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계의 대모’ 조희숙 셰프
김치를 비롯한 발효식품은 물론이고 한국식 치킨, 국밥, 떡볶이 등 다양한 한국음식이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방탄소년단(BTS)으로 대표되는 K팝과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 K콘텐츠의 인기는 한국문화 전반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식계의 대모’ ‘스타 셰프들의 셰프’로 불리는 조희숙 셰프(63)는 반평생 넘게 한식을 연구하며 ‘한식 세계화’를 위해 공을 들여왔다. 궁중, 사찰, 반가, 향토 등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 한식의 기본을 지키며, 세계인들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새롭게 재해석한 한식도 다양하게 선보였다. 벨기에 대표 미식 축제인 ‘잇!브뤼셀(eat!BRUSSELS)’을 비롯해 한식을 알릴 수 있는 국제행사 때마다 단골로 자문역을 맡아온 그는 오는 22일 열리는 ‘김치 마스터 셰프 선발대회’ 심사위원장을 2년 연속 맡고 있기도 하다. 미쉐린이 선정하는 ‘2020 아시아 최고의 여성 셰프’와 ‘2021 미쉐린 서울 멘토 셰프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신당동에 위치한 ‘한식공방’에서 조 셰프를 만났다. 한식공방은 그가 오랜 세월 쌓아온 기술을 후진과 공유하기 위해 운영하는 공간이다.
높아진 K푸드 위상…세계인들 한식 홀릭에 뿌듯
한식 강점은 발효음식…중독성 있어 다시 찾게 돼
사시사철 나는 산나물, 다른 나라선 맛보기 힘들어
- 한국음식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거워요. 한식 전문가가 느끼는 감회는 특별할 것 같습니다.
“격세지감을 느껴요. 제가 요리를 업으로 시작하고 나서도 아주 오랫동안 조리사는 우리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직업이었어요. 특히 한식은 화려하고 비싸게 팔리는 다른 나라 음식에 비해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죠. 한식에 대한 외국인들의 뜨거운 관심이 거꾸로 한국인들이 우리의 음식과 음식문화를 다시 보게 하는 효과도 있는 것 같아요.”
- 외국인들이 한식에 매료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익숙한 맛과 많이 다른데, 맛있기 때문이죠. 한국의 식문화를,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도 있고요. 우리 정부는 2010년 ‘한식 세계화’ 선포 후 많은 예산을 투입해 집중적으로 한식 진흥정책을 써왔어요. 그런 노력들이 하나씩 쌓이면서 K팝, K드라마 등 한류와 맞물려 크게 붐업이 됐다고 생각해요.”
- 다른 나라와 차별화되는 한식, 한식문화의 가장 큰 강점은 뭘까요.
“어느 나라나 발효음식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식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한식 상차림은 밥과 국, 반찬으로 구성되는데, 간장, 된장, 고추장이 베이스잖아요. 또 김치는 빠지지 않고 식탁에 오르고요. 더구나 김치는 2000년대 초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유행 때부터 효능이 있다고 해서 해외에서 인기를 끌었어요. 발효음식의 특징은 중독성이 있다는 점이에요. 한번 맛을 들이면 기억하고, 먹고 싶고, 다시 찾게 되죠. 그리고 한식의 또 다른 근간은 채소예요.”
- 육식 위주의 서양 식탁과 달리 채소 중심의 식단이라는 말씀이시죠.
“김치도 김치지만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이고 사계절이 있어요. 계절마다 나오는 산나물이 있고요. 다른 나라에서는 맛볼 수 없는 채소류죠. 그리고 그것을 맛있고 다양하게 요리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손이 많이 가고 귀한 음식임에도, 정작 한국인들은 나물을 보잘것없게 여겨요. 공짜로 주는 음식으로 알아요. 안타까워요.”
한국서 근무한 외국인들 김치 못 잊고 그리워해
김치는 모든 채소로 담글 수 있어 현지화 가능
오는 22일 김치의날에 ‘김치 마스터 셰프’도 선발
오는 22일은 ‘김치의날’이다. 김치의 가치와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정부가 지난해 법정기념일로 제정했다. 조 셰프는 이에 맞춰 이날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리는 ‘김치 마스터 셰프 선발대회’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올 예선에는 모두 22개 팀이 참가했고 22일 열리는 본선에서는 10개 팀이 경쟁한다. 우승자는 상금 500만원과 세계김치연구소에서 주관하는 국내외 김치 행사에 전문가로 참여하게 된다.
- ‘김치 마스터 셰프 선발대회’가 올해로 4회째 열리는데, 얻고자 하는 효과는 뭔가요.
“김치 소비 촉진이에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김치를 잘 안 먹잖아요. 이 대회를 통해 우리 고유의 발효음식인 김치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기대가 있어요. 또 밥반찬으로서뿐만 아니라 메인 디시로서도 김치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을 널리 알리고 싶고요.”
- 어떤 기준으로 우승자를 선발하나요.
“상품성이 뛰어나고, 일반인들도 직접 따라 해먹을 수 있는 김치요리를 내놓는 팀에 높은 점수가 주어져요. 지난해 심사할 때 보니, 김치로 소스를 만든다거나 떡을 빚는 등 젊은 친구들의 아이디어가 상당히 번뜩였어요. 지난해 대상은 오렌지소스에 담가 만든 백김치찜과 수육을 내놓은 참가자가 차지했어요. 맛은 물론 플레이팅도 뛰어났어요.”
- 올해 김치 수출이 사상 최대 기록을 세울 것으로 전망된다고 해요. 일본의 스시, 이탈리아의 피자처럼 김치도 현지화가 가능할까요.
“한국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했던 외국인들은 김치를 못 잊고 그리워해요. 그런데 김치는 어떤 종류의 채소로도 다 만들 수 있어요. 그러니 충분히 현지화가 가능하죠. 다만 꼭 들어가야 하는 양념 외에는 현지인들의 입맛에 맞게 가감이 필요할 수도 있어요. 가령 액젓에 대한 호불호가 있고, 마늘향이 너무 짙은 것을 꺼리는 민족도 있으니까요.”
- 마침 김장철입니다만, 상당수 한국인도 어려워하는 김치 담그는 법을 외국인이 잘 터득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현지화를 위해선 김치 담그는 방법을 좀 단순화해 핵심을 정리해줄 필요가 있어요. 김치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충분조건은 뭔지, 어떤 재료가 없을 때 대체할 수 있는 재료는 뭔지 등에 대해 정보를 주는 거죠. 또 김치가 잘 발효되도록 사용하는 풀의 재료로 쌀뿐 아니라 모든 곡식이 다 가능하다는 점도 알려주고요.”
전남 신안군 섬마을에서 어린시절 보내
내 영혼의 음식은 할머니가 담가준 감태지
조 셰프는 1958년 전남 광주(현 광주광역시)에서 2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세 살 때부터 여덟 살 때까지 부모와 떨어져 조부모가 사는 전남 신안군 섬마을에서 자랐다. 한양 조씨 집성촌이었다. 빈농인 할아버지는 낮에는 벼농사를 짓고 밤이면 등잔불에 의지해 새끼를 꼬아 가마니와 망태기를 짰다. 손끝이 매웠다. 삼촌은 염전을 일궜다. 눈 뜨면 바닷가에 나가 놀던 어린 손녀의 혀끝에 그리고 뇌리에 깊게 각인된 ‘맛의 뿌리’는 그 시절 할머니가 해준 음식들이다. 조 셰프는 ‘나의 솔 푸드(soul food)’라고 표현했다.
- 어떤 음식이길래요.
“바다에서 나는 해조류인 감태에 소금만 넣고 삭힌 감태지(감태김치)만 있으면 밥 한 그릇은 뚝딱 먹어치웠어요. 덮개를 덮어 뜨뜻한 아랫목에서 삭히는데, 그 향이 말도 못하게 굉장해요. 말리거나 양념해 지져 먹기도 한 망둑어, 전어 새끼에 고추를 넣어 그대로 삭힌 젓갈도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어요.”
- 삭힌 음식이 일반적으로는 어린아이 입맛에 안 맞을 것 같은데, 입맛이 특별했군요.
“그러게요(웃음). 할머니의 감태지 맛을 잊지 못해 직접 담가보려고도 했어요. 하지만 지금의 감태는 많이 거칠더라고요.”
- 어쩌다가 조부모와 살게 된 건가요.
“제가 세 살 때 고모가 일을 도와준다고 당시 서울에 살던 저희 집에 와 계셨대요. 신안으로 내려간다고 하니까 제가 고모와 안 떨어지겠다며 울고불고했다고 해요. 그래서 따라나서게 된 거죠. 여덟 살 때 아버지와 오빠가 저를 데리러 서울에서 내려왔어요. 그 길로 올라와 초등학교에 입학했어요.”
조리사 되려 교사 그만둬…절대 후회 안한다 결심
세종호텔 거쳐 외국계 특급 호텔 한식 책임자로
존재감 없는 한식에 속상…위상 높일 방법 고민
1981년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학교) 가정교육학과를 졸업한 후 전남 고흥의 점암중앙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하지만 3년 만에 사표를 썼다. 그 길로 서울 명동에 위치한 세종호텔 한식당에서 칼을 잡았다. 4년제 대학 졸업생이 호텔 조리사로 일하는 일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다. 더구나 장래 희망으로 ‘현모양처’를 쓰는 게 아무렇지도 않았던 시절, 교사 중에서도 가정교사는 여성들과 그 부모들이 가장 선망하는 타이틀이었다.
- 교사는 왜 그만뒀습니까.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그러던 차에 세종호텔 한식당 주방장으로 근무하던 선배로부터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마침 겨울방학 때여서 일단 경험 삼아 한번 가봤죠. 당시 세종호텔의 한식 뷔페 ‘은하수’의 인기는 대단했어요. 연말이라 북새통이었죠. 40명의 조리사가 하루 세 번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을 차려내야 했어요. 커다란 채반에 뜨거운 소 혀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막내인 저 혼자 그 껍질을 다 벗겨내야 했어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죠. 매일 밤 끙끙 앓았어요.”
- 그럼에도 전업을 한 이유는 뭔가요.
“엄마의 반대가 심했지만, 왠지 이 일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결심이 선 후 제가 제일 처음 마음먹은 게 스스로 후회하지 않도록 만들겠다는 거였어요.”
- 실제로 후회한 적이 없습니까.
“달 보고 나와 별 보고 퇴근한다고 했을 만큼 하루 15시간 이상을 선 채로 일했어요. 오이도, 소갈비도 궤짝째, 나물도 커다란 다라이에 무쳐 들고 날라야 했죠. 당연히 몸 여기저기가 굉장히 아팠어요. 지금도 정형외과에서 X레이 찍으면 의사분들이 깜짝 놀라세요. 제 몸에 젊은 시절 맞은 금침이 100개가 넘게 있거든요(웃음). 그래도 후회한 적 없어요.”
한국계 호텔인 세종호텔에서 10년간 경력을 쌓은 그는 다음 8년을 노보텔 앰배서더 호텔 강남,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등 외국계 특급 호텔의 한식 책임자로 지냈다. 조 셰프는 “외국계 특급 호텔 식당가의 메인은 외국 음식이었고, 한식은 그 존재감이 미미했다”고 회고했다.
“속상했어요. 어떻게 해야 한식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한식의 수준을 끌어올려 발전시킬 수 있을까, 그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한 게 노보텔 앰배서더 호텔에서 근무할 때부터였어요.”
2017년 한식공방 열고 2019년 한식공간 맡아
한식 재해석한 다양한 요리로 외국인들 ‘매료’
높아진 한식 위상에 격세지감…젊은 셰프 참여 늘기를
그 후 다시 한국계 호텔인 신라호텔 한식당 총책임자로 발탁됐지만 2년 후 신라호텔이 한식 사업을 접으면서 그만둬야 했다. 당시 웨스틴조선호텔도 한식당 문을 닫았다. 새로 건립된 호텔에는 아예 한식당이 없었다. 그만큼 한식이 홀대받는 시기였다. 그는 2005년 미국 워싱턴 주재 한국대사관저 총주방장으로 1년간 지냈다. 귀국 후에는 대학에서 조리과 학생들을 3년간 가르치기도 했고, 재단법인 ‘아름지기’ 식문화 연구 전문위원으로 지내며, 한식문화 연구소이자 레스토랑인 ‘온지음’의 기틀을 다지기도 했다. 2013년부터 3년간 대한항공의 첫 정통 한식정찬 기내식 개발에도 참여했다.
- 한식 연구소인 ‘한식공방’을 연 게 2017년이지요. 2019년에는 한식 다이닝 레스토랑인 ‘한식공간’을 인수해 얼마 전까지 오너 셰프로 일했고요.
“한식공방은 원 테이블 레스토랑 형태로 운영하면서 소규모로 요리수업을 진행하고 한식 관련 연구와 컨설팅도 하는 공간이에요. 발효음식을 비롯해 한식을 알고 싶어 하는 외국인도 많이 찾아오세요. 또 한식공간은 제가 오픈 컨설턴트로 참여했고 이후 2년여간 메뉴 변경 등에 꾸준히 관여한 식당이에요. 파인다이닝(고급 식당)이 자리를 잡고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려면 몇 년은 유지해야 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경영난으로 폐업한다고 해 제가 인수했어요.”
- 인수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한식의 매력과 새로운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그 공간이 사라지면 안 된다는 안타까움 때문이었어요. 일단 제가 심폐소생을 해 후배 오너셰프나 기업이 이어갈 수 있도록만 하자고 결심했어요. 다행히 얼마 전 레스토랑을 인수할 투자사와 운영사가 나타났어요. 한식공간은 서울 성곡미술관 부근에 재오픈하는데, 제가 직접 주방을 책임지지는 않지만, 컨설팅 등을 통해 꾸준히 도움을 줄 거예요.”
- 한식공간에선 한식의 매력을 어떻게 외국인들에게 어필했습니까.
“외국인들은 뚝배기에 펄펄 끓은 음식을 잘 못 먹고, 밥, 국, 반찬 3박자로 먹는 행위 등에 익숙하지 않아요. 그래서 맛은 그대로면서 그들이 먹기 좋도록 어떻게 형태에 변화를 줄까 늘 고민했지요. 가령 삼계탕의 경우 서양인들은 뼈를 발라 먹는 행위에 익숙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뼈와 갖가지 한약재료에서 우러나오는 맛은 그대로 유지하되, 상에 낼 때는 뼈를 발라내 고급스러운 비주얼로 완성했어요. 맛을 본 외국인들이 ‘최면에 걸린 것 같다’고 표현하셨어요.”
하지만 그는 “지금은 그 단계도 지났다”고 말했다. “굳이 외국인 취향에 맞추려 하지 않아도 될 만큼 한식의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미 한식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고조된 만큼 가속이 더 붙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한식 세계화 초기에는 외국인들의 한식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려 간을 자극적이지 않게 하는 등 그들에게 맞추려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한식의 위상이 달라요. 이게 우리 거야, 불편해도 먹어봐, 라고 할 수 있게 됐지요. 밥과 국, 반찬을 따로 먹는 게 번거로워 보일지 모르지만, 흰밥에 다양한 음식을 곁들여 입안에서 어우러진 조화된 맛을 세계인들이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된 거예요.”
한식진흥원 이사로도 활동 중인 조 셰프는 “한식과 한식문화의 발전을 위해 바람이 있다”고 했다. “외국의 선진 주방시스템을 익힌 유능한 많은 젊은 셰프들이 한식 연구에 뛰어들면 한식이 세계 속에서 더 크게 도약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그는 “한식의 전승과 세계화에 작은 디딤돌이라도 될 수 있다면, 마지막 칼질을 멈추는 순간까지 그간의 나의 고민과 현장에서 경험한 모든 것들을 후배 셰프들에게 남김없이 전수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