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오케스트라·지휘자의 내한…빈 필·리카르도 무티 공연 미리 보기

올댓아트 송지인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입력2021.11.10 18:12 입력시간 보기
수정2021.11.10 18:13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세종문화회관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빈 필)가 드디어 내한합니다. 지난해 11월 예정이었다가 코로나로 순연되었던 공연이 오는 11월에 열리는 건데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이번 공연은 ‘2021 그레이트 오케스트라 시리즈’의 일환입니다. 2018년 뮌헨 필하모닉, 2019년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에 이어 <그레이트 오케스트라 시리즈>를 통해 내한하게 된 빈 필은 이번 내한에 세계적인 거장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와 함께 합니다. 프로그램으로는 모차르트의 교향곡 35번 ‘하프너’와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 ‘그레이트’, 이렇게 단 두 곡을 선보입니다.

오늘은 모처럼 열리는 세계 최정상,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이 궁금한 여러분을 위해, 빈 필은 어떤 오케스트라이며,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는 누구인지, 이번 공연에서 연주될 교향곡 ‘하프너’와 ‘그레이트’는 어떤 곡인지 소개합니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세종문화회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Wiener Philharmoniker)! 1842년에 창단된 이 악단은 약 18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합니다. 브람스와 브루크너 등 시대별 최고 음악가들의 작품들을 초연해왔으며, 어느 시대든 당대 최고의 지휘자만이 빈 필을 지휘할 수 있었지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빈 필은 곧 서양 음악의 역사와도 같으며, 이 교향악단이 세계 클래식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합니다. 요즘은 워낙 뛰어난 악단이 많아 잘 쓰지 않는 표현이지만, 즐겨 쓰이던 ‘세계 3대 교향악단’이라는 말은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그리고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칭하던 표현이었지요.

공연 전 리허설을 하고 있는 1926년 빈 필의 모습이 담긴 판화 작품. 오른쪽 지휘자는 펠릭스 바인가르트너|Wikipedia

이 대단한 교향악단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17세기 합스부르크가 궁정 안의 무도회장에서는 1841년 3월의 첫 정기연주회를 시작으로 1년에 2-3회의 정기연주회가 열리곤 했습니다. 황제 일가도 참석하던 이 공연에서는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이 연주되었는데요. 이 연주회에서 연주를 한 관현악단(빈 궁정 오페라 극장의 오케스트라)이 지금의 빈 필의 전신입니다.

이어 1842년, 이 오케스트라를 공연에 이용해 보자는 발상으로, 악장이자 지휘자였던 오토 니콜라이의 주도하에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정식 창단되었습니다. 니콜라이는 1847년까지 이 악단을 지휘했으며, 그를 기념하는 ‘니콜라이 콘서트’는 지금도 열리고 있습니다. 현재 빈 필의 상주 콘서트홀은 1870년에 건축된 빈의 아름다운 건축물이자 상징적인 공연장 무지크 페어라인(Wiener Musikverein)입니다.

빈 필의 단원은 어떻게 뽑힐까요. 빈 필 단원이 되려면 빈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에서 3년 이상 단원 생활을 한 후, 빈 필 오디션에 합격해야 하는데요.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인 만큼 모든 단원이 뛰어난 솔리스트이자 유명 실내악단 주자, 유명 대학의 교수로 활동하는 최고의 연주자들입니다. 음악계에서는 빈 필 특유의 소리를 가리켜 ‘빈 필 사운드(Wiener Klangstil)’라 칭하는데요. “벨벳·실크 같다”, “품격이 있고 우아하다”고 표현되는 이 ‘빈 필 사운드’는 빈 스타일의 싱글 호른 등 전통적인 빈의 악기와, 대대로 계승된 빈 음악가의 연주 관습, 그리고 이를 탁월하게 구현하는 단원 한 명 한 명의 실력이 만나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빈 필’하면 ‘신년음악회’를 떠올리시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물론 빈 필의 신년음악회는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큰 클래식 음악 행사 중 하나입니다만, 빈 필의 주요 연주회가 신년음악회뿐인 것은 아닙니다. 빈 쉔브룬 궁전에서 펼쳐지는 여름 음악회도 빼놓을 수 없지요. 또 이외에도 해외 투어까지 하면 1년에 50회 이상의 공연을 여는데요. 빈 필이 ‘빈 외의 도시’에서 연주회를 가진 것은 1877년 리히터의 지휘로 잘츠부르크에서 연주를 한 것이 최초였습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외의 국가’에서 연주를 한 것은 1900년 말러 지휘로 파리 국제박람회연주회를 비롯한 투어 때가 처음이었지요.

빈 필은 이때의 파리 방문 이후로 본거지인 빈을 한 달 가까이 비운 적이 없는데요(특히 매해 여름에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연주를 위해 잘츠부르크에 상주합니다). 2019년에는 약 120여 년 만에 그 기록을 깨고 26일 동안 한·중·일 투어에 나섰습니다. 당시 한국에는 크리스티안 틸레만과 함께 내한했습니다. 그러면 이번에도 틸레만과 내한할까요.

11월 14일 공연을 위해 내한하는 빈 필의 올해 신년음악회 모습. 올해 신년음악회 지휘자도 리카르도 무티였다|세종문화회관

그렇지 않습니다. 1933년 이후 상임지휘자 선임제를 폐지한 빈 필은 단원들이 직접 지휘자를 선발합니다. 빈 필 고유의 음악적 색채와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빈 필에서는 상임지휘자를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빈 필과 자주 연주하는 지휘자는 있을지언정 언제나 함께 하는 지휘자란 없지요. 매년 빈 필하모닉의 객원지휘자 선발에 클래식 애호가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R.슈트라우스부터 쇤베르크, 푸르트벵글러, 토스카니니, 뵘, 크라우스, 마젤, 카라얀, 바렌보임, 아바도, 얀손스 등 당대 최고의 지휘자들만이 함께 하는 빈 필의 공연, 이번 내한에는 리카르도 무티가 함께 합니다. 무티는 누구이고, 어떤 지휘자일까요?

■리카르도 무티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세종문화회관

1941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태어난 리카르도 무티는 올해로 80세의 지휘자입니다. 나이는 들어도 여전한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그는 세계를 누비며 지휘하는 현시대 최고의 거장 지휘자 중 한 명입니다.

무티는 나폴리 음악원에서 빈센초 비탈레로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나폴리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이어 밀라노의 주세페 베르디 음악원에서 브루노 베티닐리에게 작곡을, 안토니노 보토에게 지휘를 배운 그는 1967년에 귀도 칸텔리 지휘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우승하며 주목받게 되는데요. 졸업 전에 이미 지휘자로 데뷔했을 정도로 뛰어난 역량의 소유자였던 만큼, 콩쿠르 우승 후 1-2년 차이로 콘서트 지휘자, 오페라 지휘자로 연이어 데뷔합니다.

콩쿠르 우승 2년 후인 1969년, 무티는 이탈리아의 유명 클래식 음악 축제인 ‘피렌체 5월 음악제’의 음악감독이 됩니다. 그런 그가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32세 때인 1972년, 세계적인 거장 오토 클렘페러의 후임으로 런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에 취임한 일이었습니다. 이어 무티는 1980년부터 12년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1986년부터 약 20년간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에서 음악감독을 지냈고(한국에 첫 내한 공연을 온 것도 라 스칼라 취임 첫해인 1986년이었습니다) 지난 2010년 9월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CSO)의 10번째 음악감독이 되었는데요. 최근 CSO와 2022-2023시즌까지 한차례 더 연장 계약을 맺었습니다.

무티의 음악이 가진 매력은 ‘이탈리아인 다운’ 폭발하는 열정과 다이내믹, 굵직하고 뚜렷한 선율,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카리스마와 우아함에 있습니다. 박력 넘치는 지휘자 무티는 ‘학구파’입니다. 악보에 충실하며, 엄격하기로도 유명한데요. 2018년 시카고 심포니 센터에서 열린 정기 공연 중 관객이 기침을 크게 하자 연주를 중단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관객을 질책했던 그는 이전 내한 공연 때도 관객의 기침이 계속 이어지자 연주를 갑자기 멈추기도 했습니다.

그런 무티와 빈 필하모닉의 조합이니, 고전주의 팬들의 기대가 큽니다. 원칙을 중시하는 오랜 경력의 거장 지휘자와 고전주의 음악의 진수인 빈 필이 만나, 모차르트와 슈베르트의 대표 교향곡을 연주하는 공연이니까요. 무티는 1971년 전설적인 지휘자 카라얀의 초청으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빈 필을 지휘한 것을 시작으로, 무려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빈 필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이어왔습니다. 현존 지휘자 중 빈 필과 가장 많은 연주를 한 지휘자이자 빈 필의 신년음악회 최다 초청 지휘자(무티도 ‘신년음악회’에서만큼은 엄격하지 않습니다!)의 기록을 보유한 무티는 지난 2011년 빈 필의 명예 단원 칭호를 부여받기도 했는데요.

반세기 넘게 협력해 온 무티와 빈 필. 무티는 지난 2011년 빈 필로부터 ‘명예 단원’ 칭호를 수여받았다|세종문화회관

‘대중을 위한 클래식 전도사’를 자처하며 지역사회봉사에도 적극적으로 나선 무티는 2016년 한국에서 연 이탈리아 오페라 아카데미에서 지휘자 데이비드 이(현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를 발탁해 ‘라 트라비아타’를 지휘하게끔 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7월에는 80번째 생일을 앞두고 시카고 지역 라디오 WDCB-FM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지난 50여 년간 세계 곳곳에서 음악감독으로 일했다. 인생 말년에는 나 자신을 돌보며 살아보고 싶다. 다음 세대 또는 다른 지휘자들이 아이디어를 펼치도록 자리를 내주어야 할 때”라며 2022년 이후 은퇴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습니다.

어쩌면 이번 공연은 빈 필X무티 조합을 한국에서 직접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공연 곡 미리 보기

빈 필과 무티의 이번 내한 공연에서는 협연곡 없이, 두 개의 교향곡 작품만이 연주됩니다. 모차르트의 교향곡 35번 ‘하프너’,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 ‘그레이트’를 통해 오롯이 ‘빈 필 사운드’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될 텐데요. 묘하게도 두 작곡가와 두 곡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차르트와 슈베르트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가라는 점은 물론이고, 두 작곡가는 각각 고전주의와 초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며, 또 각각 35세, 31세의 나이로 젊을 때 세상을 떠난 ‘비운의 천재’들입니다.

교향곡 ‘하프너’와 ‘그레이트’는 모두 두 작곡가가 빈에 있을 때 쓰였고, 두 곡 다 초연부터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자주 연주되는 교향곡이자 모든 교향악단이 반드시 거쳐가는 필수 레퍼토리이기도 하고요. 이 두 개의 고전 명작에는 또 어떤 사연이 있을까요.

<모차르트 교향곡 35번 ‘하프너’>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초상화|Wikipedia

1781년, 25살이 된 모차르트는 콜로라도 대주교와 결별하고 고향인 잘츠부르크를 떠나 빈으로 갑니다. 그리고 죽기 전까지 약 10년간 이곳 빈에 머무르는데요. 이 시기를 모차르트의 ‘빈 시기’라고 부릅니다. 모차르트는 이 시기에 그가 남긴 작품의 거의 절반을 썼습니다. 다수가 피아노 협주곡이었고 교향곡은 6개뿐이었는데요. 모차르트의 작곡 능력이 완전히 무르익었던 시기에 쓴 이 6개의 교향곡은 그의 46개 교향곡 중에서도 하이든의 교향곡과 함께 고전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이라 불립니다. 1783년 초연된 교향곡 35번 ‘하프너’는 이 6개의 작품 가운데 맨 처음 쓰인 곡이자, 모차르트의 교향곡 중에서는 41번 ‘주피터’와 함께 가장 자주 연주되는 곡이기도 합니다.

‘하프너’ 교향곡은 원래 세레나데였습니다. 모차르트가 ‘하프너’의 작위 수여식을 축하하기 위해 썼던 세레나데를 교향곡으로 개작한 것이거든요. 이렇게 말하면 단순해 보이지만 이 곡의 탄생 배경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습니다. 모차르트가 25살이 되던 해 빈으로 갔다고 했던 것 기억하시지요? 모차르트의 아버지이자 모차르트의 음악 세계와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아들이 빈으로 가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그러니까 모차르트가 빈으로 갔던 것은 직업적으로는 프리랜서 선언이요, 아버지에게는 독립 선언과도 같았는데요.

모차르트가 빈으로 간 지 1년 후인 1782년 여름, 레오폴트는 모차르트에게 “하프너의 작위 수여식을 축하하기 위한 세레나데를 새로 작곡해서 잘츠부르크로 보내라”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하프너는 모차르트의 고향인 잘츠부르크의 명문가(家)로, 당시 하프너가의 주인이었던 지그문트 하프너는 모차르트의 어린 시절 친구였거든요. 모차르트는 레오폴트에게 이 편지를 받기 전에 이미 <하프너 세레나데>를 한 번 쓴 적이 있습니다. 그 곡이 모차르트가 하프너가의 딸인 마리아 엘리자베트의 결혼식 축하연 음악으로 작곡했던 <하프너 세레나데>(1776)인데, 이 곡은 모차르트가 작곡한 13개의 세레나데 중 가장 큰 규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프너가의 재력이 상당했기 때문에 많은 악사를 고용할 수 있었거든요.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초상화|Wikipedia

아무튼 아버지는 하프너가를 위한 세레나데를 새로 쓰라는데, 모차르트는 그때 굉장히 바빴습니다. 얼마 전 발표했던 징슈필 <후궁으로부터의 탈출>이 성공해서 이 작품을 관악 앙상블을 위한 음악으로 편곡하느라 바빴고, 이사도 해야 했고, 콘스탄체 베버와 결혼식도 예정되어 있었거든요. 모차르트 생애 가장 바쁜 시기 중 한때였지요. 그래도 레오폴트는 계속해서 독촉 편지를 보냈습니다. 모차르트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자신이 바쁘다는 것을 알리는 답장을 보내면서도 틈틈이 시간 나는 대로 하프너를 위한 세레나데를 작곡했습니다. 그리고 한 악장씩 마무리되는 대로 곧장 레오폴트에게 보냈는데요. 수 주 만에 완성된 이 작품을 레오폴트는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이 좋았던 것은 모차르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해 연말, 모차르트는 아버지에게 “여름에 보냈던 세레나데의 악보를 돌려달라”는 편지를 보냅니다. 그가 빈에서 열 콘서트에 이 곡을 올릴 계획이었거든요. 그런데 레오폴트는 곡을 받을 때는 독촉해서 받더니, 아들의 편지를 받고도 악보를 바로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모차르트는 “원본이든 복사본이든 가능한 한 빨리 보내 달라”는 편지를 여러 번 보냈다고 합니다. 한참 만에야 악보를 받은 모차르트는 레오폴트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며 교향곡이 된 ‘하프너’가 좋은 반응을 얻을 것이라 확신했는데요. 모차르트가 직접 지휘를 한 초연은 역시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고, 연주회에 참석했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요제프 2세는 모차르트에게 하사금을 지급하기도 했습니다.

교향곡이 된 ‘하프너’는 세레나데 버전에서 행진곡 악장과 미뉴에트 악장 하나가 제외되었고, 정리된 네 악장 중 첫 악장과 마지막 악장에 플루트 파트와 클라리넷 파트가 추가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기존의 세레나데와 비슷합니다. 아래 영상을 통해 전설적인 지휘자 칼 뵘 지휘, 빈 필 연주로 모차르트 교향곡 ‘하프너’를 미리 감상해 볼까요. 이 곡이 처음에는 하프너를 축하하기 위해 모차르트가 쓴 음악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며, 그 화려함을 느끼며 감상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영상 ▲ 칼 뵘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의 모차르트 교향곡 35번 ‘하프너’

<슈베르트 교향곡 9번 ‘그레이트’>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의 초상화|Wikipedia

“클라라. 나는 오늘 복을 받았소. 이 곡은 형용할 수 없소. 인간의 목소리요. 모든 악기가 엄청나게 즐겁고 관현악법도, 엄청난 길이도 놀랍소. 난 정말 행복했고 당신이 나의 아내가 되고 내가 이런 곡을 쓸 수 있기만 빌었소.”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 ‘그레이트’ 초연에 참석한 슈만은 사랑하는 클라라에게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이어 그는 1840년 발간된 <음악신보>에도 이 곡에 대한 찬사를 남겼습니다.

“이 교향곡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슈베르트를 진정으로 알 수 없다. 이 교향곡에는 음악이 표현해왔던 아름다운 노래와 고통과 기쁨을 능가하는 그 무엇이 있다.”

사실 이 곡은 슈베르트 생전에는 연주되지 못하고 그의 사후 10여 년 후에 초연되었는데요. 이 곡이 초연될 수 있도록 힘쓴 사람도 바로 슈만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곡이길래 슈만이 이렇게 극찬했던 걸까요.

슈베르트는 이 교향곡의 총보를 1826년 빈 음악협회에 헌정했습니다. 초연도 준비했지만 “곡이 어렵고 길다”는 이유로 공연은 성사되지 못했는데요. 연주자들도 똑같은 리듬 패턴이 계속 반복되는 4악장에서 비웃음과 폭소를 터트렸다고 합니다. 슈베르트는 이 곡의 개정 작업을 1828년에 마쳤는데, 그해 11월 끝내 초연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슈베르트가 죽고 9년 후, 당시 무명 작곡가이자 음악평론가였던 슈만은 그의 형이었던 페르디난트를 찾아갑니다. 페르디난트가 슈만에게 산더미같이 쌓인 슈베르트의 악보를 보여주었는데요. 슈만은 그 안에서 이 교향곡의 악보를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교향곡 악보를 발견했다는 놀라움과 기쁨에 슈만은 당장 브라이트코프 & 헤르텔 악보 출판사에 연락해 이 교향곡의 악보를 출판했습니다.

※ 1849년 출판 당시에는 7번 교향곡이라 불렸는데(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슈베르트의 교향곡은 제6번까지만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후 스케치만 남아있던 교향곡 E장조(D.729)(1821)와 교향곡 ‘미완성’(1822)이 추가되면서, 작곡 순서에 따라 교향곡 ‘그레이트’는 9번이 되었습니다.

이어 슈만은 친구이자 지휘자였던 멘델스존에게 이 악보를 보냈고, 결국 이 곡은 멘델스존의 지휘로 게반트하우스에서 초연되었는데요. 초연은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로베르트 슈만의 초상화|Wikipedia

베토벤 교향곡 이후 최고 수준의 교향곡이라고 평가받는 슈베르트의 교향곡 ‘그레이트’는 음악이 가진 힘과 웅장함에 압도되는 거대한 작품입니다. 곡의 길이도 1시간이 넘습니다. 또, 악상과 연주법이 (19세기 초 기준)독특했습니다. 당시로서는 네 악장이 단일한 리듬으로 통일되거나, 곡의 1악장 도입부에서 2대의 호른이 단독으로 주제를 연주하는 등의 악법은 무척 드물었거든요. 요즘의 영화 음악에서는 꽤 자주 쓰이지는 이런 방식을 슈베르트는 무려 200년 전에 선보였던 것이지요.

이 작품은 섬세한 ‘가곡의 왕’이라 불리던 슈베르트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베토벤을 연상시키는 곡이라 평가받기도 합니다. 이 곡으로 자신이 베토벤에 비견되어 극찬 받는다는 사실을 알면 슈베르트는 무척 기뻐할 것입니다. 생전 슈베르트는 베토벤을 존경하는 베토벤의 열렬한 팬이었고, 베토벤이 죽었을 때 운구에 참여했을뿐더러, 훗날 자신을 “베토벤의 옆에 묻어달라”고 했을 정도였거든요(그리고 실제 슈베르트는 사후 베토벤의 곁에 묻히게 됩니다).

16세기 그문덴의 모습이 담긴 그림|Wikipedia

이 곡을 쓸 때 슈베르트의 인생은 말년이었습니다. 당시 그가 떠난 여행지이자 오스트리아의 아름다운 휴양지이며, 쇤베르크의 현악사중주가 탄생한 곳이기도 한 그문덴, 유명한 온천 휴양지 가스타인 등의 전원적 정경이 바로 ‘그레이트’에 녹아있는데요. 이 풍부한 구성의 위대한 교향곡을 고전주의 음악 해석의 권위자 존 엘리엇 가디너의 지휘, 빈 필의 연주로 감상해 보겠습니다. 시대를 앞서 간 작품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며, 시작부터 품어 온 에너지가 폭발하는 피날레까지 집중해서 감상해 보세요!

영상 ▲ 존 엘리엇 가디너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의 슈베르트 교향곡 9번 ‘그레이트’

자료|세종문화회관
참고|빈 필하모닉 & 크리스티안 틸레만, 브루크너 정신이 다가온다 (객석, 2019.10.21)
<리카르도 무티> (세계 명지휘자 사전, 삼호뮤직)
2021년 빈 필 첫 무대 서는 지휘자…기침한 관객 질책 ‘화제’ (문화일보, 2020.12.17)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 미래의 오페라 지도를 그리다 (객석, 2016.4.1)
<모차르트, 교향곡 제35번 ‘하프너’> (황장원, 클래식 명곡 명연주)
<슈베르트, 교향곡 9번 ‘그레이트’> (류태형, 클래식 명곡 명연주)
[유(윤종)튜브] 교향악 황제들의 계보 이어준 슈베르트 교향곡 9번 (동아일보, 2021.7.27)
[최은규의 백 스테이지] 초연, 음악에 생명을 불어넣는 순간 (조선일보, 202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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