 손님에게 문자로 소통해 달라는 안내만 하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진짜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청각장애인 배달노동자를 상상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요즘, 정치인의 망언은 시끄럽게 오고가는데, 통역을 구해서라도 들어야 할 사람들의 이야기는 묻히고 있다. 마침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도보행진단의 국회 앞 집회와 라이더유니온의 청와대 행진이 10일 개최된다. 모든 국민은 차별받지 않아야 하고, 모든 노동자는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권리가 있다. 이 말을 이해하는 데 통역은 필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