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시신 닦고 옷 갈아입혀
주목 못 받은 여성들 활동 초점
내년 2월까지 5·18기념관서 전시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버스에 탄 여성들이 계엄군에 의해 희생된 시민들을 위한 관을 나르고 있다. |한국일보 촬영, 5·18기념재단 제공
사진 속 버스 창문에 시신을 담는 관이 걸쳐 있다. 버스 안에서는 여성들이, 밖에서는 남성들이 관을 붙잡았다. 관을 싣는 것인지, 내리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여성들이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의해 희생된 시민들의 관을 날랐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장면은 1980년 광주에서 찍힌 사진이다.
여성들은 당시 옛 전남도청과 상무관에서 사망한 시민들의 시신 수습에 참여했다. 초여름 날씨에 별다른 냉동 시설도 없어 썩어가던 희생자들의 시신을 닦고 옷을 갈아입힌 사람들의 상당수는 여성들이었다.
당시 신의여상 3학년이었던 고 박현숙씨도 그런 일을 했다. 넘쳐나는 희생자로 관이 부족해지자 그는 5월23일 직접 관을 구하기 위해 전남 화순으로 향하는 미니버스를 탔다. 동구 주남마을 앞을 달리던 버스는 외곽을 차단하고 매복해 있던 공수부대의 집단 총격을 받았다.
이날 총격으로 박씨를 포함해 17명의 시민이 사망했다. “내가 도울 일은 없느냐”며 스스로 도청을 찾았던 열여덟 소녀의 짧은 삶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자리잡지 못했다. 이처럼 잊혀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여성들의 활동을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여성들이 시민군들에게 밥을 지어 제공하고 있다. 여성들은 ‘주먹밥’으로 시민군들과 연대했다. |5·18기념재단 제공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전남도청 앞에 시민들이 모여 구호를 외치고 있다. |5·18기념재단 제공
5·18기념재단은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 전시관에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여성들의 활동을 조명하는 전시 ‘사라지고, 살아지고’를 내년 2월까지 개최한다”고 11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항쟁의 주역이었지만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들의 활동을 쫓고 있다.
그동안 5·18민주화운동은 시민군을 중심으로 한 남성들의 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그러나 여성들도 똑같은 ‘광주 시민’으로 항쟁의 중심에 있었다. 여성들은 총을 든 계엄군에 저항하기 위해 시민들이 사용한 화염병 제작에 참여했다. 밤에는 항쟁 소식을 시민들에게 알린 ‘투사회보’를 제작하고 낮에는 식당에서 일한 여성들도 있다.
방직공장에 다니던 여공들은 쉬는 시간을 쪼개 도청 앞까지 행진했다. 당시 일신방직에 다녔던 전삼순씨(64)는 “3교대 근무를 했었는데 쉬는 시간에 5월21일부터 3일간 인근 전남방직 노동자들과 함께 도청까지 행진을 했다”면서 “일신방직만 해도 행진에 참여한 여성 노동자가 2000명이 넘었다”고 증언했다. 방직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5·18 행진’은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11일 5·18기념문화센터 전시관을 찾은 시민들이 5·18당시 여성들의 활동을 조명한 전시 ‘사라지고, 살아지고’를 관람하고 있다. 5·18기념재단 제공.
“학생들이 굶고 있단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여성들은 돈을 걷어 가마솥에 밥을 해 소금과 참기름을 섞어 주먹밥을 만들었다. 여성들은 주먹밥을 통해 ‘시민군’과 연대했다.박정희 정권 시절 양심수 석방운동과 지원을 위해 결성된 여성들의 모임인 ‘송백회’는 광주 시내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검은 리본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각종 활동을 하다 사망한 여성은 12명이나 된다. 최소 12명의 여성들이 행방불명됐다. 박진우 5·18기념재단 연구실장은 “이번 전시는 사회적 주체로서 여성들의 활동을 조명하고자 했다”면서 “모든 여성들의 활동을 담지는 못했지만 5·18과 여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