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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이젠, ‘너절한 연애’ 직시해야

입력 2021.11.22 03:00

요즘 독자들은 언론에서 교제 폭력(데이트폭력)에 대한 보도를 자주 접하게 되었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안전이별’이 청년 여성들 간 주요 공유 키워드가 된 2010년대 이후로, 교제 폭력 신고 건수가 날로 증가 추세에 있다고 한다. 최근 들어 발생한 교제 폭력 사건의 경우 폭력의 양상이 급격하게 심화된 경우가 많아 언론의 주목도가 더욱 높아졌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교제 폭력과 같이 이전에는 사소하게 여겨지거나 개인적 문제로 치부되던 것을 사회구조적 문제로 바라보고 해결책을 함께 도모하는 데 언론의 역할이 있다. 하지만 최근의 교제 폭력 보도는 이러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여러 유형의 폭력 사건을 보도하는 데 있어 과거로부터 관행적으로 반복되어 온 ‘그림’이 있다. 대표적인 ‘그림’은 범죄자 연행 시점에서 화면 안으로 내밀어지는 수많은 마이크, 이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주는 범죄자를 비난하는 주변의 격앙된 목소리, 하나라도 더 취재해야 하기에 다급하게만 들리는 기자의 질문들이다.

그런데 그 다급한 질문 내용이 범죄의 이유 혹은 범죄자의 현재 감정에 대한 것이다. 최근 사건 보도에서 취재진은 “연인 관계였는데 미안한 마음이 없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살인이 미안한 마음의 문제인지도 의문이지만, 도대체 언론에서 범죄자의 미안한 마음을 확인하는 것이 왜 필요할까? 물론 범죄심리분석 수사관들은 가해자의 심리나 태도와 같은 것을 확인한다. 향후 범죄 유형을 파악하고 예방책을 세우는 데 필요한 전문성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언론이 취재하여 시민들에게 알려주어야 할 정보라고 할 수는 없다. 게다가 이 질문은 그 전제 구조가 기이하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연인 관계였다는 과거가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여기서 연인 관계라는 말속에 상상된 것은 무엇일까.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친밀한 관계의 폭력 관련 법제도 개선을 추진하면서 교제 폭력 문제에서 연애로 겪는 고통을 포함하여 ‘너절한 연애’를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연애는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어떤 것이 아니고, 교제 폭력이나 가정 폭력과 같은 범죄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위계적이고 폭력적인 관계로부터 발생한다.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보지 않고 자신의 통제하에 두겠다는 잘못된 인식, 공포와 위협을 통해 여성을 지배하려는 폭력적인 양상들이 ‘연인 관계’로 포장되기에 이제까지 이 폭력이 그저 “둘 사이 문제”로 치부되어 왔던 것이다. 교제 폭력의 원인과 속성에 대한 고민 없이 관행적으로 가해자의 말을 들으려는 보도는 철학자 케이트 만이 <남성특권>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피해자가 받아야 마땅한 공감을 빼앗아 가해자에게 주는 것, 즉 힘퍼시(himpathy)가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에 내면화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내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미공개된 정보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없는 점도 문제였다. 7월에 발생한 교제 살인 사건에 대한 몇몇 언론의 보도는 미공개라는 이유로 CCTV 영상을 과도하게 노출하면서 당시 피해자의 상황을 묘사하는 표현을 기사 제목으로 내걸기도 했다. 어쩌면 교제 폭력의 심각성을 알려야 한다는 것이 그러한 보도의 이유라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목숨을 잃은 피해자가 존재하는데 그가 어떻게 목숨을 잃게 되었는지를 세세하게 묘사해야 심각함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닐까?

교제 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은 현재의 법제도 개선 사항을 검토하고 시민의 인식 전환을 이끌기 위해 누가 무엇을 해야 할지 등을 다각도로 취재하는 것이다. 언론이 이러한 책무를 다하려면 관행을 벗어나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림’에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를 다시 질문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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