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발급된 양복기능사자격증을 내건 진흥양복점, 30대 사장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운영하는 광영당, 창업 초기 구입한 46년 된 쇠절구를 여전히 쓰는 충남기름집.
성북마을아카이브에 게재된 주민기록단 심미예씨(53)의 기록을 따라가다보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종암동이 이미지와 냄새, 그리고 이야기로 생생하게 그려지는 듯하다. 무엇보다 와 닿는 것은 우리 동네, 우리 이웃이라는 감각이다.
도시재생에 관심이 많았던 심씨는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정석 교수의 강의를 듣고 “도시재생이 결국은 사람의 이야기”라는 결론을 얻은 뒤 “도시 안에 든 사람과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20대 초반 언니네 집 다락방살이를 하며 종암동과 연을 맺은 심씨는 결혼과 동시에 정릉으로 떠났다가 돈암동, 길음동을 거쳐 다시 8년 차 종암동 주민이 됐다. 성북구에서만 30년 이상 살았지만, 다른 지역으로 출퇴근하다보니 집은 잠자는 공간에 불과했다. 4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비로소 동네에서 뭔가 할 게 없나 “눈을 부라리면서” 찾던 차에 성북문화원의 주민기록단 모집 공고를 봤다. 성북문화원은 변해가는 성북구의 모습을 주민들의 인터뷰와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담당하는 마을기록단을 운영하고 있다. 심씨는 “주민기록단이 연결고리이자, 기폭제가 되었다”고 말한다. 동네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었다고 했다. 마을기록단이 되고 나서는 익숙한 골목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연식이 있어 보이는 가게만 보면 ‘얼마나 됐고 주인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증이 인다.
“일단 오래된 느낌이 나면 들어가봐요. 며칠 전에 찾은 수선집은 일부러 옷을 가져가서 맡기면서 몇 년 됐는지 물어봤어요.”
프랜차이즈 빵집이 골목상권까지 장악한 요즘, 2대째 하는 빵집을 취재하고 싶어서 여러 번 찾아갔으나 사장의 흔쾌한 답을 듣지 못했다. 그렇게 빵도 꽤나 구입했다. ‘오래된 가게’라는 막연한 주제를 놓고 기록단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었다고 한다. 심씨는 최소 20년 이상이라는 나름의 기준을 세웠다. 누군가 살아있을 때 기록을 남길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을 찾아 동네를 누빈다. 동네 사정에 밝은 미용실 주인의 제보를 받기도 하고, 오랜 단골집에 기대기도 한다.
“말씀하기 좋아하는 분들도 많지만, 꺼리는 분들도 많아요. 간혹 연세 드신 분들이 ‘이 가게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다’ 하시면 ‘후대 누군가가 분명 이어갈 텐데 자료를 남겨놓으면 찾아볼 수 있으니 얼마나 중요한 기록이 되겠느냐’ 말씀드리는데 그럼 ‘아이고 죽고 났는데 뭘’이라고 하는 분도 계시죠(웃음).”
섭외만큼 어려운 것이 인터뷰다. 아직 마을아카이브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아서 ‘블로그에 홍보해주려나보다’ 여기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무엇보다 유명인이 아니다 보니 인터뷰이에 대한 정보를 찾기가 어렵고 인터뷰를 하더라도 앞뒤 구분 없이 했던 말을 또 하거나 상황을 건너뛰어 다른 말을 하는 경우도 잦다. “언제부터 운영하셨냐”는 질문에 구체적인 연도가 아니라 “총각 때부터”라고 답하는 식이다. 연혁을 따로 정리해두지 않는 이상 20년 이상의 역사를 풀어놓는 데에 조리 있게 말하기란 쉽지가 않다.
심씨는 “일단 부딪혀서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주의 깊게 들으면서 풀어가려고 한다”며 두툼한 노트를 펼쳤다.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나간 생각의 흐름을 담은 마인드맵이 여러 장에 걸쳐 그려져 있었다. 파편화된 인터뷰를 압축된 생애사로 정리하는 그만의 노하우였다.
“이름이나 얼굴 노출을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많아요. ‘중학교밖에 안 나왔는데, 이런 건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으니 빼라’는 분도 계셨어요. ‘우리 언니도 초등학교밖에 안 나왔는데 지금껏 사장님처럼 미용실을 잘하고 있어요. 그 시대는 다 그러고 살았어요’라고 말씀드렸죠.”
탐정 못지않은 주변 취재, 녹록지 않은 섭외와 생애사 정리, 무엇보다 자원봉사에 가까운 이 활동을 왜 지속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심씨가 얻은 한 가지 답은 인터뷰를 꺼리는 이들에게도 건네는 말이다.
“제가 종암동을 되새겨보니까, 어떤 동선 하나만 생각나는 거예요. 분명 살면서 여러 곳을 다녔을 텐데, 주로 다녔던 경로만 떠오르는 거죠. 내가 동네에 살지만 다 기억하지 못하더라고요. 내가 쓰는 기록이 자료로 남으면 누군가에게는 추억이 되기도 하고 소중한 자료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1년 차에는 숙제처럼 기록을 남겼다면 지금은 자발적 기록활동가로 동네를 누빈다. 코로나19로 대면 인터뷰가 어려워지자 그 대상을 집이나 길거리 등으로 확대했다. 빠른 속도로 변하는 동네의 모습을 담겠다 마음먹으니 모든 게 기록물로 보였다. 현수막 문구 하나도 문화와 경제 흐름을 보여주는 지표로 다가온다. 방대한 사진은 개인 블로그에도 꾸준히 올리고, 종암동 아일스튜디오와 지역주민모임 종종걸음과 함께한 종암동 아카이빙 작업을 담은 책자 <어떤종암?!>에도 게재한다.
지인의 집 방문을 위해 지도앱에 아파트 이름을 넣으면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시세와 매물을 알려주는 세상이다. 마을을 오래 들여다보고 사진을 찍는 심씨가 ‘부동산 재개발업자’로 오해받는 일은 씁쓸하지만 현실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겐 하루빨리 허물고 재개발해야 할 노후 건물에 불과할 고려상가에 대한 취재는 특히 각별했다. 심씨는 “종암동 제27통장 32년 경력의 박대표 고려상회 사장”을 인터뷰해 고려대 시험실습지로 조성되어 건어물상가가 되었다가 청량리시장과 경동시장에 밀려 이후 섬유계통 공장지대로 변했다가 용두동과 왕십리 재개발로 이전해온 철공소 차지가 된 고려상가의 역사를 열 문장으로 압축해 기록했다. 마을을 재발견하는 동안 애정도 새록새록 생겨났다. 그래서 기록은 더욱 소중하다.
“이야기를 듣다보면 마을에 애정을 갖고 있는 분들이 은근히 많아요. 그게 재밌어요. 사람들을 알아가는 재미. 이 작업을 계속해나가다 보면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 재밌는 일을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성북마을아카이브, 디지털시대 온라인에서 만나는 우리 동네
성북문화원은 2018년부터 마을기록단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본격 활동에 앞서 약 8주간 인터뷰 방법, 녹취록 작성법, 구술생애사 글쓰기 등의 교육을 한다. 연간 20여명의 주민이 수강했고, 그중 20여명의 기록 활동가가 결과물을 내고 있다.
활동가들이 성북구를 담은 기록을 보내오면 성북문화원 마을아카이브팀이 ‘성북마을아카이브’ 홈페이지에 게시한다. 성북구의 민간기록물로서 아카이브에 연재하고 영구 보존해 훗날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메타데이터를 따로 작성해 올린다. 백외준 연구과장은 “인터뷰 내용만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관련 조사를 하고 사실확인까지 거친 자료들이라 굉장히 질이 좋다”고 말했다.
지역 아카이빙에 대한 연구는 자발적인 주민 커뮤니티 형태로 먼저 활성화되어왔다. 정릉의 마을기록 네트워크인 ‘정말기록당’은 정릉의 주민협의체, 주민단체, 정릉복지관과 같은 기관, 마을기록을 하고자 하는 개인 등이 참여하는 대표적인 열린 공동체다. 마을기록은 광역자치단체 단위의 사업으로도 본격화됐다. 시흥시의 ‘걸뚝’처럼 관이 주도하는 기록활동가 양성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마을기록은 지역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며 비롯된 경우가 많다. 올해 처음으로 마을기록활동가 양성 교육을 실시한 고양시 일산종합사회복지관 인근은 도시재생사업과 도시재개발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동네의 외양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곳이다. 조안나 사회복지사는 “마을이 갑자기 바뀌는 것을 보고 기록의 필요성을 느낀 20~30년 거주자와 이 지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20대가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며 “시민이 남기는 기록은 관공서와는 전혀 다른 시선을 담을 수 있어서 그 부분에 의미를 두고 활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흩어져 있는 마을의 기록을 담은 활동가들의 결과물은 전시·간행물 등의 형태로 공유되고 있지만, 장기적인 보존이나 활용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성북마을아카이브는 디지털 시대 마을기록 활용의 시범적 사례라 할 만하다. 성북구와 성북문화원이 협력한 이 프로젝트는 다른 지역에 비해 풍부한 역사문화자원을 하나로 모으는 데에도 의의가 있지만, 무엇보다 주민 스스로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마을 민주주의에 무게를 두고 있다. 마을기록단의 열의만큼이나 아카이브팀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다. 백 연구과장은 “자료는 굉장히 많은데, 이것을 홈페이지를 통해서 사람들이 쉽게 검색해 볼 수 있도록, 수요자 입장에서 잘 선별·분류해서 보여줄 수 있는 큐레이션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성북마을아카이브에는 마을기록단 외에도 주제로 보는 성북, 구술인터뷰, 기록물 등의 메뉴가 갖춰져 있다. 구술인터뷰 대상은 삼선동 토박이 이재환 선생부터 길음시장 구두수선공 이종복씨 등 평범한 이웃이다.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일상을 담기 위해 다양한 계층의 구민을 인터뷰한 영상도 눈길을 끈다. 성북구 관련 사진이나 영상, 간행물(기록물)은 물론 인물, 사건, 장소, 유물, 문헌 등을 유형별·시대별·지역별로 검색할 수 있는 메뉴(이야깃거리)도 갖췄다. 검색창에 ‘미아리고개’를 치면 지명의 유래부터 김성환 화백의 ‘6·25 스케치’ 연작, 1960년 문을 연 시대문구사, 가요 ‘단장의 미아리고개’ 등의 자료가 뜬다. 사건·인물·장소·유물·문헌·작품·뉴미디어 등의 분류를 지정할 수 있으며 시대별·지역별 세부 검색도 가능하다.
‘성북마을발견×문학’은 온라인 마을기록의 확장판이라 할 수 있다. 많은 문인들이 터를 잡았던 이점을 백분 활용해 지난 100년간 성북구의 모습이 담긴 소설을 망라한 GPS기반 프로그램이다. 지도 속에서 ‘삼선교’를 클릭하면 간단한 역사와 함께 김동리의 <혈거부족>, 마해송의 <모래알 고금>,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 관련 작품 리스트가 뜨고, 해당 작품 속 문장까지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