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한끼’는 음식, 밥상, 먹는 일에 관해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코너입니다. 경향신문 기자들이 필명으로 씁니다.
히라마쓰 요코의 <바쁜 날에도 배는 고프다>란 제목의 에세이집이 있다. 이 책을 서가에서 제목만 보고서 홀린 듯 집어 들었다. 꼭 내 심정 같았기 때문이다.
한동안 해외 요리책들까지 집에 사다 놓고 다양한 요리를 했지만, 일이 바빠지기 시작하니 요리와 살림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밤늦게 퇴근하면서 편의점에 들러 과자나 컵라면, 맥주를 사 오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아침에 세수를 했는데 빨래해놓은 수건이 없어서 얼굴을 드라이기로 말리고 출근한 적도 있다. 그리고 나는 대체로 생활에 빨간불이 들어오면 그것에 경각심을 가지고 상황을 낫게 만들려 하기보다는 아예 당분간 스위치를 내려버리는 종류의 인간이다.
언스플래시 @nicotitto
다른 활동들에 비해 특히 요리는 그러기가 더 쉽다. 제대로 요리를 해 먹으려면 제철 채소를 사는 것부터 시작해, 사오자마자 다듬어 소분하고, 평소에 조리법을 궁리해놓았어야 하며 변하기 전에 먹어 치울 ‘삶의 안정성’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기껏 사다 놓은 신선한 식재료라든지 해둔 요리가 훗날 냉장고 안에서 생명의 신비를 선보이고 있는 모습에 맞닥뜨리는 것은 누구에게나 유쾌한 일이 아니다.
최근 모리 마리와의 우연한 만남은 내게 큰 위안을 주었다. 일본 근대 문학의 거장 모리 오가이의 장녀인 모리 마리 역시 문필가다. 그리고 엄청난 미식가로도 유명하다. 그의 미식, 먹거리 취향에 대해선 에세이집 <홍차와 장미의 나날>에 자세히 등장한다. 아직 양식이라는 것이 모두에게 낯설던 20세기 초반 무렵부터 독일에서 유학한 아버지의 덕으로 온갖 정통 양식이며 프랑스식, 독일식 디저트를 익숙하게 먹고 자랐다. 그는 집에서 직접 은어조림을 만들거나,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나 나올 법한 백된장 무침 요리를 해서 친구에게 대접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나의 눈에 띈 대목은 한 바닥 정도 묘사된 짧은 부분이었다. 그는 장편소설을 쓸 때 인근 정육점에 가서 고로케를 한보따리 사다가 냉동실에 처박아두었다. 그리고 매 끼니 그것을 녹여 똑같은 것만 먹었다고 한다. 통조림 반찬이나 식당 음식으로 때울 때도 부지기수다. 천하의 미식가도 일을 할 때는 ‘스위치를 내려야만’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이나 헤겔이 연구를 위해 평생을 거의 똑같은 무뚝뚝한 음식만 먹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미식가인 사람이 바쁠 때 얼마나 엉망으로 먹게 되는지가 내게 더 큰 위안을 준다. 내가 사랑하는 레시피 책인 <열두가지 레시피>를 쓴 칼 피터넬 역시 고급 레스토랑의 셰프이지만 그가 정작 평소 집에서 먹는 레시피들은 아주 간단하다.
그가 콩에 대해 쓴 대목은 옮겨적어 집 벽에 붙여두었다. “질 좋은 말린 콩을 하룻밤 물에 불려놓았다가 크림 상태가 되도록 푹 익혀 먹는 쪽이 맛이 좋다. 좋은 올리브유를 두바퀴 정도 넉넉히 두르고 소금을 살짝 뿌려 콩만 퍼먹어도 좋다. 다만 콩을 균일하게 익히는 건 힘들기 때문에 어중간한 질의 콩보다는 통조림 콩도 좋다.”
콩 삶기. 경향신문 자료사진
어중간한 콩을 넘어 콩에 곰팡이가 피지 않을지 전전긍긍해야 하는 처지라면 어중간한 콩을 먹느니 통조림 콩도 좋다고 하는 친절한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꼭 콩의 얘기만은 아니다. 종이에 이 대목을 옮겨적으면서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질 좋은 말린 콩 말고 통조림 콩도 괜찮아, 라고 쓸 수 있는 사람.
오랜만에 커다란 소쿠리를 꺼내어 콩을 불렸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콩을 쏟아두면 알아서 불어난다. 필요한 것은 콩 불릴 생각을 할 여유와 변하기 전에 다 먹어치우겠다는 결의 정도다.
이번 기고가 두번째인데 내가 쓴 글은 두편 다 ‘내가 사랑한 한끼’라기보다는 ‘내가 투쟁한 한끼’같은 느낌이다. 이건 아마도 내가 문제라기보다는 평화주의자 먹보인 나를 투쟁하게 만든 이 사회가 잘못이다.
<불광동솜주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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